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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리 산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76
한자 新松里山城
이칭/별칭 봉화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집필자 서정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신송리 산성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지도보기
성격 성곽
양식 석성
크기(높이,길이,둘레) 3m~4m[높이]|600m[둘레]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에 있는 석성.

[건립 경위]

신송리 산성(新松里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는 만큼 누가, 언제, 어떠한 목적으로 축조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홍주목 봉수조에 “고구성산 봉수는 남쪽으로 결성현의 고산과 응하고, 서쪽으로는 서산군도비산과 호응한다[高丘城山烽燧南應結城縣高山西應瑞山郡都飛山]”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볼 때 신송리 산성고구현(高丘縣)의 치소였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와 홍성군 갈산면 대사리 사이에 자리한다. 서산시 해미면에서 국도 29호선을 타고 홍성 쪽으로 약 8㎞쯤 가다 보면 고북면 소재지를 지나자마자 길 왼쪽으로 해발 228m의 나지막한 산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봉화산이다. 신송리 산성봉화산 정상부에 자리한다.

[형태]

석축 산성으로서, 서남쪽 성벽이 거의 산봉(山峰)의 정상부를 지나는데 비해 서북쪽 성벽은 7부 능선까지 내려와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지형은 서남쪽이 높고 서북쪽은 낮은 형태이다.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한 관계로 평면 형태는 불규칙한 모습이다.

산성이 자리한 봉화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봉이지만 주변 지역이 해발 고도가 낮은 평지로 되어 있어 전망이 매우 좋은 편이다. 특히 동쪽에서 서해를 향해 뻗어 내린 능선의 서쪽 끝에 산성이 자리하고 있어, 동쪽으로는 전망이 그다지 좋지 못하나 서쪽은 전망이 매우 좋은 편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해를 감시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으로 추정된다. 남쪽과 북쪽 역시 전망이 매우 좋다.

[현황]

신송리 산성은 전체 성벽을 석성으로 축조하였지만 2011년 현재 대부분이 붕괴되어 있어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은 극히 일부분이다. 남아 있는 구간에서 보면 대부분의 구간이 편축식으로 축성되었지만 일부는 협축식의 형태로 남아 있다. 특히 북벽이 협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부분의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3~4m 정도는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둘레는 600m이다. 성내 정상부와 북벽 근처에는 평탄면이 많이 조성되어 있고 규모에 비해 건물 터가 많은 편이다.

성문은 동벽과 서벽, 북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모두 파괴되어 지표 조사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산봉 정상부에 직경 6~7m 크기로 원형 웅덩이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봉수 시설로 판단된다. 성벽 주변으로 잡목과 칡넝쿨이 뒤덮고 있어 실제 성벽의 축성법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신송리 산성봉화산성(烽火山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신송리 산성이 자리한 곳은 백제 때 우견현(牛見縣), 통일 신라 때 목우현(目牛縣), 고려 때는 고구현이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성내에서 수습되는 토기편을 근거로 백제 시대 산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고구현의 치소로 생각되는 만큼 고려 시대 때 지방 치소가 산성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치소가 고려 시대 때 새롭게 출현한 것인지, 아니면 백제 시대나 통일 신라 시대 이후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것인지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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