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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878
한자 李錫泰
영어음역 Yi Seoktae
이칭/별칭 소매(小梅)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연표보기 - 이석태 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덕명학교를 세움
활동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홍성에서 서산으로 이주
몰년 시기/일시 1967년연표보기 - 이석태 졸
출생지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
거주|이주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 지도보기
성격 교육자
성별
본관 서천
대표 관직|경력 덕명학교장

[정의]

충청남도 서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가계]

본관은 서천(舒川). 호는 소매(小梅). 아버지는 이우규(李禹奎)이다.

[활동 사항]

이석태(李錫泰)[1884~1967]는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에서 이우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는데, 10세 때 홍주목사가 개최한 경서 강의에 나가 유생들과 함께 실시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할 정도였다. 1900년에는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일 유학이 추진되기도 하였으나, 당시 일제 침략의 국운을 비통하게 여겨 거절하였다. 대신 고향인 광천으로 내려와 1908년 덕명학교(德明學校)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러나 1915년 덕명학교마저 일제에 의해 덕명보통학교로 개편되고 식민지 교육을 담당하게 되자 곧 사직하였다.

이석태는 1914년에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로 이주하며 서산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러한 이석태를 인근의 유림들이 큰선비라고 부르며 존경하였는데,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많은 후학들은 해방 이후 주요 요직에 진출하였다. 한편 이석태와 함께 한 평생지기로는 『황성일보』 주필을 지낸 김익환을 비롯하여 김상정, 김승제, 이기승 등이 있었다.

[학문과 저술]

유고로 『소매고(小梅稿)』 1권 1책이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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