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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541
한자 倉里靈神祭
이칭/별칭 당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서산 A·B지구 간척 사업으로 인해 중단
의례 장소 영신당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3일
신당/신체 영신당|임경업 장군 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

[개설]

창리 영신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상당인 산신당과 하당인 영신당(靈神堂) 그리고 장승, 샘 등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서산시 부석면의 최남쪽 천수만 연안에 위치한 창리는 반농반어의 어촌이다. 창리에서는 정월 초사흗날이 되면 상당인 산신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와 하당인 영신당과 장승, 샘 등을 돌며 각각 성대한 당제(堂祭)를 지냈다.

예전에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서 산신제 당주 세 명, 영신제 당주 한 명을 뽑았다. 당굿은 마을의 단골 무녀가 주관을 했으나 단골이 사라진 뒤에는 외지에서 큰무당을 불러서 굿을 한다. 중선을 부리던 시절에는 무당패를 불러 삼현육각을 잡히고 성대하게 축제를 했다.

그러나 1983년 서산 AB지구 간척 사업으로 인해 산신당과 장승이 없어지고, 어업이 쇠퇴하면서 당제의 규모도 크게 축소되었다. 현재는 어촌계의 주관으로 풍어를 축원하는 영신제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일찍이 어업과 연계된 창리 영신제는 무당을 불러 당굿을 벌이는 ‘당굿형 동제’의 전형으로서 오랜 세월 전승되어 왔으며, 이는 충청남도 서해안 당제의 특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창리의 제당은 상당과 하당으로 구분된다. 상당은 마을 북서쪽에 위치한 상당에 산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었다. 또 산의 중앙에는 돌로 제단을 쌓고 발이 부러진 쇠말[鐵馬] 3기가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간척 사업을 위해 도로 공사를 하면서 산신당과 철마는 소실되었다.

하당은 영신당으로서 마을 동북쪽 해안의 당산에 자리한다. 영신당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창리의 제당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당집은 중앙에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기와집으로 건축되었다. 당 내부의 주벽에는 임경업 장군과 그 부인을 그린 화상이 걸려 있으며, 그 밑에 장군 신위(將軍神位), 부인 신위(婦人神位)라고 묵서한 위패를 안치했다. 임경업 장군은 서해안 일대에서 ‘조기의 신’ 또는 ‘풍어의 신’으로 모시는 대표적인 신격이다. 또 주벽 좌측에는 지토당과 슈당, 우측에는 손님 신위와 수배당이라 묵서된 위패가 각각 놓여 있다. 여기에서 지토당은 ‘지신(地神)’을 지칭하고, 슈당은 용왕 신, 손님은 천연두인 호구 별상, 수배는 잡귀 잡신을 뜻한다.

[절차]

산신제는 정월 초이튿날[음력 1월 2일] 당주만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상당에서 노구메[산천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기 위하여 놋쇠나 구리로 만든 작은 솥에 지은 메밥]를 지어 올리고, 술 대신 공동 우물에서 뜬 정화수 세 잔을 바친다. 당주가 재배한 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동 소지와 호당 개별 소지를 한 장씩 올려 준다. 제사를 마치면 노구메로 음복을 하고 자정 전후에 마을로 내려온다.

정월 초삼일 아침에 당주 집에서 당주 고사를 지낸다. 이때 선주들은 뱃기를 당주 집 앞에 세운다. 당주 고사를 마치면 술과 고기를 음복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영신제를 지내러 영신당으로 간다. 이때 풍물패는 뱃기를 앞세우고 영신당으로 향한다. 당산에 도착하면 무당이 당산 입구에 주과포를 진설하고 간단하게 부정풀이를 한 뒤 당산에 오른다. 뱃기는 바다가 보이는 당집 앞에 세우는데, 창리포구가 전성기일 때는 100개가 넘는 뱃기가 펄럭였다고 한다.

영신제는 당주가 먼저 제물을 진설한 뒤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이어서 무녀에 의한 당굿이 시작된다. 1980년대 단골이 당굿을 주관할 때는 지토굿→ 공석굿→ 손님굿→ 수비굿→ 오방굿→ 군웅굿→ 허식굿 등의 순서로 굿을 진행했다. 때문에 예전에는 밤을 지새우며 굿과 만선을 축원하는 배치기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서낭굿과 장군굿만으로 간소화되었다. 이를 마치면 무당이 직접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대동 소지와 각 세대별로 대주 소지를 올려 준다.

[부대 행사]

영신제를 모두 마치면 선주들은 뱃기를 들고 자신의 배로 뛰어가서 각자 당맞이 뱃고사를 지내거나 뱃기만을 꽂아 놓고 온다. 예전에는 당산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배를 가까이에 대놓고 있다가 서로 먼저 뱃기를 꽂기 위해 앞을 다투었다. 뱃기를 먼저 꽂으면 그해 가장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하여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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