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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 살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는 본래 개인을 구별하는 이름만 있었다. 삼국 시대부터 중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각종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면서 한자를 쓰는 중국식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왕실, 귀족, 관료 순으로 중앙의 최상급 지배 집단이 차츰 성씨를 가졌다. 신라 후기 지방의 유력층인 호족들이 중앙을 모방하여 성씨를 사용하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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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경주 김씨(慶州 金氏)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 태사공파와 판도판서공파, 계림공파 등의 여러 계파가 입향하였다. 경주 김씨의 계파들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내산리 등지에 세거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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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공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경주 이씨(慶州 李氏)의 시조는 이알평(李謁平)이며, 중시조는 신라 말의 이거명(李居明)이다. 이거명이 중시조가 된 이유는 시조로부터 이거명까지 계대가 자세하지 않으며, 이색(李穡)이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를 적으면서 신라 말에 소판(蘇判)에 이른 이거명 이후의 세계를 자세하게 적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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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응허와 최경연 부자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최씨는 시조인 최치원(崔致遠) 이전에 분파된 본관으로는 개성, 삭녕, 동주, 전주가 있고 이후 함양, 청주, 충주, 강릉, 화순, 해주, 진주 등이 분파하였다. 현재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전하는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하고, 최치원을 시조로 한다. 오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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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령을 시조로 하고 연정설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곡산 연씨(谷山 延氏)는 조선 전기에 개국공신인 연사종(延嗣宗)이 2차 왕자의 난으로 좌명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여러 인물이 공신이 되고 관직에 진출하면서 가세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조선 전기 이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피해를 입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15세손 연보(延保)가 사도시부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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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구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광주 김씨(光州 金氏)라고도 한다. 후백제의 무진주(武珍州)[광산의 옛 지명]를 본관으로 하였다.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다. 김흥광은 통일 신라 말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미리 예견하고, 경주를 떠나 무진주에 은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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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우환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시조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김해 김씨는 11세손 김무력(金武力)[금관가야 구해왕(仇亥王)의 셋째 아들]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였는데, 신라에서 각간(角干)을 지낸 뛰어난 무장이었다. 김무력의 아들은 김서현(金舒玄)이며, 김서현의 아들은 김유신(金庾信)이다. 김유신은 김춘추[태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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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 또는 정지원을 시조로 하고 정신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시조는 지백호의 원손(遠孫)으로 전하는 신라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이다. 다만 현재 전하는 족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을미보』에서는 시조로 정회문을 두고 2세는 정지원(鄭之遠), 3세는 정문도(鄭文道)로 이어지는 세계를 적고 있다. 그러나 후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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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의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큰아들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는 밀양 박씨는 크게 여러 본으로 나누어졌고, 다시 여러 파로 분파되었다. 『문의박씨대동보(文義朴氏大同譜)』에 의하면 문의 박씨의 입향조인 박의중(朴宜中)[1337~1403]은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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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실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변씨(卞氏)는 중국 천수(天水)[감숙성(甘肅省) 위원현(渭源縣)에 속한 지명]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 주(周)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숙진탁(叔振鐸)이 조후(曹侯)에 봉하여지고 식읍으로 변읍(卞邑)을 하사받아 지명을 따서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이다. 우리나라 변씨(卞氏)는 당(唐) 천보년간(天寶年間)[742~755]에 예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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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지역의 세거 성씨. 문의현의 성씨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이씨(李氏), 조씨(曺氏), 박(朴氏) 등 3성이 확인된다. 그리고 조선 후기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연산 이씨, 진주 유씨, 보성 오씨 등 3개의 외래 성씨만 수록하였고, 조선 전기 토성(土姓)과 내성(來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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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지역의 세거 성씨. 문의현의 성씨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씨(李氏), 조씨(曺氏), 박씨(朴氏) 등 3성이 확인된다. 