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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874
한자 駕山里
영어공식명칭 Ga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선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북도 청주군 남일면 가산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6월 1일 - 충청북도 청주군 남일면 가산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4년 7월 1일 -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7㎢
가구수 199세대
인구[남/여] 331명[남 172명|여 159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가산리(駕山里)는 ‘머미’와 관련이 있다. 머미 또는 므뫼는 가산에 대한 옛 이름으로, ‘멍에미’의 준말이다. 멍에는 ‘소나 말의 목에 가로 얹는 나무’를 가리키고, 미는 ‘산(山)’의 뜻이다. 그러므로 멍에미는 ‘멍에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이며, 이러한 뜻의 한자 지명이 ‘가산(駕山)’이다. 즉, 마을이 멍에처럼 생긴 산 안에 형성되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가산리(駕山里)’로 나타나는데, 청주 관문에서 남쪽으로 20리[약 7.85㎞] 떨어져 있으며, 호수는 137호이고, 남자가 246명, 여자가 236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1750~1776년[영조 대 후반]에는 남일상면 가산리만 있었으나 1789년(정조 13)경에 가산상리(駕山上里), 가산중리(駕山中里), 가산하리(駕山下里)로 분리되었다가 1845년(헌종 11)에 남일상면이 남일면으로 바뀌면서 다시 가산리로 통합되었다. 1910년에는 청주군 남일상면 지역으로 가산리, 가동리(駕東里), 가서리(駕西里), 가북리(駕北里)로 분리되었고 학산리(鶴山里), 원동(院洞), 지경촌(地境村)이 새로 조성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동리, 가서리, 가북리, 가상리(駕上里), 학산리, 원동, 지경리(地境里)와 남일하면의 행정리(杏亭里)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남일면 가산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가 되었다. 1960년대 행정 구역 분리 시 머미를 가산1리, 원골을 가산2리, 살구징이를 가산3리로 분구하였다.

[자연환경]

가산리국사봉(國師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무심천과 만나는데 무심천 주변에 형성된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안에 마을들이 조성되어 있다. 중앙부에는 공군사관학교 소속의 성무비행장이 있어 지형이 크게 변형되었다.

[현황]

2023년 6월 현재 가산리의 면적은 2.7㎢이며, 인구는 156세대, 331명[남자 172명, 여자 159명]이다. 가산리남일면의 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고은리, 서쪽으로 신송리, 남쪽으로 화당리, 북쪽으로 신송리와 접하고 있다.

가산리의 자연 마을로는 머미, 원골, 살구징이 등이 있다. 가산리의 유래가 된 머미에는 여러 자연 마을이 있다. 머미 남쪽에 1701년(숙종 27) 설립되어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체화서원(棣華書院)이 있었던 서원말이 있으며, 머미 북쪽 양지 쪽에 양지말, 머미 서쪽 음지 쪽에 음지말, 머미 동쪽 끝에 방죽말, 머미 남쪽 가운데에는 가운데뜸, 양지말 동쪽에 뒤끝말이 있다. 머미 남쪽 토현고개 넘어 마을 어귀 소나무 숲을 지나 원골[원동]이 있다. 원골은 1402년(태조 2) 문과에 급제, 함안군수(咸安郡守)를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 인동인(仁同人) 장덕생(張德牲)이 낙향한 마을이며, ‘원님이 낙향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머미 동쪽 신홍산 아래 들판 한가운데에 살구징이가 있다. 살구징이는 ‘살구정이’가 변형된 것으로 ‘살구나무 정자가 있는 곳’으로 풀이되는데, 한자 ‘행정(杏亭)’으로도 불린다.

가산리의 문화 유적으로는 청주 한씨(淸州 韓氏) 시조인 한란(韓蘭)의 묘소와 신도비인 청주 한란묘소 및 신도비[충청북도 기념물 제72호]가 있으며, 교하 노씨 유허비(交河 盧氏 遺墟碑), 정시엽 효자비(鄭始燁 孝子碑) 등이 있다. 가산리동래 정씨(東萊 鄭氏), 남양 홍씨(南陽 洪氏), 교하 노씨(交河 盧氏)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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