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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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고수관(高壽寬)은 주로 19세기 전반에 활동하였으며, 권삼득(權三得), 송흥록(宋興祿), 모흥갑(牟興甲), 김제철(金齊哲), 방만춘(方萬春), 송광록(宋光祿), 주덕기(朱德基) 등과 전기 8명창에 꼽힌다. 전기 8명창이란 19세기 전기에 판소리의 여러 가지 조를 구성하고 더늠[판소리에서, 명창이 독특한 방식으로 다듬어 부르는 어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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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구석기 시대라는 용어는 원래 톰센(Thomsen)의 삼시대법에서 정의한 석기 시대를 러벅(Lubbock)이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눈 것에서 유래하였다. 돌을 때려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는 시대라는 기술 발전 단계상의 한 개념으로 등장했으며, 이 시대의 시기 구분은 주로 석기로 대표되는 유물의 변화 양상에 따라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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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교육. 개항기 서산 지역에는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근대적인 사설 교육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하지만 1911년에 공포된 「사립 학교 규칙」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으며, 그 시설이나 재산은 반강제적으로 해당 지역의 공립 보통학교에 편입되었다. 서산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는 1911년 9월 서령학교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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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서산 출신의 의병. 김병수(金炳洙)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출신으로 안흥첨사(安興僉使)를 지내다 고향인 서산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1905년 11월 일본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에 거주하는 이남규(李南珪)를 찾아갔다. 이남규는 일찍이 유학(儒學)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로 갑오경장의 부당성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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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불교의 중심지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갯가에서 바라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개산’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산은 그 지역의 해상 교통, 즉 항해와 관련하여 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대에는 해안선을 따라 높은 산과 같은 지표를 확인해 가며 항로를 잡는 연근해 항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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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농민 봉기.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으로,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산과 더불어 예포 농민군의 중심 근거지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대단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해미성 전투와 매현 전투 등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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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두우사(杜宇寺)에 있는 조선 후기 삼존 불상. 두우사 대웅전 삼존불상(杜宇寺大雄殿三尊佛像)은 모두 석조이며, 두우사 대웅전에 본존과 협시불로 봉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모시는 불상과는 의궤(儀軌)가 달라 민간 신앙에서 미륵(彌勒)이라고 하여 모시는 불상으로 보인다. 두우사 대웅전 삼존불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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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2개의 영현이 설치된 가운데 해미면과 고북면 및 홍성군 갈산면 일대는 이산군(伊山郡)의 영현인 목우현(目牛縣)으로 편제되었다. 삼국 통일 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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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천도교 지도자. 본관은 밀양. 초명은 박용호(朴龍浩), 자는 도일(道一), 호는 춘암(春菴)이다. 박인호(朴寅浩)[1855~1940]는 충청남도 덕산군 장촌면 막동[현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지가서(地家書)[풍수지리에 근거를 두고 묏자리나 집터 따위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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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백제 시대의 역사를 소재로 하여 개최하는 문화 예술 축제. 백제 닷개 내포 문화제는 약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즉위식과 백제 사신 행렬을 테마로 하여 기획된 종합 문화 예술 축제이다.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내포’란 과거 예산·당진·홍성·서산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내포는 아직도 예산군 삽교읍에 자연 마을명으로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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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서 발굴 조사된 백제 시대 지방 세력의 고분군. 서산 부장리 고분군(瑞山副長里古墳群)은 2004~2005년에 이루어진 임대 아파트 조성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2006년 11월 6일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사적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적 제475호로 지정된 지역은 보존되어 있지만, 나머지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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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마애불.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국도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서산나들목에 다다른다. 그 다음 가야산 상왕봉으로부터 발원한 물길이 서산시 운산면의 용현계곡을 만들며 굽이쳐 흘러드는 용현리 입구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용현계곡의 물소리가 잦아드는 한쪽 골짜기를 찾아들면, ‘백제의 미소’로 알려져 있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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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취평리 부석사에 있는 아미타후불도. 아미타후불도는 아미타여래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순간을 재현한 불화이다. 조선 시대에 아미타후불도는 사찰의 주 불전과 부속 전각인 극락전에 봉안되었으며 후불도의 규모에 맞게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팔대보살, 나한, 사천왕, 신중이나 천녀 등이 외호하는 군도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19세기에는 암자를 중심으로 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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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성현[지금의 서산]에서 일어난 민란. 서산[부성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점은 1182년(명종 12)이다. 이때는 무인 정권 시대로 당시 무인의 집권에 자극받은 각 지역에서 농민 혹은 천민들이 난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충청 지역에서는 1176년(명종 6) 공주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을 시작으로 충청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서산에서 민란이 일어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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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상여의 관리와 출납 및 출상을 담당하는 역원. 상여장모의 주된 일은 평소 마을에서 보유한 상여를 관리하고, 초상이 발생했을 때 그 출납을 책임진 역원이다. 이를 상여작모, 상여장무 등이라고도 한다. 