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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544
한자 看月島-祭
이칭/별칭 굴왕제,군왕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간월도 풍어 기념탑 건립
의례 장소 간월도 굴부르기제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풍어 기념탑 앞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5일 오전
신당/신체 굴이 많이 나는 굴 밭|굴 탑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서 굴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

[개설]

간월도 굴부르기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채취하는 굴의 풍요를 위하여 마을 여성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굴왕제, 군왕제 등이라고도 한다. 간월도는 대대로 갯가에 의지하여 살아온 섬마을이었다. 1980년대 초반 간척 사업으로 인해 연륙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마을 앞 갯벌에서 나는 해산물이 주민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다. 그중에서도 굴은 간월도 주민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간월도의 어리굴젓은 전국에서 이름난 특산물로 알려져 있으며, 무학대사(無學大師),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같이 어리굴젓이 등장하는 전설인 「학이 날개로 보호한 어린아이」가 구전될 만큼 유서가 깊다.

따라서 예부터 해산물의 채취를 담당하는 여성들은 굴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월 대보름에 굴왕제를 지냈다. 굴부르기제의 비용은 어촌계의 기금과 서산시 보조금으로 충당한다. 한편 굴부르기제와는 별도로 정월 초삼일[음력 1월 3일]에 간월도 당제를 지냈으나 중단되었다. 굴부르기제가 여성들이 주관하는 제의이자 축제라면, 당제는 남성들의 의례이자 축제였다.

[연원 및 변천]

간월도 굴부르기의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최소한 100년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생존해 있다면 135세 남짓 되는 할머니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노파는 무당은 아니었지만 비손을 잘했고, 마을에서 동티가 난 사람이 있으면 동티잡이를 잘해서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월도가 예로부터 어선을 이용한 고기잡이보다는 굴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여 살아왔던 마을임을 감안하면, 그 이전부터 굴부르기제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굴부르기제와 유사한 의식은 비단 간월도 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서해 도서 지역의 섬마을과 포구촌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던 정월 대보름의 풍어 의례이다. 간월도와 함께 천수만에 자리한 황도·원산도·안면도·장고도 등에서 전승되는 ‘굴부르기’나 ‘조개부르기’가 그러하며, ‘등바루놀이’와도 긴밀한 친영성이 있다.

간월도 굴부르기제는 민속놀이로 재구성되면서 일정 부분 변화된 면이 없지 않다. 경연을 의식하다 보니 마을에서 전승되는 자연스런 제의와 놀이보다는 연출가에 의해 작위적인 춤이나 비손 내용 등에 윤색된 요소가 덧붙여진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굴부르기제는 특별한 제당이나 신체를 대상으로 치제되는 제가 아니다. 단지 굴이 많이 나는 갯가를 돌며 제를 지낸다. 예전에 간척 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세 곳에서 제를 지냈다. 그 장소는 부석면에서 간월도로 들어오는 초입의 장독[장뚤]과 현재 굴 탑이 서 있는 지배촌, 그리고 굴 탑 왼편의 선창가였다. 이 세 곳은 모두 굴이 자생하는 굴 밭이었다. 그러나 1993년 굴부르기제 기념탑이 건립된 뒤에는 굴 탑 앞에서 지낸다.

[절차]

굴부르기제의 제물은 돼지머리, 시루떡, 포 등이다. 제물이 진설되면 입담이 좋은 노인이 즉흥적인 고사 덕담으로 굴이 많이 들어오기를 비손한다. 그 내용은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근래에는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 나가면서 비손했던 내용을 읊조린다.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거주 주민 일동은 은시루 떡반으로 용왕님께 삼가 기도 올리옵나이다.”

천수만 일대 있는 굴은 간월도 굴 밭으로 다 오라.”

“도투마리[안면도의 끝] 밖에 있는 굴, 죽도 밑으로 있는 굴, 천수만에 있는 굴은 간월도로 전부 오라.”

이렇게 한 사람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팔을 들어 손짓을 하며 복창을 한다. 한 곳에서 제를 마치면 풍장을 치면서 다른 굴 밭으로 이동을 해서 위와 동일한 절차에 따라 굴부르기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방식의 제의는 간척 사업 이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제의 절차가 유교식으로 변모하여 분향-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부대 행사]

굴부르기제를 모두 마치면 마을로 돌아와서 술과 떡을 나누어 먹고 풍물놀이를 하며 대보름 저녁을 즐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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