그리고 조선 후기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연산 이씨, 진주 유씨, 보성 오씨 등 3개의 외래 성씨만 수록하였고, 조선 전기 토성과 내성은 기록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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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룡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조씨(曺氏)는 창녕을 관향으로 하며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한다. 문의 조씨(文義 曺氏)와 관련하여 조선 시대 지리지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이씨(李氏), 조씨(曺氏), 박씨(朴氏) 등 3성이 확인된다. 그리고 조선 후기 편찬된 『여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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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소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문화 류씨(文化 柳氏)의 시조 류차달(柳車達)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의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옛 이름]의 호족이었다. 류차달의 5대조 류색(柳穡)이 신라 헌덕왕 때 유주의 구월산으로 은거한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살다가 고려가 개국한 이후에는 개성에서 세거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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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반남 박씨(潘南 朴氏)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215명, 왕비 2명, 상신 7명, 대제학 2명, 호당 5명, 청백리 1명, 공신 6명, 장신 3명을 배출하였고, 문묘(文廟)에 배향된 인물도 1명이 있다. 반남 박씨가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박상충(朴尙衷)과 박은(朴訔)이 크게 활약한 덕분이다. 5세손 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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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필을 시조로 하고, 오숙동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오씨의 시조는 무혜공(武惠公) 오첨(吳瞻)이다. 오첨은 477년(신라 지증왕 원년) 중국에서 들어와 신라 김씨인 김종인의 딸을 부인으로 삼고 귀화하였다. 23세손 오수권(吳守權)에게는 오현보·오현좌·오현필의 3형제가 있었다. 1216년(고종 3) 거란군을 격퇴시킨 공으로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 오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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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창을 시조로 하고 박광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상주 박씨(尙州 朴氏) 중에서는 여러 명의 공신이 배출되었다. 박충경(朴忠卿)은 명종 때 정사공신에 책봉되었고, 박충간(朴忠侃)은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 때 정여립 모반 사건을 미리 알고 상소하여 공신이 된 후 상산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인조 때 박유명(朴惟明)은 정사공신이 되고 상원군(商原君)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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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인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순천 박씨(順川 朴氏)는 평양 박씨(平陽 朴氏)라고도 하는데, 순천의 옛 지명이 평양이기 때문이다. 순천 박씨의 시조는 후백제 견훤(甄萱)의 사위로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개창에 공을 세워 개국 공신에 책록된 박영규(朴英規)이다. 박영규는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좌승(左丞)에 올랐으며 승주군(昇州君)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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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필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충청북도 청주 일대에 세거하는 안동 권씨의 선대는 추밀공파의 파조로 추밀원부사를 지낸 권수평, 한림학사와 지제교를 지낸 충헌공(忠憲公) 권위(權韙), 찬성사를 지낸 문청공(文淸公) 권단(權㫜), 문정공(文正公) 권부(權溥)로 계보가 이어진다. 추밀공파 23세손 권필중(權必中)[1579~?]이 광해군의 폭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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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승과 김선평을 시조로 하고 김사렴과 김백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안동 김씨(安東 金氏)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구 안동 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자인 평장사(平章事)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경순왕의 8대손인 고려 후기 무신 충열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한다. 신 안동 김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태사를 역임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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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서를 시조로 하고 나운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안정 나씨(安定 羅氏)의 시조는 문하시중평장사(門河侍中平章事)를 역임한 나천서(羅天瑞)이다. 선계는 원래 나주를 본향으로 두었으나, 나천서가 안천군(安川君)에 봉하여지고, 안정현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안정(安定)으로 관향을 이관하였다. 나천서의 후손은 4대까지 출세하지 않다가, 나유선(羅裕善)에 이르러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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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여산 송씨(礪山 宋氏)의 시조는 고려 때 진사로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하여지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된 송유익(宋惟翊)이다. 후손들은 여산을 관향으로 삼았다. 송유익의 두 동생 중 송천익(宋天翊)은 은진 송씨(恩津 宋氏)의 시조가 되었고, 송문익(宋文翊)은 서산 송씨(瑞山 宋氏)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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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산(燕山)은 문의현의 옛 명칭이다. 기록에 따르면 문의현은 본래 백제 시대 일모산군(一牟山郡)이었는데, 신라 시대 연산군(燕山郡)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문의현의 성씨는 조선 전기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이씨(李氏), 조씨(曺氏), 박씨(朴氏) 등 3개의 성이 확인된다. 그리고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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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안 김씨(延安 金氏)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국자감의 사문박사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문헌에 의하면 김섬한의 선계는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直諫)을 하다가 형은 북빈경(北濱京)[현재의 강릉]에 유배되고, 동생은 시염성(豉鹽城)[연안의 옛 지명]으로 유배되었다. 