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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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구리(加口里)라는 명칭은 전래에 의하면, 장차 고북면 전체의 중심지가 되어 인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여 지어졌다고 한다.일설에 따르면 마을 밭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 있어 가구전(佳龜田)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나 고증 자료가 없어 신빙성은 희박하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면에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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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도자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각 도자기에는 해당 시기의 문화와 일상생활의 패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왔다. 따라서 각 시기에 제작된 도자기들의 양식과 시기별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서 과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시기에 따라 생활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각 시기에 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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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폐합할 때 가전리(柯田里)의 ‘가’자와 사장리(沙場里)의 ‘사’자를 따서 가사리(柯沙里)라 하였다. 가전리는 옛날 갈대밭이 많은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밧[柯田里], 사장말[沙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마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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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는 홍주목 운천면 가좌동리와 서산군 동음암면 남당리 지역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해미군 운천면에 속하여 있던 가좌동리를 상가리(上佳里)와 상리(上里)로 분할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운천면 상가리, 상리, 서산군 동음암면 남당리와 고양동리(高陽洞里)의 일부를 합쳐서 서산군 운산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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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후기 무학대사가 이 섬에서 수행 중 유난히 밝은 달빛을 보고 불도를 깨달았다 하여 간월도(看月島)라 이름 붙여졌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간월도라는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려 후기부터 간월도라 불렸고,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태안군 안상면 소속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서산군 안면면 간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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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마리(渴馬里)라는 이름은 마을 지형이 풍수상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고 있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되어 있어 붙여졌다는 설과, 큰 벌판이 곶이를 이루었다 하여 갈마곶(渴馬串), 갈마지, 갈마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마곳[渴馬洞]이라는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갈마리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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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갈현리(葛峴里)의 ‘갈’자와 산지동(山芝洞)의 ‘산’자를 따서 갈산리(葛山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우고지[葛峴里], 회츈골[會仙洞], 무르틔[山芝洞], 좌셰[佐世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갈산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회선동리와 좌세리(佐世里) 지역이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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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고개 밑에 형성된 마을로 갈고개, 갈현, 갈고리라고 하였다. 갈고개는 갈현리(葛峴里)에서 왕정리(旺井里)로 넘어가는 고개로 칡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고[葛古里], 용현리(龍峴里), 과동(果洞), 갈현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갈현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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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거산리(巨山里)의 ‘거’자와 하성리(下城里)의 ‘성’자를 따서 거성리(巨城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하셩산[下城里], 금뫼[巨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거성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운천면의 하성산리(下城山里)와 거산리, 서산군 동음암면 동거리, 서산군 동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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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삼고개리(三古개里)에서 ‘고’자와 아남리(牙南里)에서 ‘남’자를 따서 고남리(古南里)가 되었다. 삼고개리는 세 고개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며, 아남리는 사람의 어금니처럼 생겼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삼고[三古介], 아남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아남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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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에서 139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 고려 시대의 서산 지역은 부성군(富城郡)을 중심으로 지곡현(地谷縣), 정해현(貞海縣), 여미현(餘美縣), 고구현(高丘縣)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의 드나듬이 심한 서산 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이다. 이 중 여미현은 백제 때 여촌현, 신라 때 여읍현이었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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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고려 시대에 고구현(高丘縣)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백제 때 우견현(牛見縣)이었고, 통일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목우현(牧牛縣)으로 고쳐서 이산군현(伊山郡縣)이 되었다가, 고려 전기에 고구로 고쳤다. 고려 태조 때 몽웅역(夢熊驛)의 한씨 성을 가진 이가 큰 공이 있어 대광의 작호를 내렸는데,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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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고북면 관할 행정 기관. 고북면사무소는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서산군 고북면으로 되면서 고북면사무소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서산군 고북면 가구리 167-2번지에서 직무를 시작하였고, 그 후 건물이 낡고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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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고음곡리(古音谷里)의 ‘고’자와 두산리(斗山里)의 ‘산’자를 따서 고산리(古山里)라 이름 붙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곰실[古音谷里], 말산[斗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산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고음곡리와 수철점리가 있었던 지역이다. 1895년의 행정 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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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파도리(古波島里)는 본래 파지도(波知島)라 하였는데, 1974년에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고려 때 파지도영(波知島營)을 두었다가 조선 태종 때 호리로 수영을 옮기게 되면서 옛파지섬 또는 고파지도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파지도만호(波知島萬戶)의 수영이 바다 가운데 30리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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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고색리(高色里)를 고풍리(高豊里)로 고쳤다. 이는 주민 생활의 안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군자동(君子洞), 무릉동(武陵洞), 운곡[雲谷里], 고빗[高色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풍리는 조선 시대에는 해미현 이도면 고색리와 군장동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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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관기리의 ‘관’자와 하류곡리의 ‘유’자를 따서 관유리(館柳里)가 되었다. 조선 시대 해미현 동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동면 관기리와 하류곡리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 관유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지성면을 해미면으로 고치면서 해미면 관유리가 되었고,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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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귀밀리(貴密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귀밀’이라는 명칭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다. 『서산의 지명사』에 의하면 예전부터 귀밀리는 비록 그 규모는 작을지라도 세대를 이어 살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특히 귀밀리 논은 어떤 풍흉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좋은 경작지로 인근에 소문이 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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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교육. 개항기 서산 지역에는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근대적인 사설 교육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하지만 1911년에 공포된 「사립 학교 규칙」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으며, 그 시설이나 재산은 반강제적으로 해당 지역의 공립 보통학교에 편입되었다. 서산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는 1911년 9월 서령학교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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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서산 지역의 근현대사는 개항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궁벽했던 서산에도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되었다.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빈번했고,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인근 태안군 환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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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금곡리의 ‘금’자와 추학리의 ‘학’자를 따서 금학리(金鶴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쇠골[金谷里], 츄학리[秋鶴里], 마져리[麻田里], 쇼길리[小吉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금학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영풍창면과 노지면 지역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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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군(郡).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郡)·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일대는 기군(基郡)으로 편제되었다고 여겨진다. 기군에는 성대혜현(省大兮縣), 지육현(知六縣)의 2개 성(城)이 예속되었다. 삼국은 고대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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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기은(基隱)’이라는 명칭은 마을의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긴마을’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긴 마을을 이두식 표기로 한역(漢譯)하여 기은(基隱)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기은리(基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기은리는 대산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내려오다가 1895년 독곶리가 분할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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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포리(機浦里)는 옛날 배가 접안하는 ‘배턱’에 나무로 ‘빈지’를 짜서 만들어진 곳이므로 이에 연유된 이름으로 추정한다. 또한 마을 지형이 베틀처럼 생겼으므로 틀개, 튼개 또는 기포리라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다른 마을에 비하여 유달리 기업이 성하였으므로 이에 연유하여 ‘틀개’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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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김해. 자는 이룡(而龍). 판서공 김불비(金不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중손(金仲遜)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김취명(金就明)[1737~1812]은 1774년(영조 50) 무과에 급제하여 1790년(정조 14) 양주와 광주에서 일어난 민란을 평정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되었다. 