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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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都統傳 |
영어공식명칭 | Biography of Choi Young |
이칭/별칭 | 동국거걸 최도통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지연 |
[정의]
1909년부터 1910년 사이에 충청북도 청주 출신의 작가 신채호가 최영의 생애를 소재로 쓴 전기.
[개설]
「최도통전」은 신채호(申采浩)[1880~1936]가 고려 후기 명장이자 재상인 최영(崔瑩)[1316~1388]의 생애를 중심으로 창작한 전기 소설이다. 원제목은 「동국거걸 최도통전(東國巨傑 崔都統傳)」이다. 1909년 12월부터 1910년 5월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국한문체로 연재되다가 제8장 상편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한글판은 「동국에 뎨일영걸 최도통젼」이라는 제목으로 1910년 3월부터 5월까지 연재되다가 제7장 상편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발표 당시 저자의 필명은 「이순신전」과 마찬가지로 ‘금협산인(錦頰山人)’이었다.
「최도통전」은 「을지문덕전」 및 「이순신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역사 속 영웅적 인물상을 제시함으로써 민중을 계몽하고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신채호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최도통전」의 전체적인 시각은 고려 후기 무신이었던 최영이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고 북벌 계획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영웅적 활약상을 강조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구성]
「최도통전」 국한문본의 『대한매일신보』 연재분은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서론을 제외하고 제2장부터 제8장까지의 본문은 최영 탄생 이전의 시대적 상황과 최영의 청년기, 전쟁에서 최영이 보인 활약 등을 서술한다.
[내용]
「최도통전」은 미완의 작품이다.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제8장까지의 표제를 1910년 연재된 국문본의 제목과 병기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서론, 제2장 ‘최도통 이전의 우리 민족(我族)과 다른 민족(外族)’, 제3장 ‘최도통의 초년’, 제4장 ‘지나(支那)의 풍진과 최도통의 북벌’, 제5장 ‘최도통이 북벌에 착수하고 공민왕이 중도에 반복하다’, 제6장 ‘두 적국이 각기 와서 침로하고 최도통이 다시 불러 출사하다’, 제7장 ‘홍건적이 의류를 함락하고 최도통이 서경에 대전하다’이다. 국문본으로 연재되지 않은 제8장의 표제는 국한문본에 따르면 ‘최도통(崔都統)의 어몽고(禦蒙古)’이며, 최영이 원나라의 침입을 막아 낸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최도통전」의 서론에서 신채호는 전쟁 영웅으로서 최영이 남긴 업적이 ‘무(武)’를 중요시하는 부여족(夫餘族)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쓰고 있다. 외세에 맞서 싸워 적을 물리치고, 북벌 계획을 통하여 옛 영토를 회복하려 하였던 최영의 강인한 정신을 후손들이 본받아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민족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최도통전」에는 ‘우리 부여족’이라는 구절이 자주 나타난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높이 평가하는 신채호의 역사관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신채호는 「최도통전」을 통하여 최영 사망 이후 한반도의 역사가 부여족의 정신을 잃고 소극적으로 변하여 왔음을 탄식한다. 따라서 「최도통전」을 집필함으로써 외세에 대한 항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대국에 맞서 영토의 수복을 꾀하는 진취적인 태도를 강조하고자 하였다.
[특징]
「최도통전」은 신채호의 다른 역사 전기인 「을지문덕전」이나 「이순신전」보다 인물의 정서와 담화를 적극적으로 그려 낸다는 특징을 가진다. 「최도통전」에서 최영은 때때로 슬픔과 비애를 느끼는 인물이며, 이자송(李子松)과 현린(玄麟) 등 다른 인물과 토론식의 대화를 하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최도통전」은 「을지문덕전」, 「이순신전」과 같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논설체 형식을 띠고 있어 근대적인 소설 양식으로 변화하여 가는 과도기의 측면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편 인물의 영웅적 면모를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인하여 역사적 사실성이 약화되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