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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30
한자 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여성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보물 제103호 지정
현 소재지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지도보기
성격 당간 지주
관련 인물 김정언(金廷彦)|법인국사(法印國師)
크기(높이,길이,둘레) 4.2m[높이]|4.2m[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서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03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당간 지주.

[개설]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 지주라고 한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는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 공간에 배치되었는데, 경내는 작은 개울을 건너 들어가도록 하였다. 사찰의 진입 공간과 중심 공간이 물로 나누어져 있어 마치 사바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개울이 구분하고 있는 듯하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에 배치되어 경계나 위상을 표시하는 기능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립 경위]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은 975년(광종 26) 직후에 건립되었으며,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는 978년(경종 3)에 건립되었다. 이 중에서 김정언(金廷彦)이 찬하여 건립된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에는 보원사(普願寺)에 서 있던 당간 지주와 관련된 내용이 전하고 있다. 즉 “법당(法堂)을 중정(中庭)에 세우고 범패(梵旆)를 그 위에 걸어 두니, 바람에 흔들리고 태양에 빛나며 휘날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당간 지주가 지금과 같이 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화려한 장엄물들이 걸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법인국사(法印國師)가 하산하면서 그 일행이 보원사에 도착하자 번개(幡蓋)가 구름처럼 날렸다고 하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가 세워지기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용현저수지로 흘러드는 용현천(龍賢川)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사적 제316호]의 사역 내에 자리하며,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의 남쪽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높이 4.2m로, 70㎝ 정도 폭을 두고 동서로 서 있다. 마주 보는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나, 그 바깥 면에는 가운데 2조의 단면 호형(弧形)의 돌선을 세로로 양각하고 양측 주연(周緣)을 따라 넓은 종대를 양각하였다. 앞면과 뒷면에도 면의 주연에 종대를 양각하였는데, 전체 형태가 상당히 장식적인 느낌을 준다.

지주의 형태는 4면에 넓은 홈을 얕게 파서 테두리를 도드라지게 하고, 지주의 상단부 바깥 끝 부분을 둥글게 다듬어 거대한 크기에도 부드럽게 보이도록 조각하였다. 간주를 받치는 간대(竿臺)는 지주의 치석 부분보다 1단을 올려 방형의 대좌(臺座)를 마련하고 그 위에 원좌(圓座)를 양각시켰다. 원좌는 얕은 2단으로 주위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윗면의 간주를 받치는 자리를 깊이 15㎝ 정도로 파서 끼워 고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다른 것과 비교할 때 깊이가 깊은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간대를 옆에서 보면 윗면에서 20㎝ 정도 아래까지 치석이 되어 턱을 이루고 있는데, 원래의 기단부는 치석된 아랫부분에 끼웠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주의 마주 보는 안쪽에는 방형의 홈을 중앙에 팠고, 그 아래에는 대석 상면에서 60㎝ 위쪽에 방형의 구멍을 뚫어 당간을 고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황]

2011년 현재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국가 소유로 서산시가 관리하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2006년부터 12년 계획으로 연차 발굴을 추진하고 있는 서산 보원사지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의 기단부가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 인하여 기단부 아래로 묻혔던 덜 가공된 지주 부분이 솟아 드러나 화강암으로 새로이 보강하였다.

[의의와 평가]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각면을 고르게 다듬었을 뿐 아니라, 정연하고 세련된 치석 수법을 보인다. 또한 지주부는 너비와 폭이 전체 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 날렵한 인상을 주고 있다. 기단이 결실되기는 하였지만 정연한 결구 수법으로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발달된 형태와 정연하고 장식적인 양식 수법을 보이는 점에서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