또한 기장현감, 운봉현감, 충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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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지역 남양 홍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서산군 인물조에 홍운해(洪雲海) 아들 홍성원(洪性源), 홍지원(洪智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형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문하에서 공부하다 광해군 대에 사마 급제한 이들로 사마방목에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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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남쪽에 유명한 우물이 있어 남정리(南井里)라고 이름 붙였다. 일설에는 사무실[마을 이름] 남쪽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하는데, ‘사무’는 서산 지역 사투리로 ‘샘’이란 뜻이다. 마을이 낮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표를 정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타 지방에서는 너무도 평범한 샘들을 기준으로 하여 샘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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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남산리의 ‘남’자와 정동의 ‘정’자를 따서 남정리(南井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남산뫼[南山里], 공슈골[葛山里], 얌골[井洞]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남정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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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와 식민지 지주들의 억압과 수탈에 대해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농민 저항 운동. 1930년대 초반 공황의 여파로 농민들의 경제생활이 열악해지자 전국적으로 대중 투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면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 부당 수세 반대 운동, 국유지 부당 불하 반대 투쟁, 호세 연납 및 채권 문서 소작 투쟁, 산림 조합 반대 투쟁,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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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심곡리(深谷里), 신흥리(新興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한틔골, 집푸실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대곡’이라는 명칭은 『조선지지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흥리의 한글 표현 한틔골의 한자 표기인 대치(大峙)의 ‘대’자와 심곡의 ‘곡’자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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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한 법정리. 대로리(大路里)의 ‘대로(大路)’는 말 그대로 큰길이라는 뜻이다. 마을 앞에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는 한길이 있어서 마을의 명칭을 ‘한길말’이라 하였다가 ‘말’자가 탈락하여 ‘한길’이라 하였다. 후에 이를 한문으로 표기함에 따라 ‘대로’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반곡리(盤谷里), 노상리(路上里), 노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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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있던 공립 대산초등학교의 오지분교장. 건강하고 심신을 다지는 건강인, 스스로 능력을 갈고닦는 자주인, 새롭게 궁리하고 처리하는 창의인,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도덕인, 환경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애국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교훈은 ‘슬기로운 어린이, 예의 바른 어린이, 씩씩한 어린이’였다. 1950년 4월 1일 대산국민학교 오지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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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산(大山)’이라는 뜻은 큰 산이라는 뜻인데, 이는 대산리(大山里)에 있는 망일산(望日山)을 뜻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젼리[山田里], 노상리(路上里), 노하리(路下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대산면 관할의 산전리와 노상리·노하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였는데, 이 지역에 대산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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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읍. 충청남도 서산시 북쪽에 위치한 읍으로, 남쪽을 제외한 세 방향은 가로림만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동쪽 바다는 대호방조제 건설 이후 호수가 되어 대호지가 되었다. 다수의 화학 공단이 들어서 있다. 서산시 내에서 동(洞)을 제외한 읍·면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병신년조의 호태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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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수동[古水洞], 요동(要洞), 대조리(大鳥里)가 합해지면서 대조리에서 ‘대’자와 요동리에서 ‘요’자를 따서 대요리(大要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지와 요[要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대요리 지역은 원래 지곡면 고수철리와 대조곶리(大鳥串里)였으며, 1895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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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한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각리(大角里)의 ‘대’자와 죽엽리(竹葉里)의 ‘죽’자를 따서 대죽리(大竹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녹아리[大角里], 죽엽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대죽리는 조선 시대에는 대각리와 죽엽리로 대산(大山)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각리와 죽엽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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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대동의 ‘대’자와 황곡의 ‘황’자를 따서 대황리(大黃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대동리와 방길리(方吉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동[大同], 황골[黃谷里], 방길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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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덕동(德洞)의 ‘덕’자와 상송리의 ‘송’자를 따서 덕송리(德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덕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덕동, 위숄말[上松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문현면 지역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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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구도동에서 ‘도’자와 전당리(錢堂里)에서 ‘당’자를 따서 도당리(道堂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구슈동[求水洞], 화락리(花落里), 젼당리, 상암리(上巖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구수동, 왕시랑이, 구도동 지역과 부산리(富山里) 일부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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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도비산 봉수(都飛山烽燧)는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 주산봉수(主山烽燧)와 더불어 서산시 관내에 자리하고 있는 3개의 봉수대 중 하나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서산군조에 “도비산 봉수는 동쪽으로는 홍주(洪州) 관내 고구(高丘)의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태안(泰安)의 주산(主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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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도원리(桃源里)의 ‘도’자와 성동(星洞)의 ‘성’자를 따서 도성리(道成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돗다란리, 셩동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저주리(猪走里)이던 마을이 1895년 성동과 도원리의 두 개 리로 분리되었다. 1914년 도원리와 성동리가 합쳐져 서산군 지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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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에 있는 야철 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충청도(忠淸道) 해미현(海美縣)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서산군(瑞山郡) 임내(任內) 지곡현(地谷縣) 땅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하니, 관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파내어서 납[鉛] 1근 8냥쭝[兩重]을 녹이었는데, 정련(精練)한 백은(白銀)이 1전 3푼이었다. 또 다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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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독곶리(獨串里)의 지형은 가로림만을 향해 돌출되어 있는 반도(半島)의 형태로, 외따로이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모양새가 외롭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독곶리(獨串里)의 독은 돌의 다른 이름으로 주변이 돌이나 바위, 자갈 등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독곶리는 1895년 고종 때 있었던 전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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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들로 국가보훈처에서 공식 인정한 인물들.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 탑재되어 있는 포상자 공적 조서 중 서산 출신은 147명[1명은 당진 출신자로 서산 지역에서 활동, 현 당진군 대호지면도 당시 서산군 소속이므로 합산함]으로 확인된다. 훈격별로 보면 애국장 5명, 애족장 49명, 건국포장 4명, 나머지는 대통령 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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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이곳에 몽웅역(夢熊驛)이 있어 역말, 역촌, 역리라 불리던 것이 동암리(冬岩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동암리의 한글 표현은 역말로 기록되어 있다. 『서산의 지명사』에서는 마을이 동쪽 산 밑에 위치하고 있어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져 특히 겨울은 더욱 춥고 길게 느껴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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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농민 봉기.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으로,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산과 더불어 예포 농민군의 중심 근거지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대단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해미성 전투와 매현 전투 등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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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둔산리(芚山里)의 ‘둔’자와 당산리(堂山里)의 ‘당’자를 따서 둔당리(芚堂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둔산[芚山里], 당갈미[棠山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둔당리는 조선 시대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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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면 행정 자문 기구. 1917년 6월 총독부 제령[제1호]에 따라 조선면제(朝鮮面制)가 실시되면서 전국의 모든 면에 일종의 ‘법인격’[독자적인 사업 능력과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배경 아래 1920년 지방 제도 개혁 과정에서 면협의회가 설립되었다. 3·1 운동 직후인 1920년 총독부는 조선의 유력자 집단을 지배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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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이 여울져 늘 나는 물소리가 우는 소리 같아 우르내, 울내라 하였다. 울내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울내말이라고 하였으며, 한역을 하여 명천(鳴川)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명천리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우루[鳴川里], 말우리[馬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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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창말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명천리 사창(鳴川里社倉)은 조선 시대 서산군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명천리 사창 터에 관해서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편찬된 『서산군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명천리 사창은 조선 시대 서산군의 해창(海倉)으로 ‘명천창(鳴川倉)’이라 불렸는데, 창고의 규모는 기와와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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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기대리(毛其大里)의 ‘모’자와 양월리(梁越里)의 ‘월’자를 따서 모월리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모기대리, 양월리 등의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모월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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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무수리(舞袖里)에서 ‘무’자와 부장동리(部將洞里)에서 ‘장’자를 따서 무장리(舞將里)가 되었다. 