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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772
한자 誠才里
영어공식명칭 Seongjae-ri
이칭/별칭 희좌동,성재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신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북도 청주군 오창면 성재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6월 1일 - 충청북도 청주군 오창면 성재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성재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07년 1월 1일 -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성재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성재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4년 7월 1일 -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성재리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재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3㎢
가구수 121세대
인구[남/여] 184명[남 96명|여 88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1757~1765년경[영조 대]에는 북강외이면 소속으로 자포곡리와 방화동리로 이루어졌으며, 1789년(정조 13)경 성재동리(聖在洞里)가 새롭게 생겼다. 1845년경[헌종 대] 다시 자포곡리와 방화동으로 통합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다. 1910년 성재동(盛才洞)이 다시 형성되었고, 자포곡리가 자포동으로, 방화동리가 방화동으로 바뀌었으며, 두릉동이 새로 생겼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릉동 일부, 서강외이상면의 강정리 일부와 자포동, 방화동을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오창면 성재리(盛才里)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어 청주군에서 분리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성재리로 개편되었다. 2007년 1월 1일 오창면이 오창읍으로 승격되어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성재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재리가 되었다. 성재리박자포실마을로 이루어진 성재1리, 감나무골마을, 신자포실마을, 방화마을로 이루어진 성재2리, 강정마을로 이루어진 성재3리와 성재4리로 분구되어 있다.

[자연환경]

성재리는 솔림산, 거머산이 북쪽에 있으며, 남쪽으로 뻗은 구릉 사면과 계곡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병천천성재리의 남쪽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현황]

2023년 8월 현재 성재리의 면적은 5.3㎢이며, 인구는 121세대, 184명[남자 96명, 여자 88명]이다. 성재리오창읍의 최서단 돌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가좌리, 백현리, 서쪽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송정리, 남쪽으로 백현리, 흥덕구 옥산면 사정리, 북쪽으로 두릉리와 접하고 있다.

성재리의 자연 마을은 감나무골[시동, 희곡], 강정, 박자포실, 신자포실, 방화[방화골], 아랫말, 웃말로 이루어져 있다. 박자포실마을은 박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전하며, 신자포실마을은 박자포실 남서쪽에 있는데 신씨가 많이 산다고 한다. 박자포실에는 독립운동가 박준규(朴俊圭)[1863~1919]의 유적비가 있다. 감나무골은 박자포실 북서쪽에 있는데, 옛날부터 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강정은 방화골 서쪽에 있는데, 앞의 병천천 천변에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방화는 박자포실 남서쪽에 있으며, 마을 뒤에 연화산이 있다. 아랫말은 박자포실 아래쪽에 있으며, 웃말은 박자포실 위쪽에 있다. 한편, 성재리에는 ‘자포실전설’이 전하여 오는데,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의 침략 이후에 생긴 것으로 자연이 마을과 인명을 지켰다는 미담이다.

현재 성재리의 북부에는 오창 제3일반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성재리의 북쪽으로 지방도 제510호가 지나며, 남쪽으로 경부고속도로와 당진청주고속도로가 교차하여 지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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