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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형평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474
한자 瑞山衡平支會
영어음역 Seosanhyeongpyeongjiho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지수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6월연표보기 - 서산형평지회 창립
해체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해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6년 1월연표보기 - 형평청년연맹 가입 결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9년 1월연표보기 - 봉명학교 동정 가극 대회 후원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9년 3월연표보기 - 해미유치원 음악회동정금 전달
성격 사회 운동 단체

[정의]

1924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설립된 형평사 소속 지회.

[설립 목적]

조선 시대에는 도살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흔히 ‘백정’이라 부르며 천대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완전히 철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자, 백정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1923년 4월 신분 차별 타파, 공평 사회 건설, 모욕적 칭호 폐지, 교육 균등 및 지위 향상, 사회 참여 진작, 동지간의 화목·협력·상조 등을 표방하며 조선형평사를 조직하였다.

[변천]

1924년 6월 서산형평지회가 창립되었으며, 태안에 분사(分社)를 두었다. 창립 당시 서산형평지회의 고문은 이유복(李由復)이었고, 위원은 이학선(李學先) 외 9명이었으며, 회원 수는 40명 정도였다. 1930년 국세 조사에 따르면, 조수 육류 판매업자 수는 충청남도 전체 543명, 서산 21명, 대전 54명, 공주 39명 등이었다. 시기는 다르지만 이를 통해 보면 상당수가 형평지회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6년 1월 서산형평지회 소속 청년 30여 명은 임시 의장으로 이대길을 선임한 뒤 이대길의 사회로 형평청년연맹에 가입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1926년 5월에는 해미읍의 일반 이민(里民)과 형평사원(衡平社員) 사이에 충돌 사건이 발생하여 서로 고소를 주고받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1927년 12월에는 충청남도 서산의 주재소원이 까닭 없이 형평사원을 박해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서산형평지회는 서산 지역의 각종 사회 운동이나 문화 활동에 후원금이나 동정금을 내기도 하였다. 1929년 1월에는 봉명학교 동정 가극 대회, 그리고 1929년 3월에는 해미유치원 음악회에 참가하여 동정금을 냈다. 하지만 잦은 충돌 사건과 경찰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조직 활동은 원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929년 1월 서산형평지회의 회원 수는 20명이었으며, 회장은 이필성(李弼成)이었다.

[의의와 평가]

서산형평지회는 창립 이후 신분 차별 철폐, 지역 사회 운동 참여 등을 표방하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20년대 말부터 침체 상태에 있다가 1931년 신간회 해소론이 대두되는 시기에 자동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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