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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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16세기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가톨릭교회로부터 분리하여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이다. 그리스도교는 크게 가톨릭교회, 정교회,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프로테스탄티즘이 바로 개신교이다. 한국에서는 개신교를 흔히 ‘기독교’라고 칭하고 있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한자식 음차 표현인 ‘기리사독(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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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서산 천장암에서 수도한 승려. 본관은 여산. 본명은 송동욱(宋東旭),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경허(鏡虛)[1849~1912]는 1849년(헌종 15)에 전주 자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주 청계사에 들어갔다. 청계사 주지 계허(桂虛)를 은사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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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고수관(高壽寬)은 주로 19세기 전반에 활동하였으며, 권삼득(權三得), 송흥록(宋興祿), 모흥갑(牟興甲), 김제철(金齊哲), 방만춘(方萬春), 송광록(宋光祿), 주덕기(朱德基) 등과 전기 8명창에 꼽힌다. 전기 8명창이란 19세기 전기에 판소리의 여러 가지 조를 구성하고 더늠[판소리에서, 명창이 독특한 방식으로 다듬어 부르는 어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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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충청남도 서산시는 충청남도 서북단의 광활한 평야와 저산성 구릉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홍성군, 예산군, 당진군, 태안군 등 네 개의 군이 인접해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최단 거리에 위치한 대산항의 개발과 함께 서산 북부 지역의 산업 단지가 집적되면서 대중국 교역 및 환황해권 교류의 광역 교통망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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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에 있는 구세군 소속 교회. 범국민적, 사회적 나눔 실천의 장이 되어온 자선냄비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구세군의 선교 방침을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 구세군의 선교 활동은 1908년 10월에 내한한 영국인 사관 허가두(Robert Hoggard)[1861~1935]에 의해 시작되었다. 서산 지역에는 한국 구세군이 창립된 지 불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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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예덕리에 있는 식물원. 귀거래향 수생식물원은 장인재 원장이 1990년 서울에서 귀농한 이후 연(蓮)의 대중화를 위해 건립하였다. 또한 2006년 8월부터, 도시민과 지역 학생들에게 자연 학습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 등을 구축하고 있다. 귀거래향 수생식물원은 1만 6530㎡로 7,600㎡의 연못, 660㎡이 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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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서산 지역의 근현대사는 개항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궁벽했던 서산에도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되었다.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빈번했고,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인근 태안군 환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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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행주(幸州). 처음 이름은 기자정(奇自靖), 자는 사정(士靖), 호는 만전(晩全). 증조할아버지는 기묘사화 때 죽은 응교(應敎) 기준(奇遵)이며, 할아버지는 한성부윤을 지낸 기대항(奇大恒)[1519~1564]이고, 아버지는 기응세(奇應世)[1539~1585]이다. 부인은 종실 하원군(河原君) 이정(李鋥)의 딸이다. 아들은 기준격(奇俊格)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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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시인. 본관은 경주.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김영만(金榮晩)[1933~2009]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응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해미초등학교, 서산농림중·고등학교, 공주사범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대 『황인부락(黃人部落)』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77년 『현대시학』에 전봉건(全鳳健) 시인의 추천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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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다. 김옥현(金玉鉉)[1781~1800]은 1797년(정조 21) 5월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붙잡혀 서산 감옥에 투옥되자 16세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서 곁을 지켰다. 김옥현이 하도 간절하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니 옥리(獄吏)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였다. 주변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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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유(德裕), 호는 용주(龍洲)·용곡(龍谷). 할아버지는 김자진(金自珍)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두징(金斗徵)[1646~1678]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파평 윤씨 윤필은(尹弼殷)의 딸이다. 김유경(金有慶)은 서산 대교[한다리] 경주 김씨의 후손이다. 세칭 한다리 김씨라고 불리는 김유경의 가계는 김연(金堧)[149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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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평양서윤을 지낸 김순성(金順誠)의 현손으로, 생부는 영동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이며, 재종숙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1591년(선조 24) 생원시 동방진사과에 3등 43인으로 합격하고 그 해 별시 문과에 병과 12인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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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지역 남양 홍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서산군 인물조에 홍운해(洪雲海) 아들 홍성원(洪性源), 홍지원(洪智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형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문하에서 공부하다 광해군 대에 사마 급제한 이들로 사마방목에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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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0월 2일 충청남도 서산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정기 여객선인 녹도환(鹿島丸)이 침몰된 사건.