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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034
한자 古文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고문서 소장 위치 홍양일기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444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기록의 발급자와 수취자 간에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주고받은 문서의 총칭.

[개설]

고문서는 역사학의 기본이 되는 문헌 사료로, 대부분이 유일본이다. 형태는 낱장이 많고 이것을 책처럼 묶은 성책 고문서도 있다. 종류는 매우 다양하여 관문서(官文書)·공문서(公文書)·사대문서(事大文書)·교린 문서(交隣文書) 등 공공의 성격을 갖는 문서와 개인 간에 주고받은 사문서가 있다.

[서산의 고문서]

서산의 대표적인 고문서로는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22호로 지정된 윤시영(尹始永)『홍양일기(洪陽日記)』에 포함된 문서가 있다. 윤시영은 1906년 홍주에서 군수로 재직하면서 1906년 4월부터 5월까지 2개월간 관할의 군정을 기록하였는데, 당시 벌어진 의병 운동, 빈민 구호 활동, 홍주의 행정 등을 상세히 밝혔다. 일제 강점기 초기의 국내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또한 음암면유계 2리경주 김씨는 한다리 김씨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김연(金堧)이 서산에 정착한 이후 17세기 중반 부터 서인의 핵심 가문으로 성장하여,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을 배출하고 영조의 딸 화순옹주(和順翁主)를 며느리로 맞는 등 당대 최고의 벌열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고문서는 이들 가계의 김홍익(金弘翼) 후손가, 김홍욱(金弘郁) 종가, 학주후손가(鶴洲後孫家)(1, 김택영 소장 자료), 학주후손가(2, 김윤환 소장 자료) 등 5개 종가자료로 구분하여 수록하고 있다. 서산경주 김씨 소장 고문서는 대부분 배출인물의 관력과 행적을 보여주는 교령류, 호적류, 간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홍익 후손가의 교령류 50여 점, 김홍욱 종가의 교령류 50여 점, 간찰 295점, 그리고 장기(掌記), 추수기(秋收記), 전답안(田畓案) 등의 치부(置簿)가 남아 있어 종가의 교유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학주후손가(김택영 소장)의 경우에도 교령류가 150여 건에 이르며, 학주후손가(김윤환 소장)의 경우는 호적류와 간찰 90여 점이 소장되어 있고, 특히 19세기 말의 강사록(講舍錄), 위문록, 영문록 등의 생활사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비지정 문화재로 서산시에 현존하는 고문서에 대해 모두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2006년 충청남도와 문화재청에서 다량 소장처에 대한 기초 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는데, 이때에 서산시에서는 개인 소장 고서와 문서가 17건[전적 16건] 가량 확인되었다. 2003년에는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의 유씨가 소장한 고문서 4건이 조사되어 『서산의 문화』 제15호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또한 2011년에는 금성 정씨정충신 일가의 고문서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서산향교에는 대부분의 문서가 도난당하는 등 멸실되었고, 해미향교에 전해지는 『청금록(靑衿錄)』과 『선안(仙案)』은 1800년대 자료로 추정된다. 사액 서원인 성암서원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그 과정에서 문서류가 사라진 것으로 보이며, 후에 편집된 『성암서원지(聖巖書院誌)』를 통해 고문서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

서산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송곡사는 1977년에 발행된 『오선생행장록(五先生行狀錄)』에 서원 운영 관련 문서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970년대까지 문서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없어졌다. 송곡사의 『심원록(尋院錄)』은 1796년부터 작성된 것으로 송곡사에 드나들었던 옛 사람의 명단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6.22 내용 추가 서산의 고문서 부분 내용 추가 및 참고문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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