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968
한자 獨立運動家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지수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서병철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송봉운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맹달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정의]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들로 국가보훈처에서 공식 인정한 인물들.

[개설]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 탑재되어 있는 포상자 공적 조서 중 서산 출신은 147명[1명은 당진 출신자로 서산 지역에서 활동, 현 당진군 대호지면도 당시 서산군 소속이므로 합산함]으로 확인된다. 훈격별로 보면 애국장 5명, 애족장 49명, 건국포장 4명, 나머지는 대통령 표창이다. 포상자 147명 중 3·1 운동 관련자는 132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애국장 수상자]

1. 맹달섭

맹달섭은 1906년 5월 충청남도 홍산(鴻山)에서 거의한 민종식(閔宗植) 의진(義陣)에 참가하였고, 충청남도 정산·부여 및 경기도 죽산, 양성 등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홍주의진이 해산된 이후에도 1910년까지 충청남도 서산군, 공주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서병철

서병철은 1919년 4월 대한독립단에 가입한 이래 1919년 8월 대한독립단 서산지단을 조직하고, 1920년 1월 김상옥(金相玉) 암살단 활동에 참여하여 사재로 활동원의 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두 번에 걸쳐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 송봉운

송봉운은 1919년 4월 7일 서산군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3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다가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인하여 순국하였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4. 김도일

김도일은 1919년 4월 4일 천의장터[현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에 운집한 1,0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면장 이인정 등이 주도한 독립 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하였다.

5. 이달준

이달준은 1919년 4월 8일 서산군 대호지면 송전리에서 주민 300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다 일본 경찰에게 잡혀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하였다.

[애족장 수상자]

1. 이기웅

이기웅은 1943년 7월부터 8월 사이 서산읍에서 정재학(鄭在學) 등과 얘기를 나누던 중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영국이 승리할 것이며 미국이 승리하면 조선도 독립되고 기독교 신자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내용의 시국담을 유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2. 전흥순

전흥순은 1940년 2월 상해시립상과대학 상과를 졸업한 뒤 1940년 2월 주식회사 상해은행 본점에 입사하여 1942년 4월 사임하였다. 그는 1942년 6월 김병두(金炳斗), 박시창(朴時昌), 박규찬(朴奎燦), 김태준(金泰俊), 김창숙(金昌淑)과 접선하여, 상해와 남경(南京), 제남 일대에서 지하공작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3년 4월에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특수 공작 자금 조달 지하공작 전후방 공작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43년 10월 중지(中支)의 곤명(昆明)·항주(抗州) 지구에 파견되었으며, 1944년 2월에는 곤명·상해 지구의 자금 공작대에 정찰 파견된 이복원(李福源)과 자금 조달 활동을 벌였다. 1945년 8월에 남지(南支) 항주에서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광복군 본부대에 귀대하여 반부(攀附) 이복원 부지대장의 주둔지로 귀대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인정되어 전흥순은 1963년 8월 건국공로 표창장을 받았다.

3. 이서국

이서국은 1940년 서산군 성연면에 있는 성연국민학교에 근무하는 일본인 교장 및 일인 교사 3명이 한국인에게 불미한 행동을 일삼자 이에 분개하여 교장실에서 이들의 악행을 지적하고 일본으로 출국할 것을 주장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41년에는 당진군 대호지면의 주석에서 동석 청년에게 항일 독립 사상을 고취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개월 형에 3년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그 후 출옥하여 일본 북해도의 탄광으로 갔다. 1943년 동경으로 가서 일본청년당에 가입하여 수상 소기(小磯)의 암살 기회를 노렸으나 여의치 않아 국무대신 서방(緖方)을 대신 암살하기로 하고 단도로 내려치다가 체포되었다. 중야형무소에 수형 중 해방을 맞이하였다.

4. 가재연

가재연은 1944년 4월 인천상업학교 출신으로 명치대학교(明治大學校) 학생인 송재필(宋在弼)의 학병 반대 결의문이 일본 경찰에 탐지되자 일본 경찰은 송재필과 동급생들이 한국인 학생 친목회를 결성하였다는 트집을 잡아 체포, 고문하였으며 이때 가재연도 고문을 당하여 순국하였다.

5. 한준

한준은 서산군 부석면 소재 공립 심상소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41년 4월 23일 학생들에게 신문과 잡지 등에서 수집된 일본 왕, 궁성 등의 사진을 넣어 두는 소위 봉호대의 무용함을 비난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았다.

6. 김상정

김상정은 1919년 3월 일본 경찰의 회유책으로 개최된 면민 대회에서 고종의 비(妃) 명성황후 살해의 참변을 면민들에게 환기시키고 일본 왕의 명령은 절대 복종할 수 없다며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작성하여 총독에게 발송하였다. 그 후 납세 및 삭발령을 반대하여 3회에 걸쳐 혈서를 쓰고 항일 정신을 발휘하였다.

7. 이원생

이원생은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충청남도 대표로 활동하며 1923년까지 군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하였다.

8. 김정진

김정진은 1919년 11월 대한독립단 서산지단에 가입하여 조직 강화와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9. 가재창·오몽근·이시우

가재창·오몽근·이시우 등은 1918년 3월 대한독립청년단 안면도지단을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10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정치범 처벌령 반역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받았다.

10. 이종헌

이종헌은 고향의 사립 학교 교장으로서 민족 자주 정신을 함양시키고자 활약하였고, 3·1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대한독립단 면결사단장 군지단장으로서 독립운동 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하다가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