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철도나 1등 국도가 지나지 않았으므로 육지 교통은 불편하였으나 포구가 발달하여 근대화 이전부터 인천 등지와의 교통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1920년대 중반 서산 지역에서 가장 번성했던 포구는 팔봉면 호리의 구도포, 성연면 명천리의 명천포, 서산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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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鞠周)를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담양 국씨는 조선 전기 서산의 지리지나 읍지의 성씨조나 인물조에 나타나지 않는 성씨로 임진왜란 이후 서산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된다. 1646년 『인조실록(仁祖實錄)』 5월 23일 기사에는 서산 사람 조시응(趙時應)이 정원에 나아가 유학(幼學) 국성유(鞠聖兪) 등의 역모를 상변(上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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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집안에 재복을 준다고 믿은 신령. 대감은 집안의 재수와 재복을 준다고 믿어지는 신령이다. 가정에서는 대감신의 신체(神體)를 만들어 집안에 모셔 두기도 하였다. 대감신의 유래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감’이라는 관직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대감은 주로 서울·경기 지역에서 신봉되고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지에서는 거의 신앙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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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출장소. 대한법률구조공단 대전지부 서산출장소는 효율적인 법률 구조 사업의 추진을 통하여 충청남도 서산 지역 주민들의 기본권 보호는 물론 법률 복지 증진을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9월 법무부 산하 재단법인 대한법률구조협회가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에 18개의 지부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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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도비산 봉수(都飛山烽燧)는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 주산봉수(主山烽燧)와 더불어 서산시 관내에 자리하고 있는 3개의 봉수대 중 하나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서산군조에 “도비산 봉수는 동쪽으로는 홍주(洪州) 관내 고구(高丘)의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태안(泰安)의 주산(主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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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농민 봉기.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으로,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산과 더불어 예포 농민군의 중심 근거지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대단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해미성 전투와 매현 전투 등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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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에 몽고군이 침입한 사건. 고려 시대에 일어난 몽고 전란 가운데 충청남도 지방에 몽고군이 이른 것은 1236년 제3차 침입과 1254년 이후 수년간 지속된 제6차 침입이었다. 그 가운데 서산 지역이 몽고군의 위협을 받은 것은 1257년의 일이다. 몽고 전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 출신 정인경(鄭仁卿)[1237~1305]이 인근 지역에 출전하여 공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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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무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원시 종교. 무속 신앙은 외래 종교인 불교·유교·개신교의 상대적 개념으로 무당과 관계된 한국의 전래 신앙을 말한다. 무속 신앙은 무당이라는 사제의 존재 유무에 따라 민간 신앙과 구분된다. 무속 신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굿이라고 부르는 의례를 집행하는 무당이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택을 지낸다고 할 때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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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달원(達源).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 문응벽(文應璧)이다. 문성해(文成海)[1540~?]는 1575년(선조 8) 서산의 유생들과 함께 서산향교 이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1588년(선조 21) 49세의 늦은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 57위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공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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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있는 지장시왕탱화. 지장시왕탱화는 지장삼존과 명부의 10명의 대왕인 시왕을 한 화면에 함께 그린 불화이다. 지장시왕탱화는 주로 대웅전, 극락전 등 주 불전이나 암자의 법당에 좌측 혹은 우측 벽에 신중도와 마주보게 건다. 주로 사찰의 대웅전과 같은 주 불전 혹은 암자의 법당 한쪽 벽에 걸어 천도 의식을 거행한다. 「문수사 지장시왕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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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미술사는 조선 3대 화가의 한 사람인 안견(安堅)과 그의 작품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빼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안견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산시 지곡면에는 안견기념관이 있고 매년 안견 예술제와 미술 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서해안고속국도의 개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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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서 전래되는 「서산박첨지놀이」에 등장하는 인형.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서산박첨지놀이」는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주인공 박첨지를 통해 양반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마을 단위 민속 인형극이다. 이 놀이가 서산시 음암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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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 농민 전쟁 때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최후 전투지.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이었다. 특히 서산 지역의 농민군은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전주성 전투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현재 서산시 소탐산에 위치한 매현(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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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마룡리 심포마을에 있는 농촌 전통 테마 마을. 