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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경 묘지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96
한자 鄭仁卿墓誌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윤용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306년 2월연표보기 -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방우선(方于宣)이 묘지명을 지음
이전 시기/일시 1981년 9월 30일연표보기 - 창덕궁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
현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 6가 168-6]
성격 비석
재질 석판
소유자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정의]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의 묘지명.

[개설]

정인경 묘지명은 1306년(충렬왕 32) 2월에 제작되었다. 정인경[1237~1305]은 서산에서 중흥조(中興祖)와 같이 추앙되며 존경받는 인물이다. 정인경몽고 침략기인 고종 말년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공격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 이후 무반으로 입신하여 즉위 이전의 충렬왕을 호종하여 두 차례 원나라에 입조한 바 있다. 또한 몽고어 통역관으로 활동, 원나라 간섭기에 추밀원사, 첨의중찬의 고위직에 올랐다. 그는 충렬왕이 즉위하자 시종 1등 공신이 되었으며, 그의 공으로 1284년 부성현이었던 서산은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서주목으로 승격하였다. 즉 현에서 군, 군에서 목으로의 승격과 함께 부성이 서산 혹은 서주(瑞州)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것은 정인경의 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형태]

정인경 묘지명에는 직사각형 석판을 상하로 길게 세워 외곽선을 치고 세로 방향으로 글을 내려썼다. 제목은 ‘벽상삼한 삼중대광 추성정책안사공신 광정대부 도첨의중찬 상호군 판전리사(壁上三韓三重大匡推城定策安社功臣匡靖大夫都僉議中贊上護軍判典理事)’로,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한 정공(鄭公) 묘지명’으로 되어 있다. 묘지명에는 가계에 대한 언급, 서산 지역에 대한 공헌을 간략하게 밝혀 놓았다. 또한 관리로 나아가게 된 계기, 관직의 승급 과정과 퇴임, 사망 사실을 기록하였다. 또한 4남 2녀의 자녀에 대하여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운문으로 작성한 명(銘)을 덧붙였다.

묘지명에 따르면 정인경은 1305년 9월에 병이 들어 12월 17일 향년 69세로 자택에서 죽었으며, 이듬해 1306년 2월 19일 박현(樸峴)에 장례를 지냈다고 한다. 정인경 묘지명은 1306년 2월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방우선(方于宣)이 지은 것이다. 창덕궁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981년 9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

[의의와 평가]

정인경은 묘지명 이외에 공신 녹권, 정안 등의 자료가 전한다. 묘지석을 포함한 이들 자료들은 14세기의 정치와 인사 제도 등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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