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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879
한자 閔泰瑗
영어음역 Min Taewon
이칭/별칭 우보(牛步),부춘산인(富春山人)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민태원 생
활동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서울로 이주
활동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매일신보』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동아일보』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조선일보』 편집국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7월연표보기 - 박문서관에서 『부평초』 간행
활동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중외일보』 편집국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수필 「청춘예찬」 발표
활동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사설 「직업화와 추화」로 3개월의 징역형을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민태원 졸
출생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서울
수학|강학지 수하동공립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중구 수하동
수학|강학지 경기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수학|강학지 와세다대학 - 일본 도쿄
성격 언론인|문인
성별
대표 관직|경력 『중외일보』 편집국장

[정의]

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문인.

[가계]

호는 우보(牛步) 또는 부춘산인(富春山人). 아버지는 민삼현이다. 민태원(閔泰瑗)의 할아버지가 산청현감을 지낸 인물이라 사람들이 그의 집을 민산청 댁이라 불렀다고 한다.

[활동 사항]

민태원[1894~1934]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9년에 상경하여 수하동 공립 보통학교와 경기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경기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의대 진학을 희망하였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1914년 『매일신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당시 최남선(崔南善)이 발간하던 잡지 『청춘』 9호에 수필 「화단에 서서」가 실린 것을 계기로 문학 활동을 시작하게 하였다. 1918년 한국 최초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애사(哀史)」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 『매일신보』에 연재하였다. 1919년 『매일신보』의 편집국장으로 승진하였으나 곧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민태원은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한 후 학업을 병행하면서 외국 소설인 『부평초(浮萍草)』, 『서유기(西遊記)』 등을 번역하여 『동양일보』에 연재하였다. 귀국 후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장·정치부장 등을 거쳤고, 잡지 『개벽』 35호에 「황야의 나그네」를 발표하였다. 『조선일보』와 『중외일보』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던 중, 1929년에 쓴 「직업화와 추화」라는 사설이 꼬투리를 잡혀 3개월의 징역형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중국의 배일 운동(排日運動)을 찬양했다는 이유에서다.

민태원은 언론인으로서 김형원(金炯元)[1901~?], 유광렬(柳光烈)[1889~1981], 정인익(鄭寅翼)[1902~?]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3년경 개성의 손모(孫某)라고만 알려진 독지가의 제의로 만주에서 신문 발간을 준비하였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접었다. 1934년 6월 20일 젊어서부터 앓던 폐결핵으로 인해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민태원의 문학 작품은 다양하며, 화려체 산문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수필은 「청춘예찬」과 「화단에 서서」가 대표적이다. 1929년 『별건곤』에 발표한 「청춘예찬」은 젊은이의 정열은 이성과 지혜보다 값지다는 것을 다양한 비유를 들어 찬미하고, 열심히 살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이 「청춘예찬」은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졌다.

번안 소설로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연재한 「무쇠탈」[고아쓰고베 작, 일명 「철가면」]이 있다. 이는 1948년 덕흥서림(德興書林)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밖에 오승은(吳承恩) 원작 『서유기』, 엑토르 말로 작 『집 없는 아이』의 일본 번역서인 『오노가쓰미(己が罪)』를 번안한 『부평초』[1925. 7. 박문서관]가 있고, 역사서로 『갑신정변과 김옥균(金玉均)』이 있다. 논문으로는 「경제적 파멸에 직면하여」[신민 제9호, 1926. 1.], 「보기 싫은 현실의 환영(幻影)」[신민 제17호, 1926. 9.] 등이 있다. 콩트로는 「어느 사람들의 회화」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밖에 희곡, 기행문, 전기, 단편 소설도 썼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국도 변에 민태원 문학비가 있다. 비에는 민태원의 대표작인 「청춘예찬」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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