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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80
한자 目牛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정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 12월연표보기 - 우견현을 목우현으로 개정
공포 시기/일시 757년 12월
관할 지역 목우현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관할 지역 목우현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관할 지역 목우현 -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정의]

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개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2개의 영현이 설치된 가운데 해미면고북면 및 홍성군 갈산면 일대는 이산군(伊山郡)의 영현인 목우현(目牛縣)으로 편제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 통일 후 신라는 고구려 및 백제 고지(故地)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 통치 제도를 개편하였다. 신라 및 가야의 옛 땅에 3주를 두고, 고구려 및 백제의 옛 땅에도 각각 3주를 두어 총 9주를 설치하였다. 백제에 설치된 3주는 웅주(熊州)·전주(全州)·무주(武州)이다. 백제시대 마시산군(馬尸山郡)에 속한 우견현(牛見縣)은 큰 변화 없이 웅주이산군(伊山郡)에 속한 목우현으로 명칭만 바뀐 채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웅주 이산군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산군은 본래 백제 마시산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 영현이 둘이었다. 목우현은 본래 백제 우견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금무현(今武縣)은 본래 백제 금물현(今勿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덕풍현(德豊縣)이다.”

[내용]

목우현의 치소(治所)나 통치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목우현을 관할하는 이산군이 예산군 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산군 서남쪽의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해미면 일대에는 반양리 산성(磻陽里山城), 웅소성리 산성(雄梳城里山城) 등이 위치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시기나 성격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변천]

757년(경덕왕 16) 웅주 이산군 목우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광도 홍주의 영현인 고구현(高丘縣)정해현(貞海縣)으로 나뉘었다. 이후 고구현은 폐치되고 1407년(태종 7) 정해현여미현과 통합하여 서산군 해미현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서산군 지성면(枳城面)으로 고쳤다가 1917년 현재의 행정 구역 명칭인 해미면으로 정착되었다.

[의의와 평가]

목우현이 위치한 해미면·고북면 일대는 서산의 운산 지역과 더불어 내포 지역과 충청남도 내륙 지방을 이어주는 길목이다. 따라서 중국으로부터 도착한 선진 문물이 목우현을 거쳐 웅주의 행정 치소가 위치하였던 공주 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현이 설치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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