빛들마을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심포마을의 고개 이름인 빛들고개[거절골, 빛뜨라피]에서 따왔다. 2007년 농림부의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선정되어 빛들 황토놀이, 모래구이한과를 주요 테마로 하는 체험마을을 만들고, 빛들마을이라 하였다. 빛들마을은 마을의 농업·농촌 자원 발굴을 통한 도농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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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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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서산 마라톤 대회는 서산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고 서산 시민의 체력 및 삶의 질 향상을 이루며 앞서가는 체육 문화를 만들고자 1992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행사는 서산시 생활체육회와 대전일보사가 공동 주최하고 국민생활체육회 서산시 육상연합회가 주관한다. 서산 마라톤 대회는 5㎞·10㎞·하프 코스의 세 종목이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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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에서 생산되는 생강과의 여러해살이풀. 서산 생강은 1931년부터 서산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의 박영서가 종자용 생강을 가져와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 342번지에 심은 것이 그 시초이다. 나아가 마을 주민들과 박인화는 생강 조합을 만들어 서산 생강을 다른 지역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서산 생강이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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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 안쪽 창리 해안에 위치한 포구. 창리포구는 부석면의 남쪽 끝 해안에 위치한다. 동·서·남 3면은 천수만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태안군 남면, 남쪽으로는 안면도와 마주보고 있다. 창리에 속한 자연 마을은 창말·목말·구장터 등이 있고, 부속 도서로 대섬·쏘아섬·닭섬·검조도·시루섬·토끼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창리포구는 본래 서산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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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서 생산되는 박과에 속한 덩굴 식물. 서산 캡오이는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의 대표 특산물로서 산성리, 장현리, 환성리 일대 등 주로 노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서산 캡오이는 서산 지곡오이, 캡슐오이, 서산오이라고도 불린다. 서산 캡오이는 2004년 실험 재배를 시작으로 2006년부터 출하하기 시작하였다. 캡오이를 연구해 온 대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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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명승 8개소. 조선 시대의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서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의 풍요로운 물산과 아름다운 인심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탄하며 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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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황토밭에서 재배되는 쪽파.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동양 재래의 쪽파는 중국에서 전래되어 각 지역에서 선발과 도태를 거쳐 토착화된 품종이다. 쪽파가 자라기에 적정한 온도는 15~20℃이고, 저온에 강하며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저온 피해는 거의 없다. 쪽파 재배 방법으로는 시설 재배, 터널 재배, 노지 재배, 억제 재배 등이 있다. 한여름에도 땅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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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서산 유상묵 가옥은 1925년 유상묵[구한말 종5품]이 명당이라고 전해지는 현 위치에 서울의 운현궁(雲峴宮)을 본떠 건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행랑채는 원래 초가로 되어 있었으나 1960년대에 양식 기와로 교체하였다. 약 4,770㎡의 넓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좌향은 남향이며 배산하였고 전망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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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에 있는 아미타후불도. 아미타후불도는 아미타여래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순간을 재현한 불화이다. 고려 후기에는 아미타불만 단독으로 조성한 독존도, 아미타불과 협시인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함께 그린 삼존도, 그리고 아미타불과 팔대 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금강장보살, 제장애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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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이른바 ‘4대강 사업’으로 운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연안 해로를 중요한 교통로로서 사용해왔던 만큼 운하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찍이 태안반도에 운하를 개착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건이었다고 할 만하다. 운하 건설은 1134년(인종 2)에 처음 시작되어 1669년(현종 10)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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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안호리에서 고북면 신송리 구간을 경유하여 서울과 목포를 연결하는 고속 국도. 서해안고속국도는 서울특별시와 전라남도 목포시를 잇는 길이 341㎞의 도로로 경부고속국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고속 국도이다. 서해안고속국도의 서산시 구간은 운산면 안호리에서 고북면 신송리까지 길이 49.9㎞에 왕복 6차선, 폭 30m의 포장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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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죽리에 있는 무역항.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한 대산항은 컨테이너 피더선을 수용하는 다목적항으로, 최근 거대 경제국 중국과의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서해안권 중심 항만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산항은 행정 구역 상 서산시 대산읍 대죽리 일원 76만 5000㎡의 규모로 건설되었으며, 1991년 2월 25일 항만 시설 지정 공고를 시작으로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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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선성군(宣城君)을 기리는 사당. 운산면사무소의 전면 주유소 사잇길로 1㎞ 정도 가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경로당과 마을 창고 사이에 서편으로 난 소로가 나타난다. 소로를 따라 300m 가면 우측[북쪽]에 샛길이 있는데, 선정묘(宣靖廟)는 샛길을 따라 다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정묘는 조선 정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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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소작 농민이 지주·소작 관계,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벌인 농민 운동.