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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895
한자 韓慶春
영어음역 Han Gyeongchu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82년연표보기 - 『호산록』 집필 시작
활동 시기/일시 1619년연표보기 - 『호산록』 집필 완료
묘소|단소 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청주
대표 관직 참봉

[정의]

조선 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청주. 증조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이고, 할아버지는 한익(韓翼), 아버지는 한영희(韓暎憙)[1518~?]이다. 어머니는 담양 전씨이다. 아들은 『호산록』을 완성한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경춘(韓慶春)청주 한씨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족보에 올라 있고, 아들 한여현의 과거 급제 방목에 청주 한씨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버지 한영희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기록되어 있어 한경춘 대에 본관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에 전리(典理) 한정덕(韓正德)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서산 사지촌(蛇池村)에 정착한 것이 서산 청주 한씨의 시작이다. 청주 한씨의 가계는 한정덕의 아우인 한정수(韓正粹)의 자손들로, 한정수의 증손자 한서정에서 시작하여 한윤련, 한익, 한영희, 한경춘, 한여현으로 이어지며 서산의 명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활동 사항]

한경춘은 생몰년을 알 수 없지만 아들 한여현이 1571년(선조 4) 생이고 1603년(선조 36) 한여현의 생원 급제 방목에 부모가 생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500년대 중반에 출생하여 160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종9품 참봉직을 지냈다. 1582년(선조 15) 서산군수로 부임한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제안으로 서산의 사찬 읍지인 『호산록』을 쓰기 시작하였다.

한경춘고경명과 가까이 지낸 것은 아버지 한영희 때부터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한경춘고경명과 자주 대화를 나누었고, 고경명의 아들들과 북산(北山)에 올라 노닐기도 하였다. 읍지를 편찬해 보라는 고경명의 제안에 한경춘은 흔쾌히 응하여 “군수의 뜻을 어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호산록』 곳곳에 보인다. 고경명『호산록』 편찬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하였고, 20세 이하의 명민한 청년 30여 명을 뽑아 한경춘을 비롯해 문성해(文城海), 박유일(朴惟一), 유지립(柳之立), 유민수(柳敏遂)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다. 고경명이 서산군수로 재임한 기간은 1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

한경춘한효순(韓孝純)[1543~1621], 곽설(郭說), 이흡(李洽), 이광국(李匡國), 이사의(李士毅) 등과 교류하였다. 특히 한효순과 친분이 두터워 그가 부찰사로 명나라 장수 이유격의 접대사가 되어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효순의 시체를 찾아 헤맸다는 일화도 전한다.

『호산록』에는 청주 한씨의 행적은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으나 지은이인 한경춘은 인물조에 빠져 있다. 따라서 그의 행적은 『호산록』 서문이나 「호산록의례고상(湖山錄依例考詳)」 그리고 향교조(鄕校條)에 적힌 활동상, 가깝게 지낸 인물들과의 관계, 청주 한씨 혈족의 행적을 통해 살필 수밖에 없다.

[학문과 저술]

아들 한여현과 함께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을 편찬하였다. 1582년 집필을 시작하여 1619년 한여현이 완성한 이 책은 충청도에 남아 있는 사찬 읍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묘소]

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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