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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560
한자 余美里彌勒祭-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70년대 - 여미리 산제 중단
재개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정부 보조금으로 미륵제, 장승제 재개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12월 29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32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0년대 - 여미리 장승 소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5년~1979년 - 미륵불 용장천 정비 사업 때 하천에서 발견되어 현재 위치로 옮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여미리 장승 다시 세움
의례 장소 여미리 석불입상[미륵불]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117-3[여미리 산27-1]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오후 3시
신당/신체 미륵|장승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여미리 미륵제, 장승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오후 3시에 전라산 기슭의 산제당과 마을 중앙에 있는 미륵 및 목장승 2기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여미리 동제당은 산제당과 장승으로 이루어진 상당과 하당의 이당 구조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14일 저녁에 산신제를 마치고 내려와서 장승제를 지내 왔으나 1970년대 중엽에 중단되었다. 그 뒤로 마을에서는 젊은이들이 자꾸 죽는 등 궂은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주민들은 그 원인이 산제를 지내지 않은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1930년대 소실되었던 장승을 1992년 마을 삼거리에 다시 세운 뒤 장승제를 지냈다.

또한 1970년대 장마철에 우연히 발견하여 마을로 옮겨 세운 미륵을 대상으로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미륵제도 함께 지내고 있다. 미륵제는 예전의 산신제를 대신하는 동제이다. 미륵제와 장승제를 위해 마을에서는 도가를 선정하여 제수를 준비하고, 산신제를 지낼 제관·축관·초헌관·아헌관·종헌관·집사 등을 부정이 없는 정갈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연원 및 변천]

여미리 동제는 본래 산신제와 장승제, 목신제로 구성되었다. 그리하여 40여 년 전까지도 음력 정월 14일 저녁에 운산리를 중심으로 하는 네 방향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네 곳의 제사 장소는 동쪽으로는 고덕으로 넘어가는 수당리 전라산과 구룡고개이고, 서쪽으로는 서산으로 가는 간대산 줄기와 무르고개였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덕산·해미로 통하는 용장리 시체산과 가루고개, 북쪽으로는 고풍으로 이어지는 여미리 간대산과 도치고개였다. 당시 각 마을에서는 산제 터에 올라 횃불로 신호를 보내어 동시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산신제를 마치면 ‘장승맥이’라 하여 장승제를 지낸 다음 용장리 장터에 있는 느티나무에 모여 제를 지냈다. 이를 ‘중앙맥이’라고 불렀다.

한편 1970년대 후반 전라산 부근의 용장천에서 미륵이 발견되자 서산군청에 신고한 뒤 마을로 운반하여 세우게 되었다. 이후 1992년경에 정부의 전통문화 보존 정책에 따라 동제를 지내는 마을에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하였고, 주민들은 삼거리 느티나무 부근에 장승을 만들어 세우고 미륵제와 장승제를 다시 지내기 시작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여미리 산제당은 간대산 중턱에 위치한다. 당집이나 특별히 모신 신체는 없고 바위 밑에 돌 제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메를 지을 때 사용하는 산제 샘이 있다. 1992년 제작한 장승은 삼거리 느티나무 밑에 자리하는데, 현재 1기는 분실한 상태이다. 미륵은 전형적인 석불 입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절차]

미륵제와 장승제에는 주민[상가에 다녀왔거나 생리 중인 여성 제외]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제물은 미륵제와 장승제를 각각 준비하는데 종류는 삼색실과, 청수, 포, 술[미륵만 사용] 등이다. 제의 절차는 미륵 앞에 제물을 진설한 다음 이장이 발원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997년은 인근의 성운암 주지를 초빙하여 제를 집전하도록 하였는데, 이장의 발원 및 스님이 축원을 드리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각자 비손을 드렸다고 한다. 장승제도 미륵제와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예전에 산신제는 유교식 절차에 따라 기제사와 같은 방식으로 지냈고, 메는 산제당에서 제관이 산제 샘에서 길어온 물로 직접 지어서 올렸다고 한다. 당시 산신제의 제물은 쇠고기, 편, 메, 삼색실과 등이었으며, 호당 쌀 1~2되를 갹출하여 비용을 충당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