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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39
한자 瑞山天藏寺阿彌陀後佛幀畵
이칭/별칭 「천장사 아미타후불도」,「천장사 아미타불회도」,「천장사 아미타회상도」,「천장사 아미타설법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고요동1길 93-9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용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88년 10월연표보기 -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9월 20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86호로 지정
현 소장처 천장사 인법당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고요동1길 93-98[장요리 1]지도보기
원소재지 관음사 - 미상
성격 탱화
작가 상겸|도정|성일|법성
서체/기법 비단 바탕에 채색
소유자 천장사
관리자 천장사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86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에 있는 아미타후불도.

[개설]

아미타후불도는 아미타여래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순간을 재현한 불화이다. 고려 후기에는 아미타불만 단독으로 조성한 독존도, 아미타불과 협시인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함께 그린 삼존도, 그리고 아미타불과 팔대 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금강장보살, 제장애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이 결합한 아미타구존도 등이 제작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찰의 주 불전이나 부속 전각으로 극락전이 세워지면서 후불도로서 규모가 큰 아미타후불도가 제작되었다. 존상 구성은 고려 후기 불화보다 복잡해져서 본존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권속인 팔대 보살뿐만 아니라 나한, 사천왕, 신중이나 천녀 등이 외호하는 군도 형식이 유행하였다.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는 1788년 수화승 상겸(尙謙)의 주도하에 도정(到淨), 성일(性一), 성윤, 법성(法性)이 참여해 제작하였다. 2007년 9월 20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제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는 액자형으로, 화면 크기는 138×156㎝이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다. 화면 중앙의 아미타불은 높은 불단(佛壇) 위에 마련된 연화 대좌에 앉아 하품 중생인(下品中生印)의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불단 아래 향 왼쪽에는 관음보살이 서 있다. 관음보살의 보관에는 화불(化佛)이 표현되어 있으며,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관음보살의 맞은편에는 여의를 든 보살이 서 있는데 관음보살과 함께 짝을 이루는 대세지보살로 추정된다. 관음보살 뒤로는 금강저(金剛杵)를 든 제장애보살(除障碍菩薩)이 서 있으며 대세지보살 뒤로는 금강장보살(金鋼藏菩薩)로 추정되는 보살이 합장을 하고 있다. 이 보살들은 아미타 팔대 보살 중 4위(位)의 보살이다.

대좌 아래에는 과일과 주머니 등 공양물을 받쳐 든 동자가 표현되어 있다. 팔대 보살 좌우로는 비파, 검, 용과 여의주, 탑 등을 든 사천왕이 있다. 아미타불 좌우로는 늙은 승려의 모습인 가섭존자와 젊은 승려의 모습인 아난존자를 비롯한 십대 제자와 타방불(他方佛), 범천과 제석천, 용뿔과 여의주를 든 용왕과 용녀가 배치되어 있다.

[특징]

1788년 상겸의 주도로 제작된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는 전통적인 후불도 형식에 따라 존상을 배치하면서도 아미타불의 권속으로 중요하게 표현되었던 팔대 보살을 축소하고 십대 보살을 강조하였다. 또한 일반적으로 화면 상단에 작게 그려지던 동자를 화면 하단 중앙에 배치하는 등 구성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18세기 후반 서울·경기도 지역에 거점을 둔 화승들이 충청남도에 와서 많은 불화를 제작하였다. 상겸 역시 서울·경기도에 거점을 둔 화승으로,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에는 안정된 화면 구성과 상겸 특유의 존상 표현, 유연한 필선과 섬세한 필치가 잘 반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는 전통적인 화면 구성에서 벗어나 팔대 보살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상겸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각 존상을 그려 수준 높은 불화를 완성하였다. 18세기 후반 충청남도에는 이전 시기와 화승들에 의해 새로운 화풍이 유입되면서 다양한 화풍이 공존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한 축은 서울·경기도에 거점을 둔 상겸, 설훈(雪訓), 연홍(鍊弘) 등의 화승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상겸이 그린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는 18세기 후반 충청남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양상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