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한 후 조선의 농업 개발 및 농민 수탈, 농촌 통제를 일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농촌 사회는 자작 농민의 소작인화, 소작료의 고율화, 소작권의 불안정화, 마름의 중간 수탈 현상 등이 심화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농촌 사회 내부에는 소작 쟁의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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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토착어. 충청도 사투리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우며,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있다. 또한 은근하고, 투박하며, 점잖은 인상을 풍긴다. 느릿느릿한 어투에 속 깊은 정감이 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다. 또한 온기 넘치는 여운 속에 평화로운 선량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사투리의 성향 때문에 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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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심화영이 전승한 승무. 승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의 하나로,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독무(獨舞)이다. 승복을 입고 추어서 일명 ‘중춤’이라고도 부르나 불교 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은 아니다. 춤의 유래에 대해서 다양한 설이 있으며 양식과 구성에서도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한국무용 특유의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정수가 잘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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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방 공사와 치산의 목적으로 마을 뒷산에 새로 소나무를 심었다 하여 신송리(新松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해미군 고북면에 신송·마근모지·탑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 고북면 신송리, 대천리, 탑동리, 양천리 지역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해미군 상도면 신송리, 색연리, 탑동 등을 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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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도 종교에 비해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종교로 신흥종교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신종교는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발생하였으며, 사회적 변화 및 혼란에 따른 민중의 구원 의식의 발로와 기존 종교의 설득력 상실 등으로 이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등장한 경우가 많았다. 서산 지역에서도 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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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겸 가야금 연주자. 본관은 청송. 아버지는 피리와 퉁소에 능했던 심팔록이다. 아들은 판소리 명창 심재덕(沈載德)[1899~1967]이고, 딸은 심매향(沈梅香)[1907~1927]이다. 막내아들은 심화영(沈嬅英)[1913~2009]으로 ‘중고제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2000년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7호 승무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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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심화영류 승무 보존 전승 단체. 심화영류 승무는 일반적인 기존 승무와는 달리 무대화되지 않은 1930년대 형태의 승무이다. 기존 승무는 엎드려서 시작하지만 심화영류 승무는 서서 시작하며 시작과 끝을 목탁 소리에 맞추어 합장을 하는 것이 특색이다. 또한 염불 장단이 다른 승무와는 달리 여섯 장단으로 구성된다. 복장은 남색 치마에 미색 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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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조선 전기 화원인 안견(安堅)을 기리는 기념관. 현동자 안견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유일한 진작으로서 전해졌을 뿐 생몰 연대나 활동 시기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1986년 『호산록(湖山錄)』[1619]이 발견되면서 출신지가 서산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안견기념관은 「몽유도원도」를 비롯하여 안견의 전칭 작품이라 일컫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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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10~12월 개최하는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을 기리기 위한 예술 문화제. 『호산록(湖山錄)』에서 산수화의 대가인 안견의 출생지가 현 서산시 지곡면으로 밝혀지면서 뜻있는 지역 주민이 모여 안견을 기리고자 현창(顯彰) 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1991년에 안견기념관을 건립하였고, 2000년부터 각 예술 단체가 연합하여 안견 예술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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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어촌의 자연 마을 단위로 조직된 자주적 협동 조직. 어촌계는 어민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조직된 계이다. 서산시 일대에서 가로림만과 천수만에 접해 있는 대부분의 마을에는 어촌계가 조직되어 있다. 본래 ‘바다의 밭’이라 할 수 있는 갯벌과 어장의 관리는 예로부터 마을의 자치 관행에 따라 대동회에서 주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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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단군전. 단군전은 천진궁(天眞宮)이라고도 부르는데, 단군의 영정을 봉안한 집을 말한다. 1909년(순종 3) 1월 15일 중광절에 대종교를 개창한 홍암대종사(弘岩大倧師) 나철(羅喆)은 대종교를 널리 펴기 위하여 단군 영정을 다량으로 모사하여 국내에 보급시켰다. 서산시 운산면의 고창저수지를 지나 서산 용현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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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이 원적인 근현대 아동문학가. 본관은 파평. 호는 석동(石童). 아버지는 사회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윤덕병[1885~1950]이고 어머니는 조덕희다. 부인은 박용실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원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다. 윤석중(尹石重)[1911~2003]은 서울 중구 수표동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째 자녀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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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에서 활동한 아동 문학가 윤석중(尹石重)이 지은 창작 동요집. 윤석중은 방정환(方定煥)의 뒤를 이어 잡지 『어린이』의 주간을 맡았고, 1,200여 편의 동시를 지었다. 그중 800여 편이 동요로 작곡될 만큼 아동 문학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의 출생지는 본래 서울이지만, 1930년대 초부터 1961년까지 서산에 머물렀다. 『윤석중 동요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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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 종교인, 정치가. 본관은 성주. 아호는 황산(凰山), 도호(道號)는 보암(普菴). 필명은 봉황산인(鳳凰山人). 