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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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관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의 성장 과정과 현재의 모습.
[지리적 조건과 전통 농업]
오송읍은 청주의 가장 서쪽으로 동쪽은 미호강과 지류인 병천천을 사이에 두고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과 옥산면, 남쪽은 미호강 본류를 사이에 두고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은 미호천 지류인 조천을 사이에 두고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및 전동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북쪽은 옥산면 동림산 자락과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북쪽의 동림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이 이어지기는 하나 동쪽과 남쪽, 서쪽 모두 미호강과 미호강의 지류인 병천천과 조천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하천 곁의 낮은 구릉과 충적 대지가 발달하여 넓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었고, 농업이 발달하였다.
동림산에서 흘러내린 잔구성 구릉 지대[침식에 강한 부분이 남은 작은 언덕 지대] 말단에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고, 3면을 둘러싼 하천의 넉넉한 물을 이용한 농경지가 발달하여 있다. 넓게 형성된 들판에 걸맞게 궁평, 향교평, 동평, 서평 등과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들이 있다. 이런 마을들은 주변에 작은 언덕도 찾아보기 어려운 평야 지대에 위치하여 넓은 논에서 벼농사와 수박, 애호박, 딸기, 파 등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농사가 발달하였다.
[생명과학산업단지의 조성]
전통적인 농업 지역이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후였다. 1970년 청주 도심을 중심으로 청주산업단지가 조성된 이후 1989년까지 지속적으로 공장 용지가 공급되었다. 그러나 당시 청주 도심에는 늘어나는 산업 시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청원군 지역이던 북쪽의 오창에 과학산업단지가 계획되어 개발되었고, 서쪽인 강외면에도 산업 단지 조성 계획이 마련되었다.
1995년 4월에 처음 개발 계획이 수립되어 경부고속철도 동쪽 지역과 국도 제36호 북쪽의 얕은 구릉성 산지인 연제리와 만수리 등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2003년에 착공하여 2008년에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가 1차로 준공되었다.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는 기존의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 단지에서 벗어나 산업 단지 지정 및 개발 계획 등 기획 단계부터 바이오산업 육성에 필요한 산·학·연·관 기능을 집적화한 국내 유일의 바이오산업 단지이다.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에는 의약품, 건강 기능 식품, 의료기기, 화장품, 보건의료 및 생명과학 산업에 부합한 연구 개발업 등 지식 산업, 생명과학 산업 연관 업종이 입주하였다. 특히 보건의료행정타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픔의약품안전평가원,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충청북도 보건환경연구원, 충북대학교 약학대학 등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경부고속철도 서쪽의 봉산리와 정중리에 ‘오송바이오폴리스지구’라는 별칭을 가진 제2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되었고, 화학물질안전원 등이 속속 입주하고 있다. 2022년부터 제2생명과학산업단지 남쪽 지역인 오송리와 동평리, 서평리 등의 들판에도 2032년 완공을 목표로 제3생명과학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교통 중심지로의 변모]
오송역은 경부고속철도 오송역이 생기기 전까지 간이역에 불과하였다. 1921년 11월 조치원에서 청주 간의 충북선이 개통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나 경부선의 중심역 중 하나인 조치원역과 너무 가깝고 이용객도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1969년 12월 경부고속도로가 대전까지 개통되면서 청주 시내에서 서울로 직접 갈 수 있게 되었고, 조치원과 청주를 연결하는 자동차 도로에 버스가 집중적으로 배차되면서 조치원역이 실질적으로 청주의 관문역 역할을 하면서 이용객은 더 줄어들었다. 그 결과 1972년 8월에는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1974년 12월에는 폐역이 되기도 하였다. 1977년 9월 충북선이 복선화되면서 보통역으로 부활하였지만, 여객이 늘어나지 않아 1983년 2월부터는 여객을 태우지 않는 화물역으로 다시 격하되었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을 잇는 새로운 고속철도인 경부고속철도 오송역이 개통되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당초 계획에 경부고속철도는 청주를 거치지 않고 천안과 대전을 직결하기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1990년 6월 ‘경부고속전철 본선 충북권 유치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1991년 9월 청주 통과 노선으로 변경되었고, 2003년 11월에는 오송역이 경부고속철도 중간역으로 확정되었다. 또한 1996년부터 시작된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천안과 대전이 후보지가 되는 등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2005년 6월에 새로 건설 중인 행정복합도시와 바로 연결할 수 있으면서 우월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천안과 대전을 제치고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으로 결정되었다.
