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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협의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456
한자 面協議會
영어음역 Myeonhyeobuihoe
영어의미역 Myeon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지수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지방 제도 개혁 과정에서 면협의회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7년 6월연표보기 - 조선면제 실시
성격 자문 기구
설립자 조선 총독부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면 행정 자문 기구.

[설립 목적]

1917년 6월 총독부 제령[제1호]에 따라 조선면제(朝鮮面制)가 실시되면서 전국의 모든 면에 일종의 ‘법인격’[독자적인 사업 능력과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배경 아래 1920년 지방 제도 개혁 과정에서 면협의회가 설립되었다.

[변천]

3·1 운동 직후인 1920년 총독부는 조선의 유력자 집단을 지배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해 전국 각 면(面)에 협의회를 설치하여 조선인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였다. 서산면의 경우는 1개 면에 10명의 면협의회 의원이 군수의 지명으로 선출되었다. 1923년 11월에 임기가 만료된 서산군의 초대 면협의회 의원의 숫자는 20개 면 200명이었다. 서산군 내에서 면협의회 의원을 역임한 사람들은, 대부분 유력한 동족 마을의 인물들이거나 상당한 재산[토지 재산]과 사회 활동 능력[학력], 또는 이른바 당국 신용과 사회 인망 등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제 강점기 면협의회는 선거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도 아니고, 의결 기관도 아니었다. 다만 의원들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면협의회[의장은 면장]에 참석하여 면 행정, 즉 ① 면의 세입출 예산, ② 법령의 제정 및 사용료·수수료·면부과금·부역 현품 부과 징수, ③ 차입금, ④ 예산외 의무 부담 권리 폐기, ⑤ 재산 처분 기타 중요 사항 등을 자문·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면협의회에 진출하는 일은 서산군 내 많은 유지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불가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위의 기구에 진출해야만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정치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① 간척지 매립·산림 이용, 어로권 확보 등과 관련한 각종 인허가 문제, ② 호별세·영업세, 수리조합비, 삼림조합비, 농회비 등 각종 잡부담의 등급 사정 문제, ③ 자녀 유학 시의 신원 보증 문제, ④ 금융 조합이나 식산은행 관련 각종 정책 자금 융자 문제 등에 면협의회 의원 직함은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마련해 주었다. 따라서 서산군 내의 많은 유력자들은 상당한 정치 비용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면협의회 의원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일제하 면협의회는 자치 기구도 의결 기구도 아닌 일종의 자문 기관이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서산 지역 유력자들은 면협의회 등 공직 기구 활동에 적극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당국 신용’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서산군의 면협의회 의원들은 당국 신용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각종 민원들을 해결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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