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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832
한자 趙安邦
영어음역 Jo Anb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무과에서 장원으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6년연표보기 - 삼수군수(三水郡守)로 재등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3년 동안 의금부에 수감
부임|활동지 안동부 - 경상북도 안동시
부임|활동지 회양부 - 강원도
부임|활동지 부산 - 부산광역시
성격 무신
성별
본관 평양
대표 관직 훈련도정

[정의]

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평양(平壤). 아버지는 정로위(定虜衛)를 지낸 조경록(趙景祿)[1542~?]이다.

[활동 사항]

조안방(趙安邦)은 서산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수레를 호종하였다. 선조의 행차가 영유[현 평안남도 평원군]에 이르렀을 때 특별히 실시한 무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선전관겸비변사낭청(宣傳官兼備邊司郞廳)을 역임하였다. 안동판관(安東判官)에 부임 중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아버지 조경록이 죄를 짓고 도망함에 따라 1597년(선조 30)에 체직되었고 3년 동안 의금부에 수감되었다. 당시 조안방이 감옥에 갇히자, 안동 주민들이 크게 탄식하고 안타까워하였으며, 솔선하여 양식을 대주었다고 한다. 1606년(선조 39) 삼수군수(三水郡守)로 재등용되어 회양부사(淮陽府使), 부산첨사(釜山僉使), 훈련도정(訓鍊都正)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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