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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883
한자 花塘里
영어공식명칭 Hwad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선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북도 청주군 남일면 화당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6월 1일 - 충청북도 청주군 남일면 화당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화당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4년 7월 1일 -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화당리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7㎢
가구수 183세대
인구[남/여] 387명[남 196명|여 191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화당리(花塘里) 명칭은 ‘연꽃이 만발한 못’이라는 뜻의 화당(花塘)에서 비롯되었다. 1866년(고종 3) 전주 이씨 경녕군(敬寧君)의 15세손 이용준(李容濬)이 꿈속에서 집 앞 지당(池塘)[연못]에 연꽃이 만발함을 보았다. 이용준은 꿈을 꾼 다음날 진사과(進士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당을 ‘화당(花塘)’이라 개칭하였고, 마을 이름 또한 ‘화당’이 되었다고 전한다. 한편, 돌꼬지, 즉 석화(石花)와 관련 있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을 지형이 돌이 곶이를 이룬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돌꼬지는 ‘돌로 이루어진, 들판 쪽으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라는 뜻이다.

[형성 및 변천]

1750~1776년[영조 대 후반]에는 오산리(鰲山里)만이 있었다. 1789년(정조 13)에 화림불당리(花林佛堂里)가 새로 조성되었으나 1845년(헌종 13)에 다시 오산리로 통합되었다. 1910년 청주군 남일상면 지역으로 돌꼬지 석관, 석화, 화당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화당리, 오류리(五柳里), 우산리(迂山里), 문의군 북면 남계리(南溪里)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남일면 화당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화당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화당리국사봉(國師峰)의 남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에 있다. 높이 150m의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산지가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며, 국사봉 남사면의 골짜기들과 동쪽에 있는 무심천 주변에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3년 6월 현재 화당리의 면적은 2.7㎢이며, 인구는 183세대, 387명[남자 196명, 여자 191명]이다. 화당리남일면의 남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고은리, 상당구 가덕면 상대리, 서쪽으로 남이면 문동리, 남쪽으로 문의면 남계리, 북쪽으로 가산리와 접하고 있다.

화당리의 자연 마을로는 화당1리에 화당리의 가장 중심이 되는 돌꼬지[석화]가 있다. 국가지원지방도 제32호에서 동화초등학교로 이어지는 화당삼거리 주변에 있다. 말바우[마암]는 돌꼬지 북쪽에 있다., 말바우마을 북서쪽 국사봉에는 큰 바위가 박혀 있어 멀리서도 보이는데, 국사봉의 큰 바위가 바로 말바우이며 말바우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화당2리에는 우암 송시열의 종형 송시염의 아들 문도재(聞道齋) 송기후가 태어난 마을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문도[민득이]가 있으며, 또한 동화초등학교 뒷산 너머의 오리골[오류동], 충현사가 있는 지장골[지장동], 화당소류지 동쪽의 헛가마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화당리의 교육 기관으로 동화초등학교가 있다. 연안 이씨(延安 李氏), 서산 정씨(瑞山 鄭氏), 현풍 곽씨(玄風 郭氏), 은진 송씨(恩津 宋氏)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문의청남대IC로 이어지는 국가지원지방도 제32호가 화당리 동쪽 끝자락을 지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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