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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027
한자 人文地理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진종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284년 - 정인경의 공으로 서산군으로 승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산군, 태안군, 해미군을 통합하여 서산군이 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 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서산군과 서산시가 서산시로 통합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개설]

충청남도 서산시의 절대적 위치 즉, 수리적 위치는 북쪽 끝이 북위 37°00′[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남쪽 끝이 북위 36°36′[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동쪽 끝이 동경 126°39′[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서쪽 끝이 동경 126°22′[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이다. 서산시의 지리적 위치는 충청남도의 북서부이며 한반도 전체로는 중부 지방의 서해안에 접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서산은 바다를 통해 대륙의 문화를 일찍 받아들여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고려 시대 이후 서산 지역은 내포 지방의 핵심 지역으로 충청 지역에서 공주를 중심으로 한 내륙의 문화권과는 구분되는 지역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최근 중국과의 교류 확대와 함께 이른바 서해안 시대의 개막을 통해 서산의 지리적 위치는 갈수록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변천]

서산이라는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최초로 나타나지만, 그 뿌리는 1200년 전 마한의 56개 속국 중 하나인 치리국국(致利鞠國)이라고 알려져 있다. 치리국국으로 출발한 서산은 백제 시대에는 기군(基郡)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 부성(富城)으로 불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1284년(충렬왕 10)에는 몽고군을 물리친 정인경(鄭仁卿)의 공로로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지위 격하와 복군의 부침을 겪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산군, 태안군, 해미군을 통합하여 17개 면의 서산군이 되었다. 서산은 서령면·음암면·인지면·부석면·팔봉면·지곡면·대산면·성연면 등 8개 면으로, 태안은 태안면·소원면·원북면·근흥면·이북면 등 5개 면으로, 해미는 고북면·운산면·정미면·대호지면 등 4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1989년 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서산군과 서산시는 통합 서산시로 개편되었다.

[인구]

2011년 6월 말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의 총인구는 16만 3655명[남 8만 3589명, 여 8만 66명]이며 이중 외국인은 2,777명으로 전체 인구의 1.72%를 차지하고 있다. 가구 수는 6만 3893가구이며 가구 당 인구수는 2.45명이다. 14만 5552명[남 7만 6461명, 여 6만 9091명]이었던 1991년에 비해 20년 동안 서산의 인구는 12.4% 증가하였다.

인구 변화의 추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76년 26만 6669명을 기점으로 이촌향도 및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였다. 그러나 1994년[14만 331명] 이후 천안, 아산, 당진 등과 함께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충청남도 북부 지역의 산업화로 인한 고용 기회의 증가 및 수도권과의 접근성 증대와 관련되어 있다. 가구 당 인구수는 1991년 4.0명, 1995년 3.4명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1년 현재 2.45명에 이르게 되었으며 전국적인 핵가족화를 반영하고 있다.

지역별 인구 구조를 보면 행정 구역 개편 이전에 서산군이었던 대산읍과 면 지역이 2011년 현재 각각 1만 6516명과 6만 3586명으로 서산 지역 전체 인구의 48.9%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 지역은 8만 3553명으로 51.1%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1995년 읍면 지역[기존 서산군]의 인구는 8만 2371명으로 서산 지역 전체의 58.7%, 동 지역은 5만 7960명으로 서산 지역 전체의 41.3%를 차지하였다. 지난 16년 동안 도시 지역은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농촌 지역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여 도시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취락과 가옥]

서산 지역의 촌락 형태에서 가장 큰 특징은 산촌(散村)의 발달이다. 서산은 태안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산촌이 잘 발달한 대표적 지역이다. 서산 지방의 촌락 형성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크게 세 가지 요인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동족촌은 한국 촌락의 원형이며 서산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잘 나타나고 있다.

『서산시지』에 따르면 서산의 동족촌 대부분은 100년 전에서 500년 전에 이르는 기간 즉, 조선 시대에 발생하였다. 둘째, 태안 지역과 함께 서산의 촌락은 해만 개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간척 사업을 통해 촌락이 형성되었으며, 해안 지역 곳곳에서 소규모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를 개간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셋째, 임야 개척을 통해 지속적으로 촌락이 형성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정부에 의해 농지 개간이 장려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보다 대규모로 임야를 개척하여 농지와 촌락이 형성되었다.

서산의 전통적 가옥의 형태는 ㅡ자형과 ㄱ자형을 기반으로, 3칸 형, 4칸 형, 5칸 형, 6칸 형이 있다. 양반 주택으로는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서산 김기현 가옥과 정순황후 생가가 유명하다. 최근에는 도시화된 지역뿐만 아니라 농촌 지역에도 대부분의 가옥이 개량된 현대적 주택으로 바뀌었다. 또한 아파트 경관이 빠른 속도로 서산 지역에 확산되고 있다.

[교통과 산업]

경부고속국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서해안고속국도가 서서울톨게이트와 서산시를 한 시간 이내[88㎞]로 연결시켜 서산의 산업 성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서산일반산업단지, 서산2일반산업단지, 서산테크노밸리일반산업단지, 대죽일반산업단지, 대산1일반산업단지, 대산2일반산업단지, 명천농공단지, 성연농공단지, 고북농공단지, 수석농공단지대산항을 기반으로 하는 11개의 대규모 산업 단지는 중부권의 대중국 진출의 교두보이자 도래하고 있는 서해안 시대의 전진 기지이다.

특히 2011년 하반기에 준공 예정인 서산시 지곡면성연면 일대 405만 2155㎡의 일반 산업 단지 ‘오토폴리스’는 현대파워텍과 SK이노베이션 등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대거 입주하여 고용 창출과 세수 확보를 통한 지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2009년 5월에 개통한 당진대전고속국도는 서산 지역과 중부 지방 내륙을 잇는 동서 교통망을 구축하여 전국적으로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서해안고속국도와 연결되는 당진대전고속국도 대산항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 단지와의 접근성이 여전히 미비한 상태이다. 향후 대산항까지 연장될 경우 충청도의 대중국 연계망에서 서산은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대산항은 충청남도 유일의 국가 관리 항만으로서 전국 28개 무역항 중 2009년 컨테이너 화물 물동량 증가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에 있어서 지리적 접근성이라는 상대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기반 시설이 부족하여 인천항이나 군산항에 뒤쳐져 왔으나 현재 다목적 부두를 건설하고 있어 이후 지속적인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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