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234 |
---|---|
한자 | 喪禮 |
영어공식명칭 | Funeral Rite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수반되는 의례.
[개설]
상례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부터 시신을 처리하여 매장해 묘지를 조성하는 일에 따르는 의례를 비롯하여 가족들과 지인들이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여 일정 기간 행하는 의례이다. 관례, 혼례 등과 마찬가지로 상례도 간소화되고 서구식으로 변화된 부분이 많지만 비교적 전통적인 민속을 따르고 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상례는 축제식 상례의 면모도 보이지만 대체로 유교식 의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절차]
해남 지역에서 행해진 전통적인 상례의 절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임종(臨終)
사람이 죽을 기미가 보이면 안방으로 옮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서 가족들이나 친지들에게 통지하여 오도록 한다. 가족들이 모여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함께하는 것을 큰 복으로 여기는데, 이를 ‘종신’이라 한다. 죽음을 확인하면 죽은 사람의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하고 가족들은 곡을 한다.
나. 초혼(招魂)
망자가 평소에 입었던 옷 중에서 깨끗한 것을 골라 가족 중에서 부정한 것을 보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 집 밖으로 나가 지붕에 던져 놓는다. 이때 망자의 이름과 주소를 외친다. 이렇게 지붕에 던진 옷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초상이 났음을 알아본다. 이렇게 지붕에 던진 옷은 상을 치르고 나서는 내려 불에 태우거나, 나중에 망자의 관 안에 넣어 주기도 한다.
다. 사자상(使者床) 차리기
사잣밥은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저승사자 세 명을 위해 차리는 것으로, 이것은 고인을 저승까지 잘 인도해 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자상은 집 대문 앞에 차리는데, 바닥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밥 세 그릇 등 음식을 차려 둔다. 사자상에는 밥 외에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을 놔둔다. 이렇게 사자상을 차리고 나서 곡을 한다.
라. 수시(收屍)
사람이 죽으면 몸이 굳기 전에 칠성판 위에 반듯이 눕히고 가슴 위에 올려놓은 두 손도 묶어 고정한다. 시신은 방의 시원한 곳, 즉 윗목에 놔두는데, 칠성판 아래에는 위와 중간, 아래 세 군데에 짚을 놓아둔다. 이때 망자의 머리는 항상 동쪽을 향하여야 한다. 수시를 할 때는 일단 사람의 몸에 있는 구멍을 솜으로 막는다. 그리고 손발을 정중히 묶어 손은 오른손이 위로, 왼손이 아래로 향하게 포개어 묶은 후 망자의 배 위에 놔둔다. 발은 가지런히 모아 발바닥이 위로 향하게 둔다.
라. 상주(喪主) 및 호상(護喪)
고복(皐復)[초혼]과 수시 등의 절차가 끝나면 상례 절차를 이끌어 갈 상주와 호상을 세운다. 상주 중에서도 가장 맏이 격을 ‘원상주[원상제]’라 하며, 직계 자손들을 ‘상주’라고 한다. 원상주는 보통 큰아들이 맡으며 큰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작은아들이 맡는다. 아들이 죽어 없는 경우에는 손주가 원상주가 되기도 한다. 부모상인데 아들은 없고 딸들만 있을 경우, 딸들이 원상주를 맡는다.
호상은 상주를 대신해 장례를 준비할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집안에서 학식이 깊고 인덕이 있는 사람이 맡아 장례 전반적인 일을 주관하고 음식 준비, 부고장 돌리는 것 등을 지시한다. 호상은 주로 집안 어른으로 세우며, 여의치 못할 경우 마을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세우기도 한다. 상주와 호상이 결정되면 우선 망인의 지인이나 친척들을 대상으로 부고장을 작성하여 송부한다. 부고장에는 망인의 별세일, 발인 날짜와 장소, 제청(祭廳)의 주소, 상주와 호상, 그리고 사위들의 이름 등이 기록된다. 부고꾼은 마을의 청년이나 망인의 친척들이 담당한다.
마. 수의(壽衣)와 관(棺), 장지(葬地) 준비
수의는 망인이 저승으로 갈 때 입고 가는 옷이기 때문에 망인 생전에 미리 만들어 따로 보관하기도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수의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경우 초상이 나면 마을의 상포계 등에서 옷감을 준비해 준다. 그리고 준비된 수의 옷감을 가지고 집안과 동네 아녀자들이 한곳에 모여서 제작한다.