시염성으로 유배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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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성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안 이씨(延安 李氏)의 시조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이무는 660년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동맹군으로 백제를 침공하였을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따라왔다가 공을 세워 연안백(延安伯)에 봉하여지고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전한다. 후손들이 이때부터 본관을 연안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저헌(樗軒)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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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세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은진 송씨(恩津 宋氏)의 시조는 송대원(宋大原)이다. 송대원은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은진군(恩津君)에 봉하여졌다. 원래 우리나라의 모든 송씨는 송주은(宋柱殷)을 도시조로 삼고 있는데, 송주은은 당나라의 호부상서였다가 삼국 시대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 송자영(宋自英)은 송유익(宋惟翊)·송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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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홍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의령 남씨(宜寧 南氏)의 시조는 당나라 사람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김충은 당나라 헌종 때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귀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 신라 유린[현재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땅에 머물게 되었다. 김충은 당시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安史)의 난’으로 국내 정세가 어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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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을 시조로하고 김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시조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9세손 김석(金錫)이다. 경순왕과 낙랑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이자 고려 태조 왕건의 외손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후손들은 본관을 의성(義城)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의성 김씨의 선대는 김일(金逸), 김홍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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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덕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인동 장씨(仁東 張氏)의 시조는 고려 전기 인동현(仁同縣)의 옥산(玉山) 땅에 처음 정착한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이다. 또 다른 인동 장씨는 고려 충렬왕 때 국학진사 권지도평의녹사 동진사에 등과하여 예문관 직제학에 오른 장계(張桂)를 시조로 하는 일파가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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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무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인천 채씨(仁川 蔡氏)의 시조는 채선무(蔡先茂)이다. 선계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채선무는 고려 때 동지추밀원사에 추증되고 인천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으로 삼았다. 10세손 채귀하(蔡貴河)는 호가 다의당(多義堂)으로 인천 채씨의 중시조이다. 채원길(蔡元吉)의 아들로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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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정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전의 이씨(全義 李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이도(李棹)이다. 이도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候)에 봉하여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도강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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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극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全州 李氏)의 시조는 신라 문성왕 시기에 사공(司空)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이한의 6세손 이긍휴(李兢休)가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하여 사공을 지냈다. 이후 대대로 고려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18세손 이안사(李安社) 때 간도(間島)로 들어가서 원나라의 다루가치가 되었다. 이안사는 원래 전주 사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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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언위를 시조로 하고 최순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전주 최씨(全州 崔氏)는 최언위(崔彦撝)[868~944]를 시조로 한다. 최언위는 경순왕과 함께 고려에 귀의하여 삼한벽상공신에 제수되고 현재의 전주로 옮겨 살면서 완산백(完山伯)에 봉하여진 인물이다. 시호는 문영(文英)으로 글씨와 글에도 뛰어나 보령 성주사(聖住寺)의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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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말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제주 고씨(濟州 高氏)는 고을나(高己部)를 시조로 하고 고말로(高末老)를 중시조로 한다. 4세손 고공익이 상당군에 봉하여지고 충청북도 청주를 본관으로 삼으면서 상당군파가 청주 일대에 세거하였다. 15세손 고득종을 파조로 하는 영곡공파는 고말로의 22세손 고말개(高末開)가 선조 때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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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을 시조로 하고 하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진양 하씨(晉陽 河氏)는 진주 하씨(晋州 河氏)라고도 하는데, 진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고려 충렬왕 때 하즙(河楫)이 선대 조상들이 진양대도호부에 거주하였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시조는 고려 현종 때 문하시랑동평장사(門河侍郞同平章事)를 지낸 하공진(河拱辰)이다. 