무장리는 조선 시대의 두모곡리(豆毛谷里), 돈지리(頓地里), 부장동리 지역이다. 1895년 두모곡리는 원천리로, 돈지리는 신동으로, 부장동리는 사동으로 분리되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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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소동리(小洞理), 장양리(章陽理), 회찬리(回贊里) 등 3개 리와 문기리(文起理) 일부를 합치면서 문기리에서 ‘문’자와 장양리에서 ‘양’자를 따서 문양리(文陽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뭉구리[文起里], 쇼동[小洞], 장양동(章陽洞), 회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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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 지정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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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산하 서산 지역 협의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산시협의회는 통일 의지와 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의 염원인 평화 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시대적 상황과 국민적 여망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0년 10월 27일 「헌법」 제68조에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설치가 명시되고, 1981년 3월 14일 법률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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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반계리(磻溪里)의 ‘반’자와 만양리(晩陽里)의 ‘양’자를 따서 반양리(磻陽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만양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만양니[晩陽里], 고현[磻溪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반계리의 한글 표현인 고현이란 명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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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가지 기호[문자, 숫자, 도형, 도표, 이미지, 음성, 음향, 영상]로 이루어진 방송 프로그램을 유무선 통신을 이용하여 송신하는 일.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방송은 라디오 방송이었다. 서산에 라디오가 들어온 것은 『서산시지』에 따르면 1920년대 후반이었다고 하나 상세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945년 8월 15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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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육지로 배를 올리면서 부르는 노동요. 「배 올리는 소리」는 고기를 잡지 않는 기간 동안 재해에 대비하여 육지로 배를 끌어올리면서 부르는 어업노동요이다. 배를 올리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행동을 통일하고 힘을 합쳐야 하기 때문에 「배 올리는 소리」를 부르면서 호흡을 맞춘다.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선소리와 뒷소리 모두 짧고 힘 있는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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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봉산리(鳳山里)의 ‘봉’자와 생천리(生川里)의 ‘생’자를 따서 봉생리(鳳生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쳔[生川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봉생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고북면 생천리와 창리(倉里)로, 1895년 행정 구역 구역 개편에서 해미군 하도면 생천리와 창리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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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이를 봉화, 봉수대, 봉화대 등이라고도 한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때부터 비롯된 봉수 제도를 이어받아 좀 더 체계적인 봉수 제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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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부흥동(富興洞)에서 ‘부’자와 산저리(山底里)에서 ‘산’자를 따서 부산리(富山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져리, 부흥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의 두치면(豆峙面) 산저리와 부흥동이 1895년 산저리, 부흥동, 율리(栗里), 점촌(店村)으로 분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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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적돌강(積乭江)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부석면(浮石面)이라 하였다. 백제 시대에는 기군(基郡) 지역에, 신라 시대에는 부성(富城)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까지 서산군(瑞山郡)에 속하였다. 본래 마산면(馬山面)이라 하여 시동(柿洞), 갈마동(渴馬洞), 월계리(月溪里) 등 11개 리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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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를 관할하였던 군(郡).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편제되었으며, 그 밑에 소태현(蘇泰縣)과 지육현(地育縣)이 설치되었다. 서산 지역은 통일 신라 시기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중국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는데 최치원(崔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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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누정. 오현정(富城山五賢亭)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과 연고가 깊은 부성산의 부성산성(富城山城) 내에 위치해 있다.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자리하는데, 부성사(富城祠)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언덕을 넘어가기 전 좌측에 부성사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을 따라 가파른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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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부다리(富多里)에서 ‘부’자를 장산리(長山里)에 ‘장’자를 따서 부장리(富長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가울[蘆乃洞], 장산리, 셩동[星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동암면 부다리와 노내동리(蘆乃洞里), 동음암면(冬音巖面) 부산리(富山里), 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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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내에 백자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축되는 사기점(沙器店)이 있었으므로 사기소(沙器所), 사기포(沙器浦) 또는 사기리(沙器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사리소[沙器所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사기소리(沙器所里)와 청동(淸洞)으로 분할되기 전의 사기리는 64가구에 176명이 사는 제법 큰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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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산저리의 ‘산’자와 동막리(東幕里)의 ‘동’자를 따서 산동리(山東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산저리·동막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져리[山底里], 동막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산동리는 조선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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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山洞), 내동(內洞), 부성동(富城洞)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山城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 이살리였으나,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성동, 산동, 내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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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당산리(堂山里)의 ‘산’자와 수원동(水源洞)의 ‘수’자를 따서 산수리(山水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당산리, 수원동,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수원골[水源洞], 당산니[堂山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산수리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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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삼봉리(三峯里)의 ‘삼’자와 송치리(松峙里)의 ‘송’자를 따서 삼송리(三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삼봉리, 송치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삼봉니, 솔틔, 위터골[上基里], 위버드실[上柳谷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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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서산에서는 12개 면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4월 4일 서산 지역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대호지면 만세 사건은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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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촌동(上村洞)의 ‘상’자와 성동(城洞)의 ‘성’자를 따서 상성리(上城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궁말[上城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의 월경처(越境處)였다. 상성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운천면에 속하였다가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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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상노치리(上蘆峙里)에서 ‘상’자와 홍천리(紅川里)에서 ‘홍’자를 따서 상홍리(上紅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위가, 아가[下蘆峙里], 즁노치[中蘆峙里], 홍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두치면(豆峙面) 노치리(蘆峙里)와 홍천리였으나,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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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여성 농업인 단체. 서산시는 인구의 고령화로 인하여 농촌 일손 및 농업을 이어갈 다음 세대가 부족한 실정이며 여성 농업인들은 농사·가사·육아 등으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생활개선서산시연합회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서산 지역 농촌을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설립한 단체이다. 농촌 생활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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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정리에 있는 군용 비행장. 국방부는 방대한 서해안 방어를 위해서 1989년 K-Z비행장을 계획하였는데, 당시 충청남도 서산군과는 사전 협의 없이 계획된 것으로 대상 지역인 해미면과 고북면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다. 매일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비행장 설립 반대 집회가 격렬해지면서 서산군이 공군과 협의하여 주민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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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개통된 충청남도 서산과 전라북도 군산을 연결하던 정기 항로. 1922년 6월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사설 철도로 천안역~온양온천역 구간을 개통한 이후 구간별 공사를 계속하여 1931년 8월 충남선[현 장항선] 전 구간을 완전히 개통하였다. 이와 더불어 장항 부두가 완성되면서 장항과 군산의 중요성이 커지자 서산 지역의 유지들은 뱃길로 장항과 군산을 잇는 정기 여객선의 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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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서산군수 이민영이 간행한 충청남도 서산군의 사찬 읍지. 서산군수였던 이민영(李敏寧)[1877~?]은 서산에 있는 각종 군지들의 저작의 고증이 어렵고, 흥폐연혁(興廢沿革)을 참고할 만한 문헌이 없음을 아쉬워하였다. 이에 구지(舊誌)를 중심으로 기록을 모으고 자료들을 덧붙여 1925년 4월부터 『서산군지』를 기고(起稿)하기 시작하였고, 1927년 12월 20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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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지역 문화 예술인에게 수여하는 문화상. 서산문화원은 서산문화대상 심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 문화의 선양과 발전에 기여한 문화 예술인을 대상으로 후보자를 발굴하여 1993년부터 시상하였다. 