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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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은 1619년 서산의 사족[문벌이 높은 집안]인 한경춘·한여현 부자(父子)가 편찬한 사찬 읍지로, 1600년대 이전 서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기 사찬 읍지가 흔치 않은 가운데 특히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찬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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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군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은 1582년(선조 15)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목민관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서산에 왔던 수령 중 최고의 선정(善政) 수령으로, 서산 5현으로 추대되었다.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전력하고 『호산록(湖山錄)』 발행을 권유하는 등 서산의 사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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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 김연(金堧)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이며, 사위 중 한 명이 광산 김씨인 용천(龍川) 김지남(金止男)이다. 경주 김씨가 서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명종 조[1545~1567]에 만년의 은거지로 이곳을 택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산에 이거하여 정착한 것은 김연의 큰아들인 김호윤(金好尹)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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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金堧)이다. 아들은 안기도 찰방(安奇道 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다. 손자는 김홍욱(金弘郁)이다. 1500년대 중반 김연이 정계 은퇴 후 서산에 자리를 잡아 경주 김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모여 살았다. 마을에 큰 다리가 있어 유계리의 경주 김씨를 ‘한다리 김씨[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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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달원(達源).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 문응벽(文應璧)이다. 문성해(文成海)[1540~?]는 1575년(선조 8) 서산의 유생들과 함께 서산향교 이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1588년(선조 21) 49세의 늦은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 57위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공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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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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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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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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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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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서령(瑞寧)[서산]. 아버지는 유침(柳忱)이다. 유민수(柳敏遂)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서 살면서 공부하였던 유생이다. 풍채가 좋고 마음 씀씀이가 공명정대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거짓이 없었다. 1582년(선조 15) 고경명(高敬命)이 서산군수로 부임한 뒤 서산 군내 20세 이하의 청년 30여 명을 뽑아 가르쳤다. 이들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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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정종의 6세손으로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이다. 아들은 이순(李淳)이고, 손자는 사마시 생원 이호익과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에 오른 이우익이다. 이유인(李惟仁)은 서산의 음암면 신장리와 도당리에 모여 살았던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문관으로 적순부위(迪順副尉)를 지냈다. 그는 향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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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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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각종 지리지에서 지곡이 본관인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호산록(湖山錄)』,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 서산과 관련된 지리지 성씨 조에는 서산과 지곡의 토성으로 문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본관은 분명치 않지만, 서산이나 지곡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호산록』에 등장하는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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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충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떨쳐 일어나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목숨을 바친 인물을 일컫는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을 한 서산 출신의 충신으로는 김호열(金好說)[1534~?], 이유검(李惟儉)[1538~1592], 강효윤(姜孝胤), 유지립(柳之立)[1555~?], 문성해(文成海)[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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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팔봉면의 가장 오래된 집성촌은 금학리의 경주 최씨로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경주 최씨 서산 입향조는 최사(崔泗)인데 최사는 최몽량(崔夢亮)의 아들로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서산으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경주 최씨가 서산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지곡면 산성리이며, 최몽량의 정려가 남아 있다.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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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 증조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이고, 할아버지는 한익(韓翼), 아버지는 한영희(韓暎憙)[1518~?]이다. 어머니는 담양 전씨이다. 아들은 『호산록』을 완성한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경춘(韓慶春)은 청주 한씨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족보에 올라 있고, 아들 한여현의 과거 급제 방목에 청주 한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