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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656
한자 瑞山休岩里先史遺蹟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용암휴암길 243-1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8년 5월 31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1차 발굴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8년 6월 10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1차 발굴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8년 10월 10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2차 발굴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8년 10월 18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2차 발굴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9년 5월 8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3차 발굴 조사 착수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9년 5월 19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3차 발굴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0년 9월 7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4차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0년 9월 15일연표보기 - 국립중앙박물관의 4차 발굴 조사 완료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0월 31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기념물 제169호
현 소재지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용암휴암길 243-1[휴암리 산8]지도보기
원소재지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용암휴암길 243-1[휴암리 산8]
성격 주거 유적
면적 3,300㎡
소유자 이근수 외 2명
관리자 서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제169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개설]

유적의 존재는 마을 주민 이천호가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빗살무늬 토기편 등을 신고하면서 확인되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이 1968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총 4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모두 청동기 시대 주거지 11기와 야외 노지 1기, 그리고 신석기 토기편이 출토된 부석 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1차 조사는 1968년 5월 31일~6월 10일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 해당하는 구릉 정상부의 남쪽 사면에 대하여 진행하였으며, 주거지 2기와 주거지를 감싸는 형상의 부석 시설 1기가 조사되었다.

2차 조사는 1968년 10월 10~10월 18일에, 3차 조사는 1969년 5월 8~5월 19일에, 4차 조사는 1970년 9월 7~9월 15일에 시행되었다. 2~4차 조사는 모두 행정 구역상 서산시 고북면 용암리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진행하였는데, 서남 방향으로 길게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의 상부와 사면부를 대상으로 하였다. 이 조사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9기와 야외 노지 1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가 조사된 지역은 행정 구역상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고북면 용암리로 구분되지만, 1차 조사 이후 줄곧 휴암리 유적으로 불러 왔고 지형상 동일 유적권에 해당하므로, 기존의 인식에 따라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瑞山休岩里先史遺蹟址)라고 부르고자 한다.

[위치]

서산시 해미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1㎞ 내외의 거리에 위치한다. 북쪽의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서 남쪽의 고북면 용암리에 이르는 지역까지 길게 형성된 야산의 능선 상부에 분포하는데, 북쪽 전방에는 ‘해미천’이 흐르고 그 뒤로 높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형태]

총면적은 3,300㎡이다. 주거지는 모두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로, 평면 장방형 8기와 타원형 3기로 구분된다. 내부 구조는 평면 형태와 상관없이 모두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는데, 구덩이의 양쪽 끝에는 안경알 형태의 기둥 구멍이 있다. 타원형 구덩이 이외에 4주식의 기둥이 배치된 형태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형태는 송국리(松菊里)식 유형(類型)으로 분류되는 청동기 시대 중기의 전형적인 주거 구조에 해당한다. 출입구와 바닥은 별도의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바닥에 일부 진흙을 깔아서 보강한 흔적이 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노지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으나, 야외 노지 1기가 확인되었다.

부석 시설은 주거지와 중복되지 않고 평면 방형에 가까운 형태인데, 빗살무늬 토기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주거지와는 별개로 신석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용도는 알 수 없다.

[현황]

2011년 현재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의 소유자는 이근수 외 2명이며, 관리자는 서산시이다. 2005년 10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되었다. 출토 유물은 바리[鉢]·단지[壺]·단도마연토기로 대표되는 토기류와 돌살촉[石鏃]·돌칼[石劍]·조갯날 돌도끼[兩刃石斧]·홈자귀[有溝石斧]·돌칼[石刀]·돌끌[石鑿]·갈돌[石棒]·갈판[碾石]·숫돌[砥石]·가락바퀴[紡錘車] 등의 석제품 및 옥제 꾸미개[裝身具] 등이 있다.

시기는 석기의 형태로 보아 부여 송국리 유적(扶餘松菊里遺蹟)[사적 제249호]보다 약간 이른 시기로 보고되었으나, 주거형이 부여 송국리 유적과 유사함에도 출토 토기는 전혀 이질적인 점을 고려한다면 부여 송국리 유적과 동일 시기, 혹은 약간 늦은 시기에 상호 교류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시기도 부여 송국리 유적의 기원전 6~기원전 4세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 시설에서 빗살무늬 토기편이 확인되었고, 청동기 시대 주거지에서는 발형 토기, 적색마연토기, 무문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는데, 토기편에는 구순각목문과 공열문 등이 시문되어 있다. 석기는 반월형 석도와 돌살촉, 간돌도끼[마제 석부], 돌칼[석검], 갈판, 갈돌, 석착 등이 있고, 토제품으로는 방추차와 어망추가 있다.

[의의와 평가]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은 서해안 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으로, 일찍부터 청동기 시대 중기의 생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되어 왔다. 특히 청동기 시대 전기의 세장방형 주거지와 중기의 송국리형 문화가 결합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서, 최근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일대에서 조사된 청동기 시대 세장방형·말각방형·원형 주거지와 비교, 검토가 가능하다. 따라서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은 한반도 청동기 시대 중기의 주거 문화 변천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