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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 보살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30002
한자 瑞山開心寺帝釋-梵天圖-八金剛-四位菩薩圖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신창리 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명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72년연표보기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 보살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4월 25일연표보기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 보살도」 보물 제1766호로 지정
현 소장처 개심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신창리 1]
원소재지 개심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신창리 1]
성격 불화
작가 유성(有誠)
재료 지본 채색
크기 150.2×79.2㎝[제석천도]|151×79.5㎝[범천도]|149.5~150.2×78.9~80.5㎝[팔금강도]|149.5~151×79.2~80㎝[사보살도]
소유자 개심사
관리자 개심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766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화.

[개설]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 보살도」는 의식용 불화로, 불교 의식을 진행할 때 야외 의식 도량에 헌괘(獻掛)하여 도량 주위를 결계하고 수호하는 기능을 맡는다. 제석천도와 범천도가 각 1점, 팔금강도 8점, 사보살도 4점으로 총 14점이 현존한다.

의식을 행할 때 조성한 일련의 불화는 의식이 끝난 후 소각되고 필요에 의해 다시 조성되기에 한 시기에 조성된 세트가 온전하게 전하는 예가 매우 드물다. 개심사의 일괄 불화는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1772년 제작, 보물 제1264호]과 함께 제작되었는데, 괘불을 비롯하여 도량 장엄용 불화 일괄이 유실된 폭 없이 모두 전하는 매우 희귀한 예이다. 한편 개심사에는 1676년에 조성된 「서산 개심사 오방 오제위도 및 사직 사자도」 역시 현존하는데, 보물 제1765호로 지정되었다.

불화의 조성 일시와 현황, 작업에 참여한 승려 명단은 팔금강도 중 여섯 번째 금강인 ‘정제재 금강도(定除災金剛圖)’의 화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며 건륭(乾隆) 37년 개심사 괘불도를 조성하면서 옹호 신중(擁護神衆) 대범천과 제석천, 팔대 금강과 사보살도를 함께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 보살도」는 2012년 4월 25일 보물 제1766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크기는 제석천도 150.2×79.2㎝, 범천도 151×79.5㎝, 팔금강도 149.5~150.2×78.9~80.5㎝, 사보살도 149.5~151×79.2~80㎝이다. 14점 모두 지본(紙本)으로 대체로 두 장의 종이를 연결하여 화폭을 마련하였다. 별도의 장황은 없으며 먹 선으로 계선(界線)을 그어 화면을 구획하였다. 해당 존상의 명칭은 상축 하단 화면과의 경계 부분에 기록하였는데, 경우에 따라 존명과 제 몇 번째 상인지를 함께 기록하기도 하였다.

제석천도와 범천도는 제석천왕(帝釋天王)·대범천왕(大梵天王)으로 기록되었으며, 사보살은 금강권 보살(金剛眷菩薩)·금강색 보살(金剛索菩薩)·금강애 보살(金剛愛菩薩)·금강 어보살(金剛語菩薩)이다. 사보살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널리 유포하라는 부처의 수기를 받은 보살로, 사보살과 팔금강을 도량에 청하는 것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에서부터 등장한다.

『금강경(金剛經)』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경전으로, 1339년에 간행된 봉림사 목아미타불 좌상 복장 전적에서 나온 『금강경』에도 팔금강이 도해되어 있다. 팔금강을 청하는 소청(啓請)에는 “만약 금강경을 수지(受持)하는 자가 있으면 먼저 지심(至心)으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염송한 연후에 팔금강과 사보살의 명호를 계청하면 머무르는 곳 어디에서든 항상 옹호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팔금강도 역시 유실된 폭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데, 각각 제1 청제재 금강(第一靑除災金剛)·제2 벽독 금강(第二辟毒金剛)·제3 황수구 금강(第三黃隨求金剛)·제4 백정수 금강(第四白淨水金剛)·제5 적성 금강(第五赤聲金剛)·제6 정제재 금강·제7 자현신 금강(第七貲賢神金剛)·제8 대신력 금강(第八大神力金剛)이라는 묵서 방제가 있다.

팔금강은 어떤 무기로도 당할 수 없는 금강저를 손에 들고 항상 부처 곁에서 호위하고 역할로, 개심사 팔금강도에서는 칼이나 창, 금강저, 바위 등 무기를 들고 위호하는 자세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의 표현은 용맹한 모습으로 위호하는 금강의 역할을 드러내며 화면에 동세를 더해 준다. 도량에 걸리는 위치와 해당 금강의 명칭도 함께 기록하였다. 화면에 기록된 사보살과 팔금강의 명호는 단순히 각 도상을 구별하는 이외에, 의식의 진행에서 승려와 동참자가 함께 명호를 호명하는 절차와도 관련 있다.

[특징]

의식용으로 조성된 독립된 형식의 제석천도와 범천왕도는 현존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배경이 없는 화면에 두 손을 가슴 앞에 합장하고 시립한 자세로, 제석천은 향 좌측, 제3의 눈을 표현한 범천은 향 우측을 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방향성을 암시하는 움직임과 달리 얼굴은 정면을 응시하도록 하였다. 주홍, 하늘색, 녹색을 주조 색으로 사용하였으며 주홍, 녹색이 동일한 명도로 평면적으로 채색된 것에 비하여 옷 주름의 음영은 명도를 달리 한 청색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팔금강도는 대승사 팔금강도, 통도사 팔금강도[1736년 제작] 등 기존에 소개된 불화의 봉청 순서 및 도상에서 세부적인 차이가 있어 팔금강도의 도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위협적인 자세의 팔금강은 다양한 신체 색을 지니고 있으며 안면과 육신부에 먹 선을 이용하여 동세와 음영을 나타내는 데 주력하였다. 제6 정제재 금강처럼 가는 세필로 수염과 머리카락 등 모근을 나타낸 정치한 양식과 진채로 평면적으로 채색하는 양식이 혼용되었다.

화승에 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나,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을 조성한 유성(有誠) 일파가 작업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유성을 수화승으로 유위(宥偉), 성청(性聽), 보은(報恩), 상흠(尙欽), 부일(富一), 수위(守仁), 신일(信日), 법전(法筌), 금인(錦仁), 의현(義玄), 쾌종(快宗) 등 12명이 조성하였다. 유성은 18세기 후반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으로 「봉정사 감로도」[1765년 제작]와 「환성당 대선사 지안 진영(喚醒堂大禪師志安眞影)」[1766년 제작], 「개심사 영산회 괘불도」[1772년 제작],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1775년 제작, 보물 제1041호] 등의 수화승이었다.

[의의와 평가]

옹호 신중은 본격적인 재(齋)의 시작에 앞서 도량에 청하는 존재이다. 특히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이 신중도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단독으로 조성된 사례로도 중요하다. 이 불화들은 어느 공간이나 이동하여 걸 수 있는 용이한 방식인 탱화(幡畵) 형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의식 도량에 마련되는 제석단(帝釋壇), 범왕단(梵王壇) 등 단의 존재와 기능적으로 관련이 있다.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 보살도」는 표정, 안면 묘사, 동세와 옷 주름, 음영 표현에서 나타나는 안정되고도 유려한 필치에서 화승의 기량이 우수함을 알 수 있다. 연대가 확실한 도량 장엄용 의식용 불화로 일괄 유물이 모두 현존한다는 점에서, 또 지본 불화의 소중한 작례로도 의식용 불화의 중요한 기준 작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