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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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後谷里 |
영어공식명칭 | Hu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후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인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옛날에 벌말, 독골, 진사골, 뒷골이라는 네 마을이 있었는데 벌말 뒷쪽에 있는 뒷골이 가장 큰 마을이므로 뒷골을 한자화하여 후곡리(後谷里)라 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 1608년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이성징(李星徵)의 호가 후곡(後谷)임을 볼 때 그 이전에도 ‘후곡’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징을 비롯한 연안 이씨는 뒷골을 중심으로 살았던 토성이다. 현재는 수몰로 인하여 앞골로 이전하여 산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문의군 남면(南面) 소속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후곡리, 평촌(坪村), 도곡리(道谷里)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시 용흥면 후곡리로 개편되었다. 1930년 용흥면과 양성면을 합하여 문의면이 되면서 충청북도 청주군 문의면 후곡리로 개편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이 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후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금강의 돌출부에 자리하며 저지대는 모두 대청호에 수몰되었고 고지대인 산지 지역만 잔존하여 있다. 북쪽의 이팔봉에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유일한 교통로가 북남 방향으로 개설되어 있으며 주택들은 교통로 옆으로 조성되어 있다. 산지의 경사는 심한 편이나 산 중턱으로 남북을 관통하는 길이 나 있어 접근은 어렵지 않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대청호와 접하여 항구와 같이 물길을 품고 있는 지형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독골과 벌말에 나루가 있었으나 모두 수몰되었고 현재는 환경 감시선이 다니는 작은 포구 하나가 있다.
[현황]
2023년 8월 31일 현재 후곡리의 면적은 5.76㎢이며, 인구는 18세대, 26명[남자 16명, 여자 10명]이다. 후곡리는 문의면의 남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능선 정상부를 경계로 가호리와 소전리, 서쪽으로 대청호를 사이에 두고 대전광역시 대덕구 황호동, 동구 직동, 남쪽으로 가호리, 북쪽으로 소전리와 접하고 있다.
1980년 대청댐 준공으로 주 마을인 벌말을 비롯한 저지대 대부분이 침수되었다. 주된 자연 마을은 서쪽 금강 변에 발달한 평야에 형성된 벌말[평촌]이며, 남쪽은 노개골들이 있고 북쪽은 느저울들이 있다. 벌말에는 충청남도 대덕군[대전광역시에 편입된 행정 구역]과 연결되는 나루터가 있었다. 벌말 남쪽에 독곡[도곡]이 있었고, 동쪽 골짜기에는 뒷골[후곡]이 있었으며, 뒷골 남쪽 골짜기 막바지에는 진사골이 있었다. 1980년 대청댐의 준공으로 마을과 평야는 수몰되고 미수몰지로 이전하여 다시 부락을 형성하였다. 수몰 당시 200여 가구가 살았는데 주민들은 대부분 타지로 전출하고 24가구가 새로 한옥을 신축하고 살았으나 지금은 17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앞골은 연안 이씨 집성촌으로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앞골에는 연안 이씨 사당이 있다. 후곡리의 문화유산으로는 후곡리 탑신당(塔神堂)과 이성징 묘, 이만원 묘(李萬元 墓) 등이 있으나 대청호로 인하여 고립되어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접근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