이후 분적이 이루어져 진양·안음(安陰)·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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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희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진주 강씨 박사공파(博士公派)의 시조는 강계용(姜啓庸)이다. 강계용는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박사를 지냈고, 1274년(원종 15) 통신사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3세손 강사첨(姜師瞻) 이후 경상남도 합천과 경상북도 고령 일대에 거주하였고, 6세손 강시(姜蓍) 때부터 8세손 강순덕(姜順德)까지 경기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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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을 시조로 하고 류종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진주 류씨(晋州 柳氏)의 시조인 류정(柳挺)은 고려 후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중서령(中書令) 좌우위(左右衛) 상장군(上將軍)에 이르렀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에 봉해졌다. 진강(晉康)은 진주(晉州)의 옛 이름으로 류정이 진강부원군에 봉하여진 것을 계기로 후손들이 진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류정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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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정극경(鄭克卿)으로 고려 의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으며, 6세(世) 정책(鄭幘)은 충숙왕 때 대호군을 거쳐 응양군상호군을 지내고 이어 판선공감사로 청하군(淸河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서원백(西原伯: 청주의 옛 지명)에 올랐으므로 후손은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벼슬에 맥을 이어온 명문가이다. 본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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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청주인 경진(慶珍)으로 고려 명종 때에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그 아들인 경대승(慶大升)은 청렴한 인물로 장군이 되어 정중부의 횡포정치를 제압하고 쇄신정치를 하였다. 청주경씨의 1세(世)는 경번(慶蕃)으로 고려 고종조에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평장사에 이르고 청주에 세거하였으며 2세는 경수(慶綏)로 통례문사를 지내고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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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고씨(高氏)의 시조로는 탐라국을 개국한 고을나(高乙那)를 연원으로 한다. 제주도의 「삼성혈(三姓穴) 신화」는 일찍이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고을나·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이 솟아 낫는데 고을나가 탐라국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938년(고려 태조 21) 탐라국의 마지막 왕 자견(自堅)이 태자 고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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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신라 헌강왕 때에 시중을 지낸 곽상이다. 4세(世) 곽원(郭元)[?~1029]은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를 거쳐 참지정사를 지냈으며, 6세 곽상(郭尙)은 추밀원 좌승선을 거쳐 호부상서·참지정사에 오르고 두 아들로 문충공 탄(坦)과 진정공 여(輿)를 두었다. 누전하여 11세인 곽예(郭預)[1232~1286]는 문한학사와 지밀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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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청주를 본관으로 삼은 김정(金錠), 김하통(金夏通), 김사지(金四知)의 세 계통. 청주김씨(淸州金氏)는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이를 계통별로 분류하면 첫째 계통은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김정을 시조로 하고, 10세손인 김보(金甫)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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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동방씨는 중국 제남(지금의 산동성)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고대 복희씨(伏羲氏)가 동방의 진(震)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동방을 성으로 삼게 되었다고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동방씨의 기록이 실전되어 정확한 시조와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다. 다만 조선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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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손씨총원록(孫氏總源錄)』에 의하면 시조는 구례마(俱禮馬)로 여섯 촌장 중 한 분으로 신라 시조 혁거세를 추대하였고, 유리왕 9년에 손씨(孫氏) 성(姓)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누전하여 흥덕왕 때 효자인 문효공 손순(孫順)을 손씨의 비조(鼻祖)로 하였다. 『청주손씨세보』에 따르면 중시조인 손필영(孫弼榮)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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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송유충(宋有忠)으로 충숙왕 때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으며 아들 송훤(宋暄)은 조선조 개국공신으로 서원군(西原君)을 습봉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그 후 누대가 실전되어 송승은(宋承殷)을 1세조(世祖)로 하고 있다. 청주에 본관을 두고 있으나 청주 근교에 세거한 흔적을 찾지 못했으나 송승은이 조선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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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 양기(楊起)는 중국 출신으로 원(元)나라에서 중서성 정승을 지냈으며, 고려(高麗)원종(元宗) 때에 제국공주(齊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정착하였다. 그 후 양기는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케 한 공으로 삼한창국공신 상당백(上黨伯)에 봉해지고 청주를 관적(貫籍)으로 내림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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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이능희(李能希)로서 고려 개국공신이며 벽상삼한삼중대광태사이다. 6세손 이공승(李公升)은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7세손은 정숙공(貞肅公) 이춘로(李椿老), 8세손은 대장군 이장(李粧)이다. 9세손은 판밀직사 이창우(李昌祐)이다. 