서산시와 서산군이 나뉘어져 있을 때에는 각 한 명씩 두 명을 시상하였으나 서산시로 통합된 이후에는 한명 만을 선발 시상하고 있다. 서산문화대상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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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각 읍면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 문화를 기술한 민속지. 『서산민속지』는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김태곤 교수를 단장으로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현지 조사에 참여하여 정리한 민속지이다. 그 시발은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1985년 서산시 대산면 독곶리, 부석면 창리, 안면읍 황도리, 팔봉면 고파도를 조사한 다음 도서 조사의 필요성을 느껴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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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삼림 조합.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개항기부터 불을 때서 소금을 굽는 자염업(煮鹽業)이 발전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 삼림은 심하게 황폐해졌다. 당시 서산 지역에 삼림조합 활동이 활발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서산군청과 서산군 대지주들은 삼림조합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는데, 그 이유는 서산 지주들의 주요 사업인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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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민간 교육 단체.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산하의 지역 협의회로서 서산 지역 내 각종 교육 기관 및 단체의 평생 교육 활동을 후원하고 발전시키는 단체이다. 지역 사회 교육 운동 정신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함으로써 주민, 가정, 학교, 지역 사회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서산지역 사회교육협의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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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청년 단체.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육로 교통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타 지역보다 신문화 유입이 더딘 지역이었다. 서산청년회는 3·1 운동 직후 시작된 문화 정치의 일환으로 서산 지역 신문화 운동 전개를 위해 조직되었다. 1920년 창립 당시 서산청년회의 조직 구성이나 활동 상황은 알 수 없다. 1922년 7월 서산청년회 회장 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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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여덟 곳의 아름다운 경치. 옛날에는 소수의 선비들이 이름난 경승지나 명승을 향유하면서 팔경이나 구곡을 선정하였는데, 최근에는 지방 자치 단체가 관광 대상물로 인식하면서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서산팔경은 원래 충청남도 서산군 일부 지역과 서산읍 주변의 팔경이었으나, 1980년대 급격한 개발에 의해 원형을 유지하던 풍경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이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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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명승 8개소. 조선 시대의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서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의 풍요로운 물산과 아름다운 인심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탄하며 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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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읍성의 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의 건물이었던 관아문(官衙門)과 외동헌(外東軒)으로, 1867년(고종 4) 군수 오병선이 부임하면서 건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읍성의 입구 건물이며, 외동헌은 서산군에 부임하였던 수령이 근무하였다. 1917년 외동헌은 16.53㎡[5평]로 증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시청 입구에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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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에 설치된 군(郡). 서산군(瑞山郡)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려 시대 이 지역 인물인 정인경(鄭仁卿)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다. 정인경은 남송(南宋) 귀화인의 후예로 고종 때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여러 차례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충렬왕 대에 시종1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부성현이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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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교육 관련 자문 기관. 학교평의회는 부윤과 군수의 학교비(學校費) 자문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0년 제령 제14호 학교비령(學校費令) 제9조에 의거하여 설치되었다. 평의원은 면협의회가 선출하고 당연직 의장인 군수가 임명하였다. 평의원의 자격은 ‘제국신민으로서, 독립적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연령 25세 이상의 군내 1년 이상 거주자로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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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市). 서산시는 태안반도에 속하는 지리적인 이점과 최근의 대산항 건설 및 서해안고속국도 개통이 맞물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어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이다. 가야산 인근의 내포 지방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며, 백제 조상미술의 선진 지역이다. 서산시를 상징하는 새는 가창오리와 장다리물떼새이다. 가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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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공공 의료 기관. 서산시 보건소는 충청남도 서산시에 거주하고 있는 지역 주민의 건강 수명 연장 및 건강하고 행복한 삶 영위를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 9월 24일 법률 제1160호[보건 행정의 합리적인 운영과 국민 건강 향상 및 증진 도모]로 「보건소법」이 공표되었다. 1963년 1월 1일 조례 제29호에 따라 서산군 서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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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청년 계몽 운동 단체.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청소년들이 정신 수양, 신체 단련, 무술 연마 등의 집단 활동을 통해 슬기와 용기, 불굴의 기백과 멋을 가꾸고 안으로는 수신의 기풍을 다지고 밖으로는 지역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해왔다. 삼한의 두레, 고구려의 경당, 신라의 화랑도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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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여성 사회단체. 서산시 새마을부녀회는 서산시 새마을회의 하위 단체로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어려운 이웃돕기 활동, 재활용품 수거 및 에너지 절약 운동 등을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4년 3월 서산군 새마을부녀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89년 1월 1일 서산시와 서산군으로 분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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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선거 관리 기관.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의 규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 기관으로 국회,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등과 병립하는 독립된 합의제 헌법 기관이다. 선거와 국민 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과 정치 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서산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시·도선거관리위원회의 하나인 충청남도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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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지방 자치 단체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기구. 서산시의회는 「헌법」 제118조와 「지방자치법」 제330조의 규정에 의하여 서산 시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시민의 대표 기관으로 서산시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 기관을 감시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이다. 서산시의회는 주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주민의 의사를 수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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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시 관할 행정 기관. 서산시청은 서산시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서산 시정을 운영함에 있어 하부 행정 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고,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 발전을 추구한다. 서산시청은 1947년 5월 14일 가정노가 제1대 군수로 취임한 이후로 2010년 7월 1일 민선5기 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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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배경으로 서산시의 풍경과 고향의 정을 노래한 곡. 「서산에 살리라」는 서산군과 서산시로 분시·분군되면서 만들어진 서산시 노래이다. 조운파가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1989년 11월에 발표되었고, 1995년에 시·군이 통합되면서 전체 가사 중 일부가 개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산에 살리라」는 4분의 4박자 라장조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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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서주목(瑞州牧)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려 시대 이 지역 인물인 정인경(鄭仁卿)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다. 정인경은 남송(南宋) 귀화인의 후예로 고종 때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여러 차례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충렬왕 대에 시종1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부성현이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가 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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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석남동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높이 30m, 가슴 높이 둘레 8.6m이다. 가지 길이는 동쪽으로 11.3m, 남동쪽으로 11.7m, 남서쪽으로 10.6m, 북동쪽으로 11m이다. 석남동 은행나무는 남원마을에 있는데, 남원은 행정 구역상 서산시 석남동에 속하는 마을이며, 남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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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석남동 관할 행정 기관. 석남동 주민센터는 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9년 1월 1일 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되고 석남동을 설치하면서 석남동사무소가 설립되었다. 1989년 설립 당시 동사무소 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 마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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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석지리(石旨里)의 ‘석(石)’자와 죽림리(竹林里)의 ‘임(林)’자를 따서 석림리라 하였다. 석림동은 조선 시대의 서산군 대사동면 석지리 지역으로 1895년 서산군 대사동면 평리(坪里), 석지리, 죽림리로 나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평리, 석지리, 죽림리를 합하여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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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의 종류는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 지방 의회 의원 선거 등이 있으며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나머지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서산에서도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충청남도지사 선거, 충청남도의회 의원 선거, 서산시장 선거, 서산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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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수면에 둘러싸인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 국제수로기구[IHO]에서는 섬의 표면적이 1㎢ 미만이면 암도(rock), 1~10㎢이면 소도(islet), 10㎢ 이상이면 도서(island)로 분류하고 있다. 