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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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湖村戰鬪 |
영어공식명칭 | Dongho Village War |
이칭/별칭 | 동호고지전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지수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2년 2월 9일 - 동호마을 전투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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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2년 2월 9일 - 동호마을 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원기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원기마을 |
종결 장소 | 동호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동호마을 |
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백야전사령부 |
[정의]
1952년 2월 한국전쟁 중에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동호고지를 점령한 빨치산 부대와 국군 토벌대 간에 벌어진 전투.
[역사적 배경]
한국전쟁 전후 지리산에는 대규모의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1950년 9월 중앙당의 지시에 의해 서부경남 유격대가 함양군 문정리에서 조직되어 경상남도 지역 빨치산의 활동을 총지휘하였다. 동호마을 전투와 관련된 ‘백야전 전투사령부’는 한국전쟁기 지리산 일대 활동하던 빨치산들을 토벌하기 위해 국군 제1군단장 백선엽 장군을 중심으로 1951년 12월~1952년 3월까지 임시로 창설된 군경 합동사령부이다. 백야전사령부 명칭은 백선엽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백야전사령부가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전개한 작전을 일명 ‘쥐잡이 작전’이라 부른다.
[경과]
백야전사령부 소속 3연대 2중대는 1952년 설 무렵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동호고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2월 9일[음력 정월 초사흘]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방곡마을과 오빙이골에 빨치산이 출몰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중대본부 요원만 남긴 뒤 토벌군 전원이 출동하였다. 이 틈을 타 지리산 일대 남부군 빨치산 약 300명[1개 대대]이 운서마을을 지나 동호고지로 침투해 왔다. 당시 동호고지에 남아 있던 중대본부 대원들은 사령부 출동부대에 긴급사태를 타전하였으나, 그 사이 빨치산 부대가 동호고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빨치산 부대는 군경 토벌대 역습에 대비해 원기마을에서 동호마을 앞 수보에 부대를 배치하여 고지방어에 나섰다.
[결과]
동호마을을 중심으로 고지를 빼앗긴 국군 백야전사령부와 고지 방어에 나선 빨치산 부대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 군인 8명이 전사하고 15명이 부상당하였다. 빨치산의 사상자가 더 많았는데 42명이 사살되고 6명이 생포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호마을 전투는 한국전쟁 중에 지리산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창설된 백야전사령부의 제3기 토벌 작전[1952년 1월 15일 이후 개시] 가운데 벌어진 전투이다. 동호마을 전투에서 빨치산의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제3기 토벌작전으로 지리산 일대 빨치산 총 1만 9000명 이상이 사살되어 빨치산 세력이 큰 타격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