상여장무의 본디 뜻은 ‘상여장무(喪輿掌務)’인데 이것이 와전되어 상여장모 또는 상여작모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해석도 있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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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0월 1일 동학 교도들이 충청남도 서산의 관아를 습격한 사건. 서산·태안 지역에서 조직적인 농민 봉기가 시작된 것은 1894년 음력 10월 1일[양력 10월 29일]이었다.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해 9월 14일 태안군수 신백희(申百熙)와 종친부에서 파견된 별유사 김경제(金慶濟)가 동학 두령 30여 명을 투옥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예포대도소(禮包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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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자기.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녹유자기 사이부호편은 서산 부장리 고분군 Ⅱ지점 6호 분구묘의 주구에서 출토되었다. 삼국 중 백제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반영하듯 백제 지역에서는 많은 중국 자기가 발견되었다. 중국 자기는 특히 위세품적 요소가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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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소비조합. 1920년대 서산 읍내장의 상권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들은 서산 지역의 상업이 부진하게 된 원인으로 “첫째 자본 문제도 있거니와 대부분은 상업 경영 방침의 불충실, 불친절한 까닭, 둘째 일반 고객의 심리가 외인(外人)의 상회에서 매매(賣買)를 선호하는 까닭” 등을 손꼽았다. 1926년 서산 지역의 1년 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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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 시대 마애 여래 삼존상.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 여래 삼존상으로, ‘백제의 미소’로 불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산신령과 산신령의 두 부인으로 보고 건방지게 앉아 있는 둘째 부인에게 첫째 부인이 돌을 던지려고 하는 형상이라고 해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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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鄭臣保)를 시조로 하고 정인경(鄭仁卿)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정씨는 서산의 토착 성씨이며 서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정신보[?~1261]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지만 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들어와 망명하였다. 그 후 아들 대호군(大護軍) 정인경의 공으로 인하여 1182년(고려 명종 12)에 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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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종합 경기장. 서산 지역 주민들의 체력 증진과 더불어 도민 체육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2001년 12월 28일 서산종합운동장을 준공·개장하였다. 도비 12억 원, 시비 276억 9100만 원, 이사회 기금 11억 원 등 총 299억 9100만 원이 투입되었다. 2005년에는 서산종합운동장 건립을 기념하여 충청남도 도민 체육 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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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형평사의 지회. 조선 시대에는 도살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흔히 ‘백정’이라 부르며 천대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완전히 철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자, 백정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1923년 4월 신분 차별 타파, 공평 사회 건설, 모욕적 칭호 폐지, 교육 균등 및 지위 향상, 사회 참여 진작, 동지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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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체육 시설. 서산시 농어민문화체육센터는 서산 지역 농어민들의 체력 증진과 도민 체육 대회 유치를 위해 2001년 12월 28일에 준공·개장하였다. 천안, 공주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농어민문화체육센터이다. 서산시 농어민문화체육센터는 면적 7,986㎡의 철골 돔형 건물이며 배드민턴, 배구, 농구 경기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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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토착어. 충청도 사투리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우며,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있다. 또한 은근하고, 투박하며, 점잖은 인상을 풍긴다. 느릿느릿한 어투에 속 깊은 정감이 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다. 또한 온기 넘치는 여운 속에 평화로운 선량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사투리의 성향 때문에 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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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신간회의 지회. ‘민족 독립 쟁취’, ‘기회주의 배격’ 등의 강령을 내걸고 창립된 신간회는 일제 강점기 국내에 조직된 민족 운동 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단체였다. 창립 당시 신간회 지부는 전국 141개 지역[회원 수 약 4만 명]에 걸쳐 조직되었으며, 충청남도 지역에는 서산을 포함하여 강경, 공주, 당진, 대전, 부여, 예산, 천안, 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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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과 지금의 당진군 일대를 중심으로 한 혜성군(槥城郡)에 속한 여읍현(餘邑縣) 등으로 편제되었다. 여읍현이 위치한 운산면(雲山面) 일대는 가야산으로부터 발원한 용장천이 당진군 내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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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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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리(草綠里)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맨 아래 끝자락인 고북면 동쪽에 자리한 마을로, 이웃한 장요리와 함께 홍성군 갈산면 대산리에 인접해 있다. 초록리는 조선 후기 판소리 중고제의 명창인 고수관(高壽寬)[1764~1849]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초록리는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옹기, 질그릇, 쇠솥 등을 만들어 팔았던 그릇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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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때 홍주목(洪州牧)의 교통 요지로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원집이 있어 원벌 또는 원평리(元坪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원벌, 졀[元上里], 으름[義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홍주군 합북면 북원당리, 남원당리, 영산곳리 등 세 마을이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부산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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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천문학자. 본관은 서령[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 서령부원군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굉(柳宏)이고, 아버지는 유성신(柳成臣)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손애(孫埃)의 딸이다. 자식은 유백유(柳伯濡)·유백종(柳伯淙)·유백순(柳伯淳) 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다. 서산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의 셋째 아들인 유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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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입부(立夫). 