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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269
한자 不祧廟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해준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개설]

부조묘는 조선 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예부터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로 4대에 해당하는 선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문제는 제사를 모시던 자가 죽은 경우인데, 죽은 후 그 후손은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 죽은 이를 포함하여 선조 3대를 모시게 된다. 이때 기존에 모시던 가장 위의 선대의 제사는 지내지 않게 되고, 이 경우 그 선조의 신위를 사당에서 꺼내 땅에 묻는 것이 예의이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 왕의 허락 아래 신위와 제사를 모시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을 부조묘라 한다. 주로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이나, 위험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왕들은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인물이라 여겨지면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하였다. 이렇게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 대상들은 4대 봉사가 끝난 후에도 신주를 땅에 묻지 않으며 계속적으로 후손들에게 기제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연원]

부조묘가 처음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한나라 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조묘가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고구려 중엽 이후 사당이 건립되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불천위가 된 신주는 묘 밑에 설치하도록 하였으나 후손들이 종가 근처에 신위를 위한 사당을 지으면서 부조묘 형태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부조묘는 이렇듯 국가의 공인을 받았으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에 의해 세워지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기능]

부조묘는 서원·사우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즉 서원과 사우가 교육적 측면과 함께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부조묘는 선조의 추숭 활동에 치중을 두고 있으며 왕의 직접적인 허락을 받고 건립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부조묘는 조선 중기와 후기로 넘어가면서 서원이나 사우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서원이나 사우를 건립하여 향촌 사회에서의 세력을 굳건히 하려는 사림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서원이 점점 문중 서원으로 변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황]

서산에도 부조묘가 존재하였다. 1927년 이민영이 편찬하고 중앙인쇄소에서 간행한 『서산군지』와 1937년 이병연(李秉延)이 편찬하고 보문사에서 간행한 『조선환여승람(朝鮮環輿勝覽)』 부조묘 조에는 모두 7개의 부조묘가 기록되어 있다.

1. 이방간(李芳幹): 태조(太祖)의 4남으로 회안대군(懷安大君)이다. 묘는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에 봉안했고, 15대손 이우규(李愚珪)가 그 아래 살며 관리하고 있다.

2. 이무생(李茂生): 정종(定宗)의 4남으로 시호는 양정공(良靖公)이다. 묘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으며, 14대손 이원기(李源璣) 집에서 봉안하고 있다

3. 기자헌(奇自獻):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호성공신(扈聖功臣)이다. 묘와 영정은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에 있으며, 10대손 기형수(奇逈洙) 집에서 봉안하고 있다.

4. 남이흥(南以興): 충장공(忠壯公)의 묘는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도리리에 있다. 12대손 남백우(南伯祐) 집에서 봉안하고 있다.

5. 정충신(鄭忠信):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 묘는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데, 인조조 병자년에 묘를 건립하도록 명했고 또 영정을 봉안하여 매년 5월 5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손(嗣孫) 11세손 정환용(鄭煥容)이 관리하고 있다.

6. 이노장(李怒長): 본관은 전의, 세조대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은 대사헌에 이르렀다. 묘는 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매방리에 있으며, 15대손 이풍로(李豊魯)가 관리하고 있다.

7. 이관(李慣): 성종(成宗)의 9남으로 묘는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송현리에 있다. 13대손 이정순(李禎淳)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서산군지』 이전의 지리지나 읍지류 등에서 부조묘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어 두 기록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 다만 이방간의 부조묘는 1864년 부조묘를 동산정으로 이건 증축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97년에 건립된 정충신의 부조묘는 1969년에 진충사로 개칭하였는데,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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