서산을 포함한 충청 해역은 해안의 출입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여러 섬들과 크고 작은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산 지방의 섬은 주로 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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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마을이 쥐뿌리재라는 고개 아래에 있어 잿골 또는 성동(城洞)으로 불렸으나, 의성 김씨가 살게 되면서부터 잿 ‘성(城)’자를 이룰 ‘성(成)’자로 바꾸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1914년 이전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나 『구한국지방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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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성암서원(聖巖書院)의 제향 인물은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후기 인조부터 효종 대의 문신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다. 사암 유숙은 고려 때부터 서산 지역의 토착 성씨로 성장한 서령 유씨(瑞寧柳氏)로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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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어귀에 북극성 및 북두칠성이란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있어 별바위 또는 별바위마을이라 불리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성암리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洪州牧) 운천면(雲川面) 보산리였으며 홍주목의 월경처였다. 1895년 해미군(海美郡) 운천면으로 바뀌면서 모산리, 성암리(星岩里), 장산리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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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성연면(聖淵面)에 위치한 왕정리(旺井里)에 옥동샘이라는 우물이 있었다. 옥동샘에서 용이 승천한 다음부터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기고 번성하였다고 하여 면의 이름을 성스러운 연못이라는 뜻인 ‘성연(聖淵)’이라 지었다. 조선 시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성연면에 성연부곡(聖淵部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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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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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소작 농민이 지주·소작 관계,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벌인 농민 운동.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한 후 조선의 농업 개발 및 농민 수탈, 농촌 통제를 일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농촌 사회는 자작 농민의 소작인화, 소작료의 고율화, 소작권의 불안정화, 마름의 중간 수탈 현상 등이 심화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농촌 사회 내부에는 소작 쟁의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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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소동(小洞)의 ‘소’자와 중리(中里)의 ‘중’자를 따서 소중리(小中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터[新基里], 동거리(東巨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소중리는 조선 시대 때 서산군 동음암면 동거리와 홍주목 운천면 상성리에 속한 지역이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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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하장수동(下長壽洞)의 ‘수’자와 묵당리(墨堂里)의 ‘당’자를 따서 수당리(壽堂里)라 이름 붙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아장사무골[下長壽里], 산밋[黑堂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수당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장생동리의 일부분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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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장수동(上長壽洞)의 ‘수’자와 와평리(瓦坪里)의 ‘평’자를 따서 수평리(壽坪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장사무골[長壽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수평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장생동리였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와평리, 상장수동, 하장수동(下長壽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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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설치되었던 진(鎭). 순성진(蓴城鎭)은 1397년(태조 6) 이루어진 지방 군제 개편에 따라 서해안 수호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진을 설치하고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관할하던 곳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는 고려 말부터 자행된 극심한 왜적의 침입에 대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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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상리(新上里)는 행정 구역 개편으로 여러 리가 병합된 마을인데, 그중 신흥리(新興里)와 상정리(上井里)의 이름을 따서 신상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면에 랄[新興里]·산직니[山直里]·독지말[篤只里]·위우무실[上井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 고북면 신흥리였으며,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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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방 공사와 치산의 목적으로 마을 뒷산에 새로 소나무를 심었다 하여 신송리(新松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면에 신송·마근모지·탑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 고북면 신송리, 대천리, 탑동리, 양천리 지역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해미군 상도면 신송리, 색연리, 탑동 등을 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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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에 있는 석성. 신송리 산성(新松里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는 만큼 누가, 언제, 어떠한 목적으로 축조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홍주목 봉수조에 “고구성산 봉수는 남쪽으로 결성현의 고산과 응하고, 서쪽으로는 서산군의 도비산과 호응한다[高丘城山烽燧南應結城縣高山西應瑞山郡都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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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신동(新洞), 오이동(梧伊洞), 장림동(莊林洞)을 합하면서 신동에서 ‘신’자와 장림동에서 ‘장’자를 따서 신장리(新莊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신동, 오리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암면 탄동리로 되어 있다. 1914년 신동, 오이동, 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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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대리(新垈里)에서 ‘신(新)’자를 따고 대정곡리에서 ‘정(井)’자를 따서 신정리(新井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면에 당뫼[堂山里]·즌듸[下箭里]·터[新垈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 고북면 상전후리[上箭里], 하전후리[下箭里], 대정곡리 등 세 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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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러기 떼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여 안호리(雁好里)라 하였다가 안호리(安好里)가 되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을 앞에 큰 방죽이 있어 이로 인하여 안수리(安藪里)로 불렸을 적도 있었으며, 겨울이 되면 기러기 떼들이 방죽에 날아와 겨울을 지내다가 돌아가는 철새 도래지여서 안호리(雁好里)라 했다는 주장이 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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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애당리의 ‘애’자와 언정리의 ‘정’자를 따서 애정리(艾井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애당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쓕당리[艾堂里], 은졍리[彦井里] 등의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애정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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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야촌(野村)의 ‘야’자와 당산리(堂山里)의 ‘당’자를 따서 야당리(野堂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들말[野村], 원당리(元堂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야당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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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 교육 운동. 일제 강점기에 보통학교라도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대략 20~30% 정도의 아동만이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보통학교는 공립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학부형들의 부담에 의거해 운영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조선의 농촌에는 사설 강습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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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사양동의 ‘양’자와 우길리, 방길리(方吉里)의 ‘길’자를 따서 양길리(陽吉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방길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방길리, 사양골[斜陽洞], 우길리(牛吉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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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천리(楊川里)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이전부터 사용하였다.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연암산으로부터 발원하여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의 제방을 보호하기 위하여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버드나무가 심어져 아름드리로 자라서 마을의 경관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였음으로 여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양천리를 우리말로 말하면 ‘버드내’이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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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어은동(漁隱洞)의 ‘어’자와 송치리의 ‘송’자를 따서 어송리(漁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어은동리(漁隱洞里), 정자리(亭子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어은동, 졍자동[亭子洞], 숄테[松峙里] 등 관련 명칭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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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어업 조합. 『충청남도도세일반(忠淸南道道勢一斑)』 민적(民籍) 자료를 참고하면 서산군 바닷가에 인접한 면에 많은 어업 인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라는 별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서산군에는 소규모의 포구를 중심으로 연안 어업이 발달하였다. 1908년 서산군의 어업자는 71호에 238명, 태안군은 117호에 375명,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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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개된 조선어 신문사 지방 지국의 투쟁.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 지방판에 소개된 민원 사건으로는 1926년 1월 서산 소방조 문제 관련 민원, 1927년 6월 소작 관계 개선 문제[특히 경성 지주의 이중 운반 강요, 운반비 강요 문제]에 관한 민원, 1931년 1월 서산 지역 유치원에 관한 민원, 1930년대 초반 해미 수리 조합 문제 관련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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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언내리(堰內里)의 ‘언’자와 칠성암리(七星岩里)의 ‘암’자를 따서 언암리(堰岩里)라 하였다. 언내리는 언[뚝] 안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칠성암리는 마을 중심부에 7개의 큰 바위가 북두칠성처럼 위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해미현 남면 당산리에는 13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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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여미리는 백제 이후 조선 초기까지 여미현(余美縣) 지역이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해미현 이도면에 속하였던 지역이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여미리와 이문리(里門里)로 분할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여미리와 리문리를 통합하여 서산군 정미면 여미리로 개편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비변니[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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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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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배우가 각본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동작으로 보여주는 무대 예술. 