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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518
한자 閔炯益家屋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남부순환로 163-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왕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75년연표보기 - 민형익 가옥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사랑채 개량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0년연표보기 - 안채 대청에 문 설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사랑채 지붕 개량
현 소재지 민형익 가옥 - 충청남도 서산시 남부순환로 163-7[장동 131]지도보기
성격 전통 가옥
양식 홑처마 민도리계 팔작지붕
정면 칸수 7칸[안채]|7칸[사랑채]
측면 칸수 4칸[안채 좌측 익랑]|5칸[안채 우측 익랑]|2칸[사랑채]
소유자 민형익
관리자 민형익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장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민형익 가옥(閔炯益家屋)이 위치한 서산시 장동은 현재 석남동 관할하에 있다. 1914년 ‘장리’라는 지명으로 불리다가 1989년 장동으로 개칭되었으며, 오산동 관할하에 있다가 1998년 오산동이 없어지고 석남동으로 통합되면서 석남동 관할 내에 있게 되었다.

[위치]

남부순환로를 타고 가다 보면 장동사거리 5m 전방 좌측에 소로가 있다. 이 소로로 약 20m쯤 들어가면 묘지와 가옥이 배치되어 있고, 전면에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변천]

1775년(영조 51)에 신축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게 넘어가 있던 것을 현 가옥주 민형익(閔炯益)의 조부 민태완[당시 면장을 지냄]이 해방 후 환수하였다. 1958년 사랑채를 개조하였고, 1970년대에 안채 대청에 문을 달았으며 조적(組積)을 한 것은 1995년이다. 2006년에는 사랑채 지붕을 개량하였다.

[형태]

남서향을 하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 앞에 마당이 배치되어 있고 가옥 왼편에 묘지가 있다. 안채는 안마당을 끼고 ‘ㄷ’자형을 하고 있으며 정면 7칸에 좌측 익랑(翼廊) 4칸, 우측 익랑 5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주 5량 구조로 팔작지붕이다. 안마당에는 보도블록을 깔았으며 수도가 설치되어 있고, 아담하게 조경이 꾸며져 있다. 자연석 외벌대 기단을 설치하고 시멘트를 발랐으며, 자연석 초석에 사각기둥을 세웠다.

안채 정면으로 대청이 들어서 있으며 대청 양쪽에 방이 배치되어 있다. 대청은 본래 우물마루가 깔려 있었으나 현재는 장판을 깔았으며, 대청 전면에 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달았다. 대청 우측에 방이 배치되어 있는데, 본래는 누마루와 난간이 달려 있었으나 현대식 미닫이문을 달고 조적 마감을 하였다.

좌측 익랑에 부엌과 방이 배치되어 있다. 부엌은 구조나 형태, 반자 등은 그대로이나 문과 고창을 교체해 새로 끼웠으며 바닥에 타일을 깔았다. 부엌 우측으로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방에는 하나의 다락이 있고 방 가운데에 기둥이 서 있다. 과거 툇마루를 헐어 내고 방으로 넓히면서 만들어진 형태이며, 방문 앞에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우측 익랑에는 원룸식의 방과 부엌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본래는 안사랑과 광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개조되었으며, 끝 단 1칸은 증축한 것이다. 현재 안방과 마찬가지로 방 내부에 기둥이 설치되어 있는데, 원래 사랑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던 것을 헐어 내고 공간을 넓혔기 때문이다. 안채의 좌우측으로 1칸씩 내달았는데, 양철 지붕을 설치하고 안마당을 향해 내달은 처마와 본채 지붕의 합각 면을 전부 양철 슬레이트로 마감하였다.

안채 우측면은 전부 조적조로 되어 있으며 좌측면은 시멘트로 마감하였다. 안채의 배면 또한 부분적으로는 시멘트 마감을 하였으며 일부는 토벽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안채 배면에 조적조로 된 굴뚝이 하나 남아 있고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대청 뒷문 양쪽으로 방 다락과 마루 다락이 길게 설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고 전부 헐어 냈다. 배면 우측 칸에 마루방이 설치되어 있고, 배면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안채에는 방마다 마루방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안채를 개량하면서 대부분 헐어 냈다. 1958년 안채 개량 당시 떼어 낸 문짝이나 부재들이 아직도 보관되어 있으며, 안채의 배면이 옛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의 맞은편에 배치되어 있으며, ‘ㅡ’자형 평면에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가구 구조는 1고주 5량이며, 민도리계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1970년 가옥을 개조하면서 서양식 기와로 교체하였다. 대문이 오른편에 위치해 있으며 안마당으로 진입하려면 한 번 꺾어서 들어가야 한다. 사랑채는 전부 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지붕 가구와 구조를 제외하고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옥주 증언에 의하면 약 80m 전방쯤 은행나무 위치에 대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확인이 불가능하다.

[의의와 평가]

민형익 가옥은 건축 연대가 오래되고 역사가 깊으나 많은 부분이 개조되어 본래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 과거 가옥주가 문화재 지정을 위해 힘쓰며 보존하였으나 지정이 무산되어 대대적인 개조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가옥주 민형익의 5대조[민재정]는 경상남도 산청현감을 지냈으며 조부[민태완]는 면장, 선친은 조합장을 지냈다. 조부와 선친 모두 현 가옥에 거주하였으며, 민형익이 태어나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는 가옥으로서 가옥주의 애착과 보존 의지가 강하나, 건축적인 의미보다는 역사적인 가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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