아버지는 이교칠(李敎七)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다. 유복자로 태어나 작은아버지 이교삼(李敎三)의 양자로 들어갔다. 부인은 심은택의 딸 심인화이다. 이종린(李鍾麟)[1883~1950]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의 외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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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4월 충청남도 서산군 운산면 보현동에서 발생한 동학 농민군의 재지 양반 습격 사건. 서산 지역에 동학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94년 동학 농민 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쯤이었다고 한다. 서산·태안 지역을 포함하여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 동학이 급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1907년 천도교의 제4대 교주로서 활약한 덕산 출신의 박인호(朴寅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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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 이한용(李漢鎔)[1918~1985]은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법률 공부를 하여 변호사 예비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매일신보』에 입사하여 언론인이 되었다. 『서울신문』 기자로 이직한 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민주일보』 기자, 정치부장·사회부장 등을 지냈다. 1954년에는 『평화신문』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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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왕조의 지방지배체제는 ‘갑오·을미개혁’ 이후 커다란 변화를 거쳤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1895년 부(府)·군(郡)·현(縣)제를 일체 폐지하여 군으로서 명칭을 통일하고 각 군을 군세(郡勢)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그런 뒤 군에는 군수를, 면에는 면장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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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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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자동차 관련 산업 단지. 자동차 산업은 서산시가 서해안의 중심 도시로 개발되면서 서산의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게 되었으며,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과 지곡면 등에 산업 단지가 건설되어 여러 자동차 관련 전문 업체가 들어서고 있다.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산업 단지로는 서산일반산업단지, 명천농공단지, 성연농공단지가 있다. 기아자동차 등은 황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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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충청남도 서산군에서 실시된 선거. 1945년 12월 공표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신탁 통치 반대 운동 등으로 말미암아 무산되자 미국은 한국 문제를 UN총회로 넘겨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안’을 가결시켰으나, 소련의 반대로 이 또한 무산되었다. 그러자 미국은 UN 소총회를 통해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총선안[단독 정부 수립안]’을 가결시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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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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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진주 강씨는 지리지 및 읍지의 성씨조에 등재되지 않은 데다, 관련 기록도 부족하여 서산에 입향한 시기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다만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의 인물 기록 중 강몽서(姜夢瑞)의 본관이 ‘진주’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부터 서산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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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사회 운동. 일제 강점기 때 서산은 교통이 불편하여 신문화 유입이 더딘 지역이었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보통학교 교육이 보급되고, 동경이나 경성 등지의 외지 유학생들까지 대거 귀향하면서 청년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서산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농촌 개량이나 농민 계몽을 목표로 한 실력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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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시기에 대해 고고학계에서는 ‘원삼국 시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원삼국 시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실제로 한강 이남의 유적·유물에 한정되었다. 또한 역사 발전 단계상 큰 차이가 있는 고구려와 삼한의 문제, 원삼국 시기를 과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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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출신의 체육인이자 교육자. 최범수(崔範洙)는 우수한 체육 활동으로 서산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학교 체육 및 사회 체육의 진흥으로 시민의 체력 향상과 지역의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나아가 체육 활동을 통한 시민 화합과 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 최범수[1925~1983]는 서산시 고북면 기포리 238번지에서 태어났다. 고북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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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아이들이 신을 불러서 춤추고 노는 놀이. 춘향아씨놀이는 15세 안팎의 여자아이들이 음력 정초에 날씨가 춥고 특별히 다른 놀이를 하기 어려울 때 방안에 모여서 했던 일종의 접신(接神) 놀이이다. 여자아이들이 대개 음력 정월 대보름 때 방안에 모여 먼저 가위·바위·보로 술래 한 사람을 정한다. 이때 술래가 된 아이는 두 손을 펴서 마주하고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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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일 발생해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비롯한 전역에 피해를 일으킨 태풍. 2010년 제7호 태풍인 곤파스(KOMPASU)는 2010년 8월 29일 21시경 일본 오키나와 남동쪽 약 880㎞ 부근 해상에서 발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곤파스’는 일본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컴퍼스 자리 및 컴퍼스를 의미한다. 태풍 곤파스는 2010년 8월 31일 오전 9시경 최대로 발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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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서산 지역도 커다란 정치적 변화에 직면하였다. 일제 강점기 ‘유지(有志) 명부’에 올라 있었던 주요 인물들과 ‘요주의·요시찰인 명부’에 올라있던 사람들의 정치적 지위가 갑작스럽게 뒤바뀌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른바 ‘당국신용(當局信用)’을 가진 지방 유지들은 ‘친일파’나 ‘반민족 행위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