이창우는 두 아들 낭성군(琅城君) 이계감(李季瑊)과 보은백 이계성(李季成)을 두니 10세손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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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청주를 단일 본으로 하는 성씨이다. 『고려사(高麗史)』에 936년(태조 19)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신검(神劍)과 이천에서 마지막 결전을 벌일 때 우익(右翼)으로 참전했던 준량(俊良)장군, 광종 때 대상(大相)을 지낸 준홍(俊弘), 1100년(숙종 9) 동여진 정벌에 참전한 교위(校尉) 준민(俊旻), 1179년(명종 9)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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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일원에 세거지를 두고 조선 후기 이후 토호로서 대족을 이룬 여덟 성씨. 한산이씨의 시조는 고려 숙종 때 권지호장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 6세로 중시조인 이곡(李穀)은 충숙왕 때 충숙왕 7년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도첨의찬성사에 이르렀으며, 아들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은 공민왕 2년 문과에 급제하고 추밀원우부승선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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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 본관을 둔 성씨.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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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김윤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청풍 김씨(淸風 金氏)의 시조는 고려 후기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하여진 김대유(金大猷)이다.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마의태자의 둘째 아들인 대장군 김순웅(金順雄)의 12세손이다. 청성이 청풍(淸風)으로 이름이 바뀌어 후손들은 본관을 청풍으로 하였다. 충청북도 청주 일대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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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실을 시조로 하고 변충남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초계 변씨(草溪 卞氏)의 시조는 변정실(卞庭實)이다. 변정실은 고려 성종 때 급제하여 문하시중을 지냈고, 팔계군(八溪君)에 봉하여졌다. 팔계는 초계의 옛날 지명으로 후손들이 초계를 관향으로 삼았다. 이후 9세손 변남룡(卞南龍)은 공민왕 때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랑에 올랐다. 조선 건국 후에는 한성판윤에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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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을 시조로 하고 지계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충주 지씨(忠州 池氏)의 시조 지경(池鏡)은 중국의 홍농(弘農) 사람으로 자는 자운(自雲)이며 호는 암곡(巖谷)이다. 중국의 송(宋) 태조(太祖) 시기에 태학사(太學士)로 나라의 문물 제도를 구비하는 데 노력하였다. 지경은 951년(광종 2) 봉사관(奉使官)으로 임명을 받아 고려에 사신으로 왔는데 지경의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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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사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고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 시대 유명한 문벌 귀족 중의 하나이다. 윤신달의 현손 윤관(尹瓘)은 숙종 때 밀직원사(密直院使)로 병마도통사(兵馬都統使)가 되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올랐다. 또한 영평현 개국백(開國白)에 봉하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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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자숭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평산 신씨(平山 申氏)는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한다. 신숭겸은 궁예가 세운 태봉(泰封)의 기장(騎將)이었으나 궁예의 폭정이 계속되자 배현경(裵玄慶)·홍유(洪儒)·복지겸(卜智謙)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공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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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을 시조로 하고 조순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평양 조씨(平壤 趙氏)는 조춘(趙椿)을 시조로 하며, 조선 개국 공신인 8세손 조준(趙浚)이 유명하다. 평양 조씨가 역사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의 훈신 5세손 조인규(趙仁規)에 이르러서이다. 조인규는 평양부 상원에 거주하던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뛰어난 몽골어를 바탕으로 자의도첨의사사평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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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을 시조로 하고 조백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풍양 조씨(豊壤 趙氏)는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조맹(趙孟)을 시조로 한다. 『풍양조씨세보』에 따르면 조맹의 원래 이름은 조암(趙巖)이며 한양부 풍양현 사람으로 천마산 아래 은거하였다. 그러던 중 왕건을 만나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통합삼한벽상개국공신에 올라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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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정을 시조로 하고 정광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하동 정씨(河東 鄭氏)는 정씨 문중에서 동래(東萊), 경주(慶州), 연일(延日), 진주(晉州)에 이어 대문중에 속한다. 『조선씨족통보』에서는 하동 정씨를 여섯 계통으로 분류하였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세 파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는 분파이고, 둘째는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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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승윤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 趙氏)의 시조는 고려 후기에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이고, 아들 조휘(趙暉)는 쌍성총관부의 총관이었다. 4세손 조돈(趙暾)과 아들 조인벽(趙仁壁)은 공민왕이 영토를 수복할 때 공을 세웠다. 조돈은 이후 예의판서와 검교밀직부사를 지냈으며 조인벽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李子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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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숭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함양 박씨(咸陽 朴氏)의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박언신(朴彦信)이다. 