서산의 유력 성씨인 서령 유씨 유백순(柳伯淳)[?~142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 유방익(柳邦翼)이며, 형은 유경립(柳景立)이다. 유지립(柳之立)[1555~?]은 1575년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1579년(선조 12) 25세에 생원 3등 54위로 입격하였다. 사마방목에 나타나는 서산 거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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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침공으로 충청남도 서산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 전쟁 초기 미군과 인민군의 전투는 주로 경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므로 서산군에서는 전투와 관련한 직접적인 피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서산 사람들이 전쟁의 와중에 목숨을 잃거나 이산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서산 지역에서도 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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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 자는 윤숙(允淑), 호는 부재(復齋) 또는 정우(靜寓). 문충공 월사 이정구(李廷龜)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인승(李仁承)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이다. 이철영(李喆榮)[1884~1945]은 1910년 8월 서산 읍내에 있는 경찰서 게시판에 한일합방에 대한 방문이 붙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포고문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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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충청남도 서산시의 절대적 위치 즉, 수리적 위치는 북쪽 끝이 북위 37°00′[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남쪽 끝이 북위 36°36′[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동쪽 끝이 동경 126°39′[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서쪽 끝이 동경 126°22′[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이다. 서산시의 지리적 위치는 충청남도의 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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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수초(守初), 호는 용호(龍湖) 또는 정곡(鼎谷). 할아버지는 증판서 조연손(趙連孫)이고 아버지는 조준수(趙俊秀)다. 부인은 용인 이씨로 이신충(李藎忠)의 딸이다. 둘째 아들은 병조판서를 지낸 조계원(趙啓遠)이다. 조존성은 증좌찬성 조남(趙擥)에게 입양되었다. 조존성(趙存性)[1554~?]은 성혼(成渾)·박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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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음력 정초에 지신에게 지내는 제사. 지신제는 음력 1월 초에 지신(地神)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이다. 서산 지역에서는 집안의 뒤꼍에 지신이 깃들어 있다고 하여 극진하게 위한다. 정초[음력 1월 초]에 지신제를 잘 모시면 집안에 드는 1년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정에 따라서는 지신을 성주보다 오히려 더 높은 신으로 받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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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의 이전 반대 운동. 1932년 10월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되면서, 도내 지역 지방 관공서의 이전 혹은 재배치 문제가 지역 사회의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의 폐쇄 문제를 둘러싼 민원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이 폐쇄된다는 정보가 알려지자 193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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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1784년(정조 8)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가장 왕성한 포교가 이루어진 곳은 충청도 내포 지역이었다. 한편 1785년(정조 9)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으로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될 때까지 백 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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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운동 경기 및 체육 활동과 관련 체육 단체. 서산의 체육은 자연적으로 전래되어 오는 전통 체육과 광복 후의 근대 체육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서산의 근대 체육은 1911년 9월 1일 서산초등학교와 1912년 5월 10일 해미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여러 가지 체육 활동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력을 향상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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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체육 관련 단체. 서산에서 체육회가 창립된 것은 1952년이다. 공주·대전·천안 등 인근 지역에 비해 비교적 늦은 편이었지만 다양한 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호인들 간의 친선 도모 및 건강관리는 물론 경기력 향상을 통해 지역 사회 체육 문화 발전을 꾀하고 있다. 각 소속 단체를 중심으로 체력과 건강 증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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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정려가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계명(啓明), 호는 율암(栗庵). 증조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최인(崔隣)이고 할아버지는 최안세(崔安世), 아버지는 최확(崔確)이다. 어머니는 유경심(柳景深)의 딸이다. 최몽량(崔夢亮)[1579~1627]은 1612년(광해군 4) 진사시 2등에 합격하였고, 1617년(광해군 9)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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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 충신 최몽량(崔夢亮)과 효자 최호주(崔鎬周), 열녀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삼강 정려. 최몽량·최호주·나주 정씨 삼강정려(崔夢亮·崔鎬周·羅州丁氏三綱旌閭)는 충신 최몽량[1579~1627]과 효자 최호주, 그리고 최호문(崔鎬文)의 처 열녀 나주 정씨의 명정 현판을 한데 모은 정려각이다. 서산 지역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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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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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1월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성에서 벌어진 내포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1894년 이른바 예포[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서산 지역의 동학 교도들은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홍주성 전투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동학 농민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해야 할 중요한 전투였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이후 해미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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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충청도 서산을 비롯한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와 사례들을 합편한 충청도의 도지. 1871년(고종 8) 전국적인 읍지 편찬 계획이 수립되어, 충청도의 각 군현에서 모인 읍지들을 17책으로 만들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호서읍지(湖西邑誌)』는 총 1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30.4㎝이다. 『호서읍지(湖西邑誌)』 각 책별 54개의 읍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