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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918
한자 李惟儉
영어음역 Yi Yugeom
이칭/별칭 중약(仲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38년연표보기 - 이유검 생
활동 시기/일시 1564년연표보기 - 무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이유검 졸
거주|이주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 수문장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중약(仲約).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학수(李鶴壽)이다. 동생은 충청병사를 지낸 이유직(李惟直)이다.

[활동 사항]

이유검(李惟儉)[1538~1592]은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순찰사 김수(金睟)는 초계군수 이유검을 김해 남문 수문장에 임명해 성문을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유검의 군대는 기세등등한 왜군과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성을 빼앗겼다. 이유검은 후일을 도모하기로 하고 성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김수는 성을 포기한 죄를 물어 이유검을 효시하였다. 이유검의 효시 소식이 전해지자 서산의 전주 이씨 씨족들은 크게 슬퍼하고 원통해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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