서산 지역에서의 연극은 오늘날의 극단 개념 이전의 악극단에서 시작되었으며 1940년대 설립된 서산악극단이 서산 최초의 극단이라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힘들게 살아가는 당시의 궁핍한 민중들을 위로하기 위해 『흥부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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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남쪽의 연화산과 주변의 산지에 의해 형성된 분지인지라 마을의 형태가 물 위에 핀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화리(蓮花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문현면에 연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연화리는 조선 전기에는 문지촌이었고 후에는 문현면 이화리로 변경되었다. 이 지역은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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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영탑리(令塔里)는 조선 시대에는 영전리(令田里)와 탑동(塔洞)이었는데, 영전리는 전씨(田氏)가 많이 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탑동은 마을에 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전리의 ‘영’자와 탑동의 ‘탑’자를 따서 영탑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영젼리[令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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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솔예동(上率禮洞)과 하솔예동(下率禮洞)의 유씨, 박씨, 장씨의 세 성씨가 수백 년간 예와 덕을 숭상하며 살아 왔다고 한다. 따라서 솔예에서 ‘예’자와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덕천에서 ‘덕’자를 따서 예덕리(禮德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에 덕쳔[德川里], 위쇼리[上率里], 아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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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오지리(梧枝里)의 ‘오(梧)’자와 사동(砂洞)의 ‘사(砂)’자를 따서 오사리(梧砂里)가 되었으나, 광복 전후까지만 하여도 조선 시대의 이름인 사장골[沙場골]로 불렸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성연면에 오지평[梧枝村], 직동(直洞), 사장[砂洞], [生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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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한 법정리. 가로림만을 두고 마주보고 있는 독곶리(獨串里)와의 사이에 있는 갯벌을 하나의 거대한 웅덩이로 보았기 때문에 이를 ‘오지(洿池)’라고 하다가 후에 오(洿)자를 쉬운 오(吾)자로 바꾸어 ‘오지(吾池)’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오지리(吾池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오지리는 본래 대산면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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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오동(烏洞)의 ‘오’자와 백학동(白鶴洞)의 ‘학’자를 따서 오학리(烏鶴里)가 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오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가금골[烏洞], 아골[白鶴洞]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오학리는 조선 시대 해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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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누운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누운고개라고 하기도 했고, 또는 마을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와우리(臥牛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암소고리[牛峴里] 등 관련 명칭이 보인다. 와우리는 조선 시대에 덕산군 외야면 슬치리에 속한 지역으로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해미군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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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895년 행정 개편 당시 왕동(旺洞)의 ‘왕(旺)’자와 세정동(細井洞)의 ‘정(井)’자를 따서 왕정리(旺井里)라 하였다. 또는 성왕산의 ‘왕’자와 우물의 ‘정’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상성연면에 왕동, 세정리[細井洞], 직동(直洞)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왕동, 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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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암산(燕岩山) 밑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에 용바위가 있으므로 용바위 또는 용암리(龍岩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고북2면에 룡암[龍岩里]·시름뫼[甑山里]·령리[梅嶺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고종 32)에 단행된 행정 구역 개편으로 용암리는 해미군 상도면 용암리, 증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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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용연리(龍淵里)의 ‘용’자와 장항리(獐項里)의 ‘장’자를 따서 용장리(龍獐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룡못[龍淵里], 노로목니[獐項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용장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장항리, 묵현리(墨峴里), 장평리(場坪里), 숙용평리(宿龍坪里)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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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의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자연 마을인 용비동(龍飛洞)에서 ‘용’자와 보현동(普賢洞)에서 ‘현’자를 따서 용현리(龍賢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해미군 부산면 갈골[葛洞], 보현동, 벌말[伐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용현리는 용현1리와 용현2리로 구성된다. 용현1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군 동음암면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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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때, 운전리(雲田里)의 ‘운’자와 산후리(山後里)의 ‘산’자를 따서 운산리(雲山里)라 하였다. 운전리는 망일산(望日山) 밑의 마을이었는데, 산이 높고 구름이 많은 탓에 밭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하여서 구름밭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옮길 때 운전리가 되었다. 산후리는 망일산의 뒤편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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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운천면(雲川面)에서 ‘운’자와 부산면(夫山面)에서 ‘산’자를 따서 운산면(雲山面)이 되었다. 운산면이라는 이름이 가야산에서 유래하였으며 구름 속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가야산과 전혀 관련이 없이 생겼다. 운산면은 서산시에서 연혁이 가장 복잡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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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웅도리(熊島里)는 곰섬에 있는 마을이다. 곰섬은 섬의 형태가 곰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명칭인데, 후에 지명을 한문으로 표기함에 따라 웅도(熊島)가 되었고 마을도 웅도리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곰섬[熊島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웅도리는 본래 서산군 지곡면 관할이었다가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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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웅소성리(雄梳城里)는 마을 동쪽 지붕재 남쪽 끝에 웅소성[어리성]이라는 토성이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웅소성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어루셩니[雄梳城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 해미현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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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금리(元琴里)의 ‘원’자와 벌리(伐里)의 ‘벌’자를 따서 원벌리(元伐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장동(壯洞), 원금의[元琴里], 별말[伐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원벌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운천면 벌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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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때 홍주목(洪州牧)의 교통 요지로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원집이 있어 원벌 또는 원평리(元坪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원벌, 졀[元上里], 으름[義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홍주군 합북면 북원당리, 남원당리, 영산곳리 등 세 마을이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부산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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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유산리(遊山里)에서 ‘유’자와 명계리(明溪里)에서 ‘계’자를 따서 유계리(遊溪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암면에 베틀말[機村], 노루뫼, 가벌[石川里], 셕바탕이[石亭里], 명게리, 다리[大橋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동암면 대교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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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침공으로 충청남도 서산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 전쟁 초기 미군과 인민군의 전투는 주로 경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므로 서산군에서는 전투와 관련한 직접적인 피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서산 사람들이 전쟁의 와중에 목숨을 잃거나 이산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서산 지역에서도 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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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율리(栗里)에서 ‘율’자와 목과동리(木果洞里)에서 ‘목’자를 따서 율목리(栗木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두치면에 밤실, 시골[排時洞], 모과울[木果洞], 즘말[店村], 장양동(章陽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두치면 배시동과 목과동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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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에서 은을 캐냈던 광산. 조선 전기에 조정에서 은광을 발굴하기 위해 특별히 서산 지역에 은장(銀匠)을 보내 은을 채굴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17년(태종 17) 해미현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지곡현(地谷縣)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보고하자, 관가에서 이를 확인하고 파내어 납 1근 8냥을 녹여 정련하니 백은(白銀) 1전 3푼가량이 나왔다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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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문양1리의 들림바위[音岩, 소리 나는 바위, 두룸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 동음암면(冬音岩面)이었으나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동을 떼고 음암이라고 불렀다. 또한, 동음(冬音)은 둥글다는 뜻인 둠의 표기로 쓰였으며, ‘동음암(冬音岩)’은 둥근 바위라는 뜻이다. 문양1리 두룸배[일명 들음배] 마을은 말발굽같이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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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읍내리(邑內里)는 조선 시대 서산 해미읍성이 있던 해미현의 중심 마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서산 해미읍성은 1418년(태종 18)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이 해미현으로 옮겨진 후 1651년(효종 2) 다시 청주 상당성으로 옮길 때까지 233년간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이었던 곳이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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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그 집단. 인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전체 혹은 특정 인간의 집단을 지칭한다. 충청남도 서산시의 인구는 1976년 26만 6669명을 최고점으로 계속 감소하였다. 인구 감소의 원인은 1960년대 이후의 이촌향도 현상과 관련이 있지만, 더 직접적인 원인은 1989년 1월 1일 행정 구역 변경에 의해 서산군에서 태안군이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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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충청남도 서산시의 절대적 위치 즉, 수리적 위치는 북쪽 끝이 북위 37°00′[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남쪽 끝이 북위 36°36′[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동쪽 끝이 동경 126°39′[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서쪽 끝이 동경 126°22′[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이다. 