2008년 6월에 새로운 오송역 건설이 시작되어 2010년 10월 고속철도 오송역이 준공되었고 11월부터 영업을 개시하였다. 이후 청주역을 대신하여 충북선 소재 10개 역을 흡수하여 충북의 대표역이 되었고,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를 이어 주는 분기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1905년 경부선 개통 이후 청주의 실질적인 관문역 역할을 하던 조치원역을 대신하여 명실상부한 청주 시민들의 관문역이 되었으며, 서울 등 수도권과 영호남, 강원을 잇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2011년 116만 명이던 이용객은 계속 큰 폭으로 증가하여 2022년에는 950만 명이 되었다.
이용객 수가 늘면서 오송역을 중심으로 청주와 대전, 세종 등으로 연결된 버스 등 대중교통 역시 크게 확충되었다. 오송읍은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에 매우 가깝고 청주국제공항과도 매우 가깝다. 그리고 2025년에 제2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지선이 세종시에서 상봉리와 공북리를 거쳐 직결된다. 바로 연결되지 않았던 고속도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오송읍은 이제 철도와 고속도로, 항공 교통의 중심지로 전국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고,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올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최근 세종시에서는 관내에 고속철도역을 신설하고자 하여 논란이 되고 있지만, 오송역은 세종시의 관문역으로의 입지가 여전하다. 청주시에서는 오송역이 청주에 있으면서 ‘청주’라는 지명이 빠졌기 때문에 ‘청주오송역’으로의 변경도 추진하고 있다.
[생활권의 변동]
농업 지역이었던 청원군 강외면 시절에 오송 사람들은 조치원역을 통하여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로 이동을 하였고, 경제적으로도 청주 도심보다는 훨씬 가까운 조치원읍으로 장을 보러 가는 등 충북 속의 충남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간혹 강내면의 미호중학교로 진학하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조치원읍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고등학교도 청주 시내로 진학하는 학생보다는 조치원, 대전, 천안 등 충남 지역 소재 학교로 진학하는 비율이 높았다. 전화도 청주 번호가 아닌 조치원 번호를 사용하였다. 오송은 행정 구역만 충북이었지 실질적으로는 충남 생활권이었다. 그런 까닭에 1995년 3월 북쪽 충남 연기군과 경계에 있던 심중리가 주민 투표를 통하여 연기군 전동면으로 행정 구역을 옮기는 일까지 있었다.
고속철도 오송역이 생겨나고 생명과학산업단지가 준공되면서 생활권은 점차 충남 조치원읍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관내 초등학생의 조치원으로의 진학은 2009년 오송중학교가 개교하면서 더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강외면이 인구 증가에 따라 오송읍으로 승격한 2012년 3월에는 오송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오송에서 다닐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2014년 청원군이 청주시에 통합되면서 오송 사람들의 생활권은 비로소 조치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오송의 현재와 미래]
오송읍은 미호강 하류에 펼쳐진 미호평야의 중심부로 충북 최대의 곡창 지대였다. 그러나 생명산업과학단지가 조성되고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의 분기역인 오송역과 오송역 주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농업 지역에서 신산업 도시로 바뀌고 있다. 오송에 조성한 두 개의 생명산업과학단지에는 이미 260여 개의 연구 시설과 기업이 입주하여 있어 오송은 첨단 생명과학산업단지로 바뀌었다. 제3명과학산업단지까지 완성되면 대한민국 중부 내륙 지역의 명실상부한 생명과학 산업의 중심 도시가 될 것이다.
