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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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 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209번지 일원 |
집필자 | 김상열 |
성씨시조 | 김알지(金閼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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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조 | 김종(金宗) |
입향 시기/일시 | 1450년경 - 경주 김씨 입향조 김종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으로 입향 |
본관 | 경주 - 경상북도 경주시 |
입향지 | 여우실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209 일원 |
세거|집성지 | 여우실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209 일원 |
[정의]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김종(金宗)을 입향조(立鄕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과 주안동에 세거하던 성씨.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파계(派系)가 복잡다. 은열공파(殷說公派), 태사공파(太師公派),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영분공파(永芬公派), 호장공파(戶長公派), 계림군파(桂林君派) 등이 경주 김씨의 대표적인 종파라 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세거하는 경주 김씨는 김순웅(金順雄)의 13세손 김균(金稛)을 파조(派祖)로 하는 계림군파이다.
[연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과 주안동에 세거하는 경주 김씨 계림군파는 김순웅을 중시조로 하는 대장군공파의 분파이다.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손자이자 마의 태자(麻衣太子)의 둘째 아들인 김순웅은 고려 시대 무인으로 응양군(鷹揚軍) 낭장을 시작으로 대장군, 응양군 용호위 이군을 거쳐 육위 대장군을 역임하면서 고려 광종(光宗)의 북방 방위에 기여를 한 인물이다.
계림군파는 김순웅의 13세손인 김균을 파조로 하고 있다. 김균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고려 말에 과거를 준비하다가 조준(趙浚)을 알게 되었으며, 조준에 의해 여러 번 천거되어 전법판서(典法判書)[고려 시대 법률(法律), 사송(詞訟), 형옥(刑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전법사(典法司)의 벼슬 이름]를 지냈다. 김균은 1392년 조준의 설득으로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개국 3등 공신에 책록되었고,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가자되었다. 김균은 1398년 사망하였으며, 아들로 김맹성(金孟誠), 김중성(金仲誠), 김계성(金季誠) 등 셋을 두었다.
[입향 경위]
계림군파의 파조 김균의 손자인 김종이 1450년경 한양에서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209번지 일원인 여우실에 이거하면서 경주 김씨들이 정착하였다. 입향조인 김종에 대해서는 김균의 큰아들 김맹성의 아들이라고 하나 『세종실록』에는 김맹성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확실하지 않다. 입향의 원인도 불명확하나 계림군 김균이 공신 책록과 함께 사패지(賜牌地)로 여우실과 물우산(勿右山)[지금의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인천 남동 소방서 일원) 등지를 받은 연유로 김종이 여우실에 정착하였을 것이라 전하기도 한다.
여우실에 정착한 경주 김씨 계림군파는 18대가 한 터전을 지켜오면서 16대에 이르러 지역 사회에 기여한 인물도 많이 배출하였다. 초대 인천시 교육위원을 지낸 김경하(金敬夏), 인천 상공 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한 김중하(金重夏), 11대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은하(金殷夏), 지역 언론인이자 향토 사학자인 김상봉(金相鳳) 등 4형제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현황]
경주 김씨는 2000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남한에 총 54만 2018가구, 173만 6798명이 살고 있으며, 인천광역시에는 2만 9238가구, 9만 6800명이 있다.
[관련 유적]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김종이 처음 정착하여 16대에 걸쳐 세거하였던 여우실 마을이 있었으나 그 종택(宗宅)[종가가 대대로 사용하는 집]이 있던 자리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종합 민원실이 들어섰다. 2004년 9월 14일 경주 김씨 종택 자리에 경주 김씨가 세거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석이 건립되었다. 표석에는 “인천광역시 남구청의 종합민원실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인천 여우실[如意室] 문중의 종가(宗家)가 있던 곳이다. 인천의 경주 김씨는 조선왕조 개국공신인 김균(金稛, 계림군)의 3세손인 김종(金宗)이 1450년경 한양에서 여우실[현 숭의동]로 이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가의 터전으로 18대가 한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지역 출신의 최다선 국회의원으로서 제11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은하(金殷夏)는 그 16대 손이 된다. 이제 종가터가 시민의 종합민원실로 변모하여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기에 남구청과 남구 학산 문화원에서는 남구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명가의 종가 터임을 되새기는 표석을 세운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 외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수봉 공원에는 인천 소래 출신으로 초대 민선 시장을 역임한 경주 김씨 김정렬의 선정 기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