박언신이 속함대군(速咸大君)에 봉하여지자 후손들이 시조로 삼았다. 고려 때 예부상서를 지내고 함양군(咸陽君)에 봉하여진 박선(朴善)이 중시조이며 함양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함양 박씨는 고려 때 매우 번성하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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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을 시조로 하고 곽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현풍 곽씨(玄風 郭氏)는 곽경(郭鏡)을 시조로 하고, 중랑장공파의 파조인 곽성(郭惺)이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현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으로 들어온 후 19세손 곽치중(郭致中)이 남일면 화당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로 이주하여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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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석화리에 있는 진양 하씨 사직공파 영상공 문중의 집성촌. 하진(河珍)을 파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派)의 12세 영상공(領相公) 하부(河溥)가 1433년(세종 15) 무렵 석화리에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3세 하정서(河呈瑞), 14세 하련(河漣)·하영(河泠) 형제 등 하부의 자손들이 석화리 주변에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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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에 있는 고령 신씨 영성군파의 집성촌. 고령 신씨(高靈 申氏) 영성군파(靈城君派)는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아들 영성군 신형(申泂)[1449~1487]을 파조로 모신다. 신형의 아들인 10세 신광윤(申光潤)[1468~1554]이 갑자사화에 연좌되었다가 1506년 반정으로 풀려나자 북이면 용계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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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구성리 신화동에 있는 평양 조씨 판서공파의 집성촌. 신화동(莘化洞)은 원구성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평양 조씨(平壤 趙氏) 판서공파 자손들이 세거한 곳이다. 판서공파는 10세 조율(趙溧)을 파조로 모시고 있다. 조율의 증손 13세 조순도(趙順道)가 사패지(賜牌地)로 받은 구성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구성리]에 묘소를 마련하면서 후손들이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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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는 전주 최씨 문열공파 득평계의 집성촌. 최순작(崔純爵)을 파조로 하는 전주 최씨(全州 崔氏) 문열공파의 6세 최득평(崔得枰)[1260~1334]이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며 새텃말 다락말, 증촌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1750년(영조 26)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최득평의 묘지명에 의하면 최득평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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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장재리에 있는 달성 서씨의 집성촌. 달성 서씨(達城 徐氏) 7세 서도(徐渡)를 파조로 하는 학유공파(學諭公派)의 11세 서한종(徐韓宗)이 장재리 배나무골에 입향하였다고 전하며, 후손들이 장재리의 배나무골, 새말, 장재동 등에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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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공북리에 있는 의령 남씨 직제학공파 감찰공계의 집성촌. 공북리는 원래 유씨(柳氏)가 먼저 터전을 마련하고 살았는데, 의령 남씨(宜寧 南氏) 15세 남숙(南璹)[1633~1713]이 1680년 무렵 부인 서산 유씨가 살던 곳으로 이주하면서 남숙의 후손들이 세거하였다고 한다. 입향조 남숙은 7세 남간(南簡)을 파조로 하는 직제학공파, 다시 남숙의 큰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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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에 있던 밀양 박씨 규정공파 훈계의 집성촌. 과거에 연제리, 상정리, 호계리를 모가울 또는 목과동(木瓜洞)이라 불렀고, 집성촌을 이루었던 밀양 박씨(密陽 朴氏)를 가리켜 ‘모가울 박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533년(중종 28) 문도공(文度公) 박훈(朴薰)[1484~1540]이 기묘사화로 인한 유배에서 풀려나 외가 죽산 박씨(竹山 朴氏)가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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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금계리에 형성된 청주 곽씨 성촌파의 집성촌.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청주 곽씨(淸州 郭氏) 17세 곽음(郭廕)[1398~1474]이 금계리로 먼저 퇴거하였고, 이후 동생 곽비(郭庇)와 곽용(郭庸) 등이 내려와 살면서 후손들이 일대에 세거하게 되었다. 곽음의 둘째 아들 곽승의(郭承儀)는 진사공파(進士公派), 넷째 아들 곽승구(郭承求)는 백동파(栢洞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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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신촌리에 있는 밀양 박씨 규정공파 박훈 계열의 집성촌. 박훈(朴薰)[1484~1540]이 외가 죽산 박씨가 있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차츰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상정리와 호계리 등을 거쳐 병천천 너머의 옥산면 신촌리까지 이르렀다. 신촌리에는 밀양 박씨가 가장 오래 세거하였고, 지금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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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장동리에 있는 파평 윤씨 소정공파의 집성촌. 파평 윤씨 15세 윤곤(尹坤)[?~1422]을 파조로 하는 소정공파(昭靖公派)의 18세 윤필상(尹弼商)[1427~1504]이 갑자사화로 화를 당하자 현손인 22세 윤계임(尹季任)이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발산리에 은거하였다. 손자 24세 윤국·윤도 형제가 산 너머 장동리 담골에 이주하면서 파평 윤씨 집성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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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시목리에 있는 보성 오씨 부위공파의 집성촌. 보성 오씨(寶城 吳氏) 부위공파(副尉公派)는 보성군(寶城君) 오현필(吳賢弼)[1175~?]의 9세 진의부위(進義副尉) 오숙동(吳叔仝)을 파조로 모신다. 오숙동이 현도면 양지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양지리]에 정착한 이래 자손들은 각 지역으로 파급되어 여러 분파를 형성하였다. 큰아들 오인정(吳仁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