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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교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400
한자 泰安郡僑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73년연표보기 - 왜구의 침입으로 태안군 치소를 서산군 관내로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83년연표보기 - 태안군 치소를 서산군에서 예산현으로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90년연표보기 - 태안군 치소를 예산현에서 서산군으로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16년연표보기 - 태안군 치소가 본토로 돌아감
관할 지역 태안군 교군 - 충청남도 서산시

[정의]

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임시로 설치한 태안군 치소.

[제정 경위 및 목적]

태안군은 고려 후기인 1373년(공민왕 22)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화를 모면하기 위해 서산으로 치소(治所)를 이전하게 된다. 현재 서산시의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충청도 태안군(泰安郡) 궁실(宮室)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내용]

고려 후기 왜구들이 고려의 연안 지역에 무수하게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서산군의 서쪽에 위치한 태안군은 서해 연안 지역으로, 태안군 앞바다는 당시 수도 개경으로 가는 조운로였다. 따라서 왜구의 약탈 루트로 많이 이용되었다. 1373년 태안군이 왜구의 피해를 입게 되자 치소를 다른 지역으로 임시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곳을 교군(僑郡)이라 했다. 태안군 교군은 이런 연유로 생긴 것이다.

[변천]

1373년 왜구의 침입을 피해 서산군태안군 교군이 설치되었으나, 이 또한 안전하지 못해 1383년(우왕 9)에 예산현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서산에 성보를 쌓아 순제(蓴堤)라 하고 다시 돌아오니 이때가 1390년(공양왕 2)이었다. 이후 왜구의 침입이 줄어들자 조선 시대인 1416년(태종 16)이 되어서야 태안군으로 다시 돌아갔다.

[의의와 평가]

태안군 교군은 당시 군현 치소의 특이한 행정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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