서산시의 지리적 위치는 충청남도의 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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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일호리(日豪里)와 남동리(籃洞里)에서 한 자씩 따서 일람리(日藍里)라 하였다. 일호(日毫)는 마을을 개척할 때 햇무리가 나타나 햇무리 또는 햇물말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역하면서 일운이 또는 이후니라 부른 것으로 보이며, ‘일운(日暈)’의 오기로 추정된다. 람동(籃洞)은 마을 뒷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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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왕조의 지방지배체제는 ‘갑오·을미개혁’ 이후 커다란 변화를 거쳤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1895년 부(府)·군(郡)·현(縣)제를 일체 폐지하여 군으로서 명칭을 통일하고 각 군을 군세(郡勢)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그런 뒤 군에는 군수를, 면에는 면장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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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개편으로 여러 리가 병합되었는데, 장선리(長善里)에서 ‘장(長)’자를 따고 고요동(古要洞)에서 ‘요(要)’자를 따서 장요리(長要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면에 쟝션니[長善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홍주목 고북면 장선리, 화산리, 고요동리 등으로 있었다. 1895년(고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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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거쳐 천안과 장항을 잇는 철도.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 등의 내포 지역은 일제 강점기 철도 교통의 사각지대에 속하였다. 1931년 8월 천안과 장항을 잇는 충남선[현 장항선]의 완공으로 기존에 바닷길을 통해 인천을 경유하던 서산 지역의 물산이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천안 경유] 방면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서산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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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장이치리(長而峙里), 어현리(於賢里), 독주동(犢走洞)이 합해지면서 장이치리에서 ‘장’자와 어현리에서 ‘현’자를 따서 장현리(長賢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장이[長而洞], 어현이, 독쥬[犢走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에 속한 어현리와 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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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춘수(春叟). 아버지는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귀화한 정신보(鄭臣保)이다. 이후 정신보는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머니는 고창군부인 오씨이고, 부인은 양주군부인 진씨이다. 동생은 정준경(鄭俊卿)이다. 정인경(鄭仁卿)[1237~1305]은 1254년(고종 41) 과거에 급제하고, 1256년 원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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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이 받은 공신 녹권. 정인경[1237~1305]은 고려 원종 대에 태자인 심(諶)[훗날 충렬왕]을 호종하여 두 차례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1261년(원종 2) 쿠빌라이 즉위 축하 사절로서 입조하는 태자를 호종하였고, 섭교위(攝校尉)의 직에 있던 1269년(원종 10)에는 호위무관 겸 통역관으로 태자를 시종하였다. 특히 귀국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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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의 묘지명. 정인경 묘지명은 1306년(충렬왕 32) 2월에 제작되었다. 정인경[1237~1305]은 서산에서 중흥조(中興祖)와 같이 추앙되며 존경받는 인물이다. 정인경은 몽고 침략기인 고종 말년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공격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 이후 무반으로 입신하여 즉위 이전의 충렬왕을 호종하여 두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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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의 인사 기록. 양렬공(襄烈公) 정인경[1237~1305]은 아버지인 남송 관인 정신보가 1237년(고종 24) 서산에 정착함에 따라 서산에 살게 되었다. 정인경은 고종 말년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공격하여 전공을 세우고 무반으로 입신하였다. 몽고어에 능통하여 외교적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장군, 상장군, 삼사사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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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한가운데에 느티나무가 있어 여름철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더위를 식히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에 마을 이름도 이 정자나무에서 유래되어 정자리(亭子里)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 양질의 금광이 있었다 하여 양금리라고도 부른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 고북면 중기리, 신기리였으며,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에서 해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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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서산 지역의 정치 활동으로는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국회 의원, 광역 단체장, 지역 단체장, 시 의원 등을 선출하는 지역민의 활동과 이를 통해 선출된 지역 단체장 및 시의원들이 서산시청과 서산시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 자치 활동을 들 수 있다. 국회나 시 의회에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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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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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중리(中里)와 왕산리(旺山里)가 합해지면서 중리에서 ‘중’자와 왕산리에서 ‘왕’자를 따서 중왕리(中旺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즁뫼, 왕산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왕산리와 중촌리(中村里)로 되어 있었으나 1895년 중촌리의 명칭이 중리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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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지육현(知六縣)으로 불리다가 통일 신라 시대에 지육현(地育縣)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고려 시대에 지곡현(地谷縣)으로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54개국 중의 하나인 치리국국(致利鞠國)이었으며, 삼국 시대에는 지육현(知六縣)으로 변경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부성군에 예속된 지육현(地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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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주민이 지역의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현안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제도. 지방 자치는 일정한 구역의 주민들이 법률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방 자치 단체를 구성하여 중앙 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그 단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과 관련된 지방적인 사무, 즉 지방의 정치와 행정 사무를 주민들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 아래 선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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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전체를 관할하는 기군(基郡) 예하에 지육현(知六縣)이 편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편입 이전에 서산은 마한의 치리국국(致利鞠國)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육현(知六縣) 설치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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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의 이전 반대 운동. 1932년 10월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되면서, 도내 지역 지방 관공서의 이전 혹은 재배치 문제가 지역 사회의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의 폐쇄 문제를 둘러싼 민원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이 폐쇄된다는 정보가 알려지자 193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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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진산리(榛山里)의 ‘진’자와 장북리의 ‘장’자를 따서 진장리(榛墻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고성리, 장북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진산리, 고셩리[古城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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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충청남도 도령(道令)에 따라 충청남도 서산에서 조직된 단체. 1916년 8월 충청남도 도장관 오하라 신조[小原新三]가 각 군에 훈령으로 미풍양속 보호 및 유지, 지방 개량을 목적으로 옛날부터 내려온 향약례를 모방하여 마을 단위로 진흥회를 조직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26년 10월 24개 면의 진흥회 회장들이 서산군청의 농회장(農會場)에서 모여 서산군연합진흥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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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북쪽에 위치한 금강산과 장군봉 사이 수리봉[車峯, 鷲峯] 또는 현재 차리1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인 수랑재와 관련이 있는 지명으로 보인다. 1974년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는 수리재 아래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수릿골 또는 차동(車洞)이라 부른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1911년 간행된 『조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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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창고 터. 창리(倉里) 창촌(倉村)은 조선 시대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지역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조운을 통해 운반되는 세곡의 저장 공간이었고, 또한 배를 만드는 창고인 선박소의 기능도 하였다. 창촌 창터는 1800년대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화변면 왜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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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 들여서 태양열로 수분을 증발시켜 식염을 결정시키는 방법.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서산군에 염소(鹽所)가 1곳, 염정(鹽井)이 2곳, 염분(鹽盆)이 3곳, 해미현에는 염분(鹽盆)이 1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본래 가마솥에서 바닷물이나 농축된 소금물을 끊여서 생산해 낸 소금인 자염(煮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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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운동 경기 및 체육 활동과 관련 체육 단체. 서산의 체육은 자연적으로 전래되어 오는 전통 체육과 광복 후의 근대 체육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서산의 근대 체육은 1911년 9월 1일 서산초등학교와 1912년 5월 10일 해미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여러 가지 체육 활동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력을 향상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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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서산시의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서산초등학교이다. 서산초등학교의 전신은 1908년에 설립된 서령학교이다. 서령학교는 풍전신숙과 함께 구한말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근대적 사설 교육 기관이었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가 ‘사립학교 규칙’을 통해 그 시설 및 재산을 강탈하여 보통학교를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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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암산(燕岩山) 아래에 새초풀이 파랗고 무성하게 자라서 ‘새푸르기’라 하였는데, 지명의 한자 표기에 따라 초록리(草綠里)로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2면에 초록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홍주목 고북면 초록리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초록리는 조선 시대에 55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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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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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시 관할 교육 행정 기관. 