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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427
한자 士族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75년연표보기 - 태봉 난간 파괴 사건

[정의]

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개설]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체로 향촌 사회에서 중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과 사족으로서의 신분적 배경을 가지고 향촌 사회 운영권을 장악하여 16세기 중후반부터 그들 중심의 지배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유향소(留鄕所)가 조직되고, 향안(鄕案)·향규(鄕規)가 작성되었으며, 서원이 세워지고 향약·동약·동계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서산 지역의 사족 가문은 각자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정착하였고, 근처의 토지 등을 장악하여 경제적인 기반을 닦았다. 특히 중앙 관직에 진출한 가문들은 지역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상당히 컸다.

[조선 전기의 사족 활동]

서산의 사족 활동을 주도하던 기구로 유향소가 있었다. 유향소는 1488년(성종 19) 다시 설치된 이후 서산에서는 향사음례(鄕射飮禮)를 행하는 유향소라는 뜻에서 ‘향서당(鄕序堂)’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사족이 중심이 된 향풍(鄕風)이 약화되면서 향서당의 권위가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사족들이 향촌 사회에서 자신들의 이념과 영향력을 과시하게 되는 것은 성리학적 지배 질서가 정착되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기에 이르러서였다. 서산 지역 역시 사족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더욱 다양한 사족 가문이 번창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 향권을 둘러싼 이족과 사족 간의 갈등은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데, 서산 지역에서도 역시 이 시기에 이르러 향권이 동요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향권을 둘러싼 갈등 관계가 극명하게 표출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1575년(선조 8)에 서산향교 이건과 관련하여 이건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일부 세력들이 일으킨 태봉 난간 파괴 사건(胎封欄干破壞事件)이었다. 이 사건은 수령과 결탁한 사족 세력 대 그 반대 세력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서산에는 명종(明宗)의 태봉이 있었는데, 서산향교의 이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태실(胎室)의 돌난간을 깨뜨려, 이건에 찬성하던 군수(郡守)가 파직되도록 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러나 결국 한영희(韓暎憙)·김호윤(金好尹)·김호열(金好說)·박영언(朴英彦)·이유인(李有仁)·유창수(柳昌壽)·문성해(文成海)·이첨수(李添壽) 등 당시 서산의 대표적인 사족들의 주도로 서산향교는 이건되었다.

[조선 후기의 사족 활동]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 서산 지역의 향촌 교화를 담당한 세력은 토착적 성격의 사족 집단이었다. 이들은 국가 전란 후 혼란에 빠진 지역민들을 교화함으로써 난후 민심을 수습하고 성리학적 질서 체제를 수습하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의 사족 활동은 크게 유생들에 대한 교육과 향촌민에 대한 교화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유생들의 교육 담당

청주 한씨 한서정의 아들 한윤련(韓允璉)은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유생들을 교육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유민수(柳敏遂) 역시 서산의 자제 30여 명을 뽑아 다른 이들과 서로 번갈아 가르쳤다고 한다. 한경시(韓慶時) 역시 시골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데 애썼다고 전한다.

2. 향촌민 교화 활동

『호산록(湖山錄)』에 고을의 향임(鄕任) 자격으로 사족들의 존경을 받으며 풍속 교화에 힘쓴 인물들의 행적이 나타나 있다. 이들은 대체로 서산의 토착 성씨로 알려진 성씨이거나 혹은 벼슬자리에 올라 관직을 두루 거치고 노년을 고향으로 돌아와 보낸 사람들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유형손(柳亨孫), 강흡(姜洽), 황유성(黃有誠), 유흡(柳洽), 임정로(任廷老) 등의 향촌 교화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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