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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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서산 지역의 근현대사는 개항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궁벽했던 서산에도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되었다.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빈번했고,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인근 태안군 환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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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문인. 호는 우보(牛步) 또는 부춘산인(富春山人). 아버지는 민삼현이다. 민태원(閔泰瑗)의 할아버지가 산청현감을 지낸 인물이라 사람들이 그의 집을 민산청 댁이라 불렀다고 한다. 민태원[1894~1934]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9년에 상경하여 수하동 공립 보통학교와 경기고등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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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교육 종사자 단체. 서산교육회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 교육의 개선과 진보를 위해 설립되었다. 학교비나 학교 조합과는 별도로 존재했던 일종의 교육 종사자 단체로서 정식 명칭은 ‘조선교육회 충청남도교육지회 서산분회’였다. 서산교육회는 1923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창립 당시 회장 1명, 부회장 2명, 평의원 약간 명이 두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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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삼림 조합.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개항기부터 불을 때서 소금을 굽는 자염업(煮鹽業)이 발전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 삼림은 심하게 황폐해졌다. 당시 서산 지역에 삼림조합 활동이 활발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서산군청과 서산군 대지주들은 삼림조합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는데, 그 이유는 서산 지주들의 주요 사업인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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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소비조합. 1920년대 서산 읍내장의 상권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들은 서산 지역의 상업이 부진하게 된 원인으로 “첫째 자본 문제도 있거니와 대부분은 상업 경영 방침의 불충실, 불친절한 까닭, 둘째 일반 고객의 심리가 외인(外人)의 상회에서 매매(賣買)를 선호하는 까닭” 등을 손꼽았다. 1926년 서산 지역의 1년 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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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양대동에 있었던 항구. 경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충남선[현 장항선]의 건설이 시작되어 1922년에 천안~온양 구간, 1931년 8월에 온양~장항 구간 노선이 개통되었다. 그러자 주로 인천을 통하던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의 물류가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 지역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경성과 호남 지방으로 가는 것은 천안이나 대전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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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서사적 산문으로 표현한 언어 예술. 충청남도 서산에서 소설은 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한 전개를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문학이 새로운 가치 지향을 모색하면서 서산에서 소설도 발전하게 되었고, 서산 문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소설은 장르의 특성상 서로 다른 인물간의 성격이 부딪치며 벌어지는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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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소작 농민이 지주·소작 관계,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벌인 농민 운동.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한 후 조선의 농업 개발 및 농민 수탈, 농촌 통제를 일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농촌 사회는 자작 농민의 소작인화, 소작료의 고율화, 소작권의 불안정화, 마름의 중간 수탈 현상 등이 심화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농촌 사회 내부에는 소작 쟁의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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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운문으로 표현한 언어 예술. 충청남도 서산은 수려한 풍광과 여유로운 삶의 모습이 조화로운 특성을 지닌 고장이다. 이처럼 유서 깊은 내력을 지닌 서산에서 문학은 자연스럽게 함께 발전할 수 있었고, 그중에서 시는 작가의 내적 정서를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르였다. 한시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시의 전통이 강한 서산은 문학성이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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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신간회의 지회. ‘민족 독립 쟁취’, ‘기회주의 배격’ 등의 강령을 내걸고 창립된 신간회는 일제 강점기 국내에 조직된 민족 운동 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단체였다. 창립 당시 신간회 지부는 전국 141개 지역[회원 수 약 4만 명]에 걸쳐 조직되었으며, 충청남도 지역에는 서산을 포함하여 강경, 공주, 당진, 대전, 부여, 예산, 천안, 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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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 교육 운동. 일제 강점기에 보통학교라도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대략 20~30% 정도의 아동만이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보통학교는 공립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학부형들의 부담에 의거해 운영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조선의 농촌에는 사설 강습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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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활동과 출판 활동의 총칭. 서산 지역에서 2011년 현재 발행되는 지역 신문으로는 『서산신문』, 『서산타임즈』, 『내포시대』, 『서산뉴스』, 『서산인터넷뉴스』, 『서산교차로』, 『서산벼룩시장』 등이 있다. 이 외에 서산시청에서 매월 1회 발간하는 『서산시보』와 서산문화원에서 월간으로 발행하는 『스산의 숨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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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개된 조선어 신문사 지방 지국의 투쟁.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 지방판에 소개된 민원 사건으로는 1926년 1월 서산 소방조 문제 관련 민원, 1927년 6월 소작 관계 개선 문제[특히 경성 지주의 이중 운반 강요, 운반비 강요 문제]에 관한 민원, 1931년 1월 서산 지역 유치원에 관한 민원, 1930년대 초반 해미 수리 조합 문제 관련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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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왕조의 지방지배체제는 ‘갑오·을미개혁’ 이후 커다란 변화를 거쳤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1895년 부(府)·군(郡)·현(縣)제를 일체 폐지하여 군으로서 명칭을 통일하고 각 군을 군세(郡勢)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그런 뒤 군에는 군수를, 면에는 면장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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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천도교 사무 행정 기관. 천도교 종리원은 제3대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사후 중앙과 지방에 있었던 천도교의 사무 행정 기관이었다.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내포 지역 농민 전쟁의 진원지라 이야기 될 만큼 동학의 교세가 강력한 지역이었으며, 이런 교세는 천도교 창립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1910년대 말부터 서산 천도교 종리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