충청남도 서산교육지원청은 서산시의 교육·과학·기술·체육 및 기타 학예에 관한 사무를 지원하여 서산 교육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2년 6월 4일 교육 자치제의 실시로 농업협동조합 건물에 서산교육청으로 설립되었다. 1958년 7월 9일 서산군 서산읍 읍내리 491번지의 건물로 이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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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옻나무밭이 많으므로 옻밭굴, 옻밭말[漆田村], 또는 칠전(漆田)이라 하였으나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옻 ‘칠(漆)’자를 쓰는 칠전리(漆田里)에서 일곱 ‘칠(七)’자를 쓰는 칠전리(七田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옷박골[七田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칠전리는 조선 시대 화변면 칠전리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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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탑동(塔洞)에서 ‘탑’자와 중곡리(中谷里)에서 ‘곡’자를 따서 탑곡리(塔谷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음암면에 탑동, 즁곡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안치리(雁峙里), 가토곡리(加土谷里), 고양동리(高陽洞里)였으며, 현재의 부산리(富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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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명종(明宗)의 태(胎)가 묻힌 태봉(胎峰)이 지역 내에 있어서 태봉골[胎封洞] 또는 태봉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운천면(云川面) 장동(壯洞)과 부산면(夫山面) 봉골[胎封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태봉리는 조선 시대 서산군 동음암면 갈동과 홍주목 운천면 장동에 속하여 있던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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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임시로 설치한 태안군 치소. 태안군은 고려 후기인 1373년(공민왕 22)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화를 모면하기 위해 서산으로 치소(治所)를 이전하게 된다. 현재 서산시의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충청도 태안군(泰安郡) 궁실(宮室)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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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팔봉면(八峰面)은 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팔봉산(八峰山)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1619년(광해군 11)에 간행된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팔봉산은 군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데 여덟 봉우리가 기이하게 산 위에 나열되어 있으므로 팔봉산이라 부른다”라고 하여 그 유래를 설명해 주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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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팔곡리(八谷里)의 ‘팔’자와 중산리(中山里)의 ‘중’자를 따서 팔중리(八中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팔고리[八谷里], 즁뫼리[中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팔골리와 중산리가 있었던 지역으로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산리에서 이티리가 분할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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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평한 지형에 생긴 마을이라 평리(坪里) 또는 벌말이라고도 하며, 신라 시대에는 벌이라고 불리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下聖淵面)에 상평쵼[上坪村], 신당리(新塘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평촌, 파평촌, 신당리가 한 마을로 통합되어 서산군 성연면 평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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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 후 당군(唐軍)에 의해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660년 백제는 신라·당 연합군에 의해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된 직후 멸망하였다. 당은 백제 고지(故地)에 대한 지배 야욕을 드러내며 행정 구역을 개편, 5도독부를 설치하였으나 백제 부흥군의 활동으로 실질적인 지배는 실현하지 못하였다. 이에 당은 백제 부흥군을 진압하고 664년 웅진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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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땅과 자연 형세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인간의 삶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소, 가령 묘지, 가택,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의 입지 선정 및 방위 배치, 공간 구성 등에 사용해 온 한국의 전통 지리학이자 공간 인식 체계이다. 풍수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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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전리(豊田里)는 조선 시대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에 속한 풍전역(豊田驛)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풍전역을 확인할 수 있어 그 명칭의 기원이 조선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역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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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던 사립 학교. 개항기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전국 각지에는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사립 학교가 설립되어, 이른바 ‘교육 구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순종 2) 충청남도 지역의 공·사립 학교 수는 88개였으며, 전체 교사 수는 255명, 학생 수는 3,820명이었는데, 같은 시기 서산, 태안, 해미 지역에는 6개의 교육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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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1월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성에서 벌어진 내포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1894년 이른바 예포[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서산 지역의 동학 교도들은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홍주성 전투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동학 농민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해야 할 중요한 전투였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이후 해미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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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407년(태종 7) 정해현의 ‘해’자와 여미현의 ‘미’자를 따서 해미면(海美面)이라 이름하였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의 동면과 남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면과 남면에 속한 동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으로 개편하고, 관유리, 귀밀리, 기지리, 대곡리, 동암리, 반양리, 산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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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바다에서 침입하여 들어오는 도둑을 막으려고 3면이 바다에 접한 해안에 성을 쌓은 데서 연유하여 해성(海城)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해성리(海城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에 셩쵼[內城村], 외셩쵼[外城村]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행정 개편 때 내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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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행정은 중앙 및 지방 행정 기관에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공적 행위를 지칭한다. 이러한 공적 행위는 주로 공공 정책을 입안하거나 결정, 집행,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구현하게 된다. 반면 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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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편찬된 향토의 지리, 역사, 사회, 전승(傳承) 등에 관한 기록. 향토지는 향토에 관한 다방면의 정보를 기록한 자료로 조선 시대의 읍지와 지리지, 현대에 제작된 군지와 시지, 그리고 읍지·면지 등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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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리(虎里)는 마을의 지형이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호두리, 그리고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내호두리(內虎頭里), 외호두리(外虎頭里)라는 명칭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풍수(風水) 형국상 호랑이 모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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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홍천리(紅泉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 동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동면의 분홍리, 천곡리, 동산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홍천리로 하고 서산군 지성면에 속하게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분홍리(分紅里)가 보이며, 1911년 간행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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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한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개화리(開花里)의 ‘화’자와 반곡리(盤谷里)의 ‘곡’자를 따서 화곡리(花谷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반곡리, 개화동 등 관련 지명이 확인된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산면에 소속된 반곡리와 개화리 두 지역을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하면서 화곡리가 만들어졌다. 행정 구역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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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화계리(花溪里)의 ‘화’자와 수현리(秀峴里)의 ‘수’자를 따서 화수리(花秀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성산리(星山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분토골[花溪里], 반계리(磻溪里), 수현리, 성산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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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천리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에 위치한 흑점리(黑店里)와 율곡리(栗谷里)였다. 1895년 흑점리가 화동으로 바뀌고 율곡리가 율리(栗里)와 목곡리(木谷里)로 각각 나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천리를 편입하여 화천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머[遠川里],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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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환성리(環城里) 지역은 마을 모습이 문고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골환이[谷環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문곶리(門串里)와 지곡면 대요리(大要里) 사이에 동서로 쌓은 토성(土城)인 나성(羅城)이 있었으므로 골환이의 ‘환’자와 토성의 ‘성’자를 따서 환성리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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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황조촌(皇朝村)의 ‘황’자와 일락촌(日洛村)의 ‘락’자를 따서 황락리(皇洛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일악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일낙골[日洛洞], 터골[皇朝村],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일락동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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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부엉이처럼 생긴 부엉바위가 있어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도 부엉바위를 의미하는 휴암리(鵂巖里)라는 명칭이 확인된다. 후에 ‘부엉이 휴(鵂)’자가 ‘쉴 휴(休)’자로 바뀐 것 같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부흐산[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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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들 가운데 볏섬 크기 정도의 커다란 검은 바위가 있었다고 하여 검은돌, 거문들, 흑석 등으로 불렸다고 전하지만, 농지 정리 작업 과정에서 없어져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일설에는 대황2리 마을 바닷가에 있는 검은 바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흑석리(黑石里),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