오송의 드넓은 농경지는 앞으로 농작물을 길러 내는 곳이 아니라 미래 바이오산업의 핵심 기지로 성장할 것이다. 이에 따라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주민은 더는 찾을 수 없게 될 것이고 새로운 산업 구조에 맞춰 바이오 분야 연구자들과 바이오산업 종사자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리고 산업 단지 내에 마련된 대규모 주거 지역에는 수천 세대의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일부 원주민들이 보금자리를 틀기도 하였지만, 대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여 온 주민들을 비롯하여 청주 도심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
생명과학산업단지의 조성과 고속철도 오송역의 개설은 오송읍의 인구를 늘리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2012년 1월 강외면에서 오송읍으로 승격하였으며, 2014년 7월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하면서 흥덕구 오송읍이 되었다. 생명과학단지가 조성되기 전인 2000년 1만 1257명이던 인구는 생명과학산업단지 조성 이후 많은 기관과 기업 등이 입주하고, 경부고속철도 오송역이 개통되면서 전입 인구가 폭증하여 2012년 1월에는 거의 두 배인 2만 2017명이 되어 오송읍으로 승격되었다. 2023년 6월 현재 인구는 2만 5635명이며, 제2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에 건립 중인 대규모 주거 단지가 준공된 이후에는 5만 3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구의 증가는 학교의 증설을 초래하였다. 4개에 불과하였지만 3개는 폐교를 걱정하던 초등학교가 부활하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처음으로 생겼다. 그리고 충북대학교 약학대학과 청주대학교 등이 제1생명과학산업단지에 자리를 잡았다. 농협과 신협, 새마을금고만 있던 곳에 우리은행, 기업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과 같은 대형 은행 지점이 들어왔다. 의료 시설이라고는 약국이 하나뿐인 곳이었는데, 병원과 의원이 세워졌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졌다. 오송 뜰에 농업용수를 대던 돌다리방죽을 비롯한 저수지들은 이제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호수공원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변화의 뒤안길에 선 원주민]
산업 단지가 생기면서 많은 마을이 사라지고 원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제1차산업단지에 포함된 만수리와 연제리를 비롯하여 동쪽의 쌍청리와 호계리, 화장품 산업 단지가 된 상정리, 제2차산업단지에 포함된 봉산리와 정중리는 자연 촌락이 대부분 사라졌다. 오래도록 터를 잡고 살던 연제리와 상정리의 밀양 박씨, 함양 여씨, 쌍청리의 상주 박씨와 한양 조씨, 공북리의 의령 남씨와 같은 집성촌도 대부분 사라졌다. 산업 단지를 조성하면서 작은 구릉과 골짜기는 깎이고 메워져 옛 지형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많은 자연 지명들도 행정리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 더는 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짐에 따라 주변 공장에 취직하거나 개발 지역에서 벗어난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이어 가고 있다.
산업 단지에 포함되지 않은 마을들은 여전히 농사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산업 단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고 이주한 새로운 주민들의 전원주택지로 개발됨에 따라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여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북쪽의 공북리에는 골프장이 들어섰고, 상봉리는 경부고속철도 노선에 포함되어 마을의 서쪽을 지나는 경부선 철로와 동쪽을 지나는 경부고속철도에 포위되어 철로 소음에 시달리는 마을이 되었고, 국도 제1호와 생명과학단지를 연결하는 도로와 제2경부고속도로 지선이 동서로 가로지르게 되어 철로와 도로에 사방이 둘러싸인 교통섬과 같은 마을이 되었다.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오송리와 서평리, 동평리, 궁평리 등은 원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생업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추진하고 있는 제3생명과학산업단지의 개발과 함께 점차 농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든 마을을 떠나 새로 마련될 주거 지역에 정착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야 할 것이다.
농사에 맞추어 열리던 청원생명수박축제와 같은 행사는 이제 동력을 잃었고, 대신에 2013년부터 열린 화장품과 뷰티 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오송국제뷰티박람회가 각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