상복은 상주인 경우 머리에 건을 쓰고 왼새끼를 꽈서 머리와 배 부분을 묶는다. 다른 자식들은 보통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이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는 상복의 밑 부분을 안으로 말아 넣어 바느질을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에는 밖으로 말아 바느질을 해야 한다.
관은 미리 제작하지 않고, 관에 쓰일 재목만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적으로 소나무가 많이 사용되며 오동나무도 이용한다. 미리 관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이나 목수들이 목재를 이용해서 관을 만든다.
바. 염습(殮襲)
염습 또는 습렴(襲殮)은 시신을 목욕시키는 절차인데, 쑥물과 향물, 맹물로 씻긴다. 먼저 자손들이 수시를 해 놓은 끈을 풀고 시신의 옷을 벗긴 다음에 홑이불로 덮는다. 그리고 향나무를 담근 물과 쑥물, 맹물을 솜으로 묻혀 전신을 닦아 낸다.
사. 성복(成服)
입관을 한 뒤에 상주들과 친척들이 상복으로 갈아입는 절차이다. 이때 여자들은 부모를 먼저 보낸 죄인이라 해서 머리를 푼다. 상복과 굴건은 마포나 당목을 많이 사용한다. 성복 전에는 상주가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조문객들을 호상이 접대한다. 성복제를 지내고 상주가 제청에서 조문객을 맞이한다.
아. 조문(弔問)
동네 사람들이나 망인의 지인들은 부고장을 받으면 조문을 하게 된다. 조문객의 조문을 받는 곳은 지청[제청]이다. 일반적으로 제청은 망인을 입관한 후에 마당에 차리는데, 영정 사진이나 가주를 모셔 놓고 간단한 음식을 놓는다. 그리고 뒤로 병풍을 쳐서 망인의 관직과 성명을 쓴 명정(銘旌)을 걸어 놓는다.
자. 밤달야
발인하기 전날 상갓집에서 상여를 메는 연습을 하는데, 이를 ‘밤달야’라고 한다. 상여가 나가는 것을 미리 대비하는 것으로 발을 맞추는 연습을 하는 것인데, 이때 상갓집에서는 이들에게 닭죽과 술을 대접한다. 또한 이날 상여를 놀리는데 자식들, 특히 사위들을 상여에 태워 돈을 걸고 놀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저녁을 보낸다. 철야는 망인을 떠나보내는 슬픔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람들은 철야를 하면서 갖가지 놀이를 하면서 보낸다.
차. 발인(發靷)
발인은 유해가 장지를 향해 집을 떠나는 절차를 말하며 보통 죽은 지 사흘 만에 행한다. 출상 당일이 되어 방 안에서 집 밖으로 관을 모시고 나올 때는 유친계[위친계] 계원이나 운상계 계원, 마을 청년들이 참여한다. 관을 방에서 들고 나오기 전에 ‘동관축’을 읽고 방을 한 바퀴 돌면서 방의 네 귀퉁이를 찧고, 상여가 나가는 길에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문턱에 바가지를 놓고 관으로 깨뜨리고 나온다.
상여는 마당에 꾸미는데, 마당이 좁으면 동네의 넓은 길에다 꾸민다. 관을 들고 밖으로 나온 후 집 상여에 관을 얹고 제를 모시는데, 이를 ‘발인제’라 한다. 발인제가 끝나면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집을 떠나는데, 평소 고인이 자주 다니던 곳을 돌고 마을을 떠나기 전 제를 한 번 더 모시는데 이를 ‘거리제’ 혹은 ‘노제’라고 부른다. 거리제가 끝나면 본격적인 운상이 이루어지는데, 마을 입구를 빠져 나가기 전에 마을을 향해 상여를 내렸다 올렸다 하여 하직 인사를 하게 된다.
운상에 참여한 사람은 보통 약 스무 명 남짓 된다. 대부분은 운상계 계원들이 운상을 맡는다. 마을에는 상갓집 일을 도와주는 발인계나 운상계, 위친계 등이 있어 각자 일을 도와준다. 상여가 장지를 향해 나가는 시간은 장지의 거리나 날씨, 하관 시간 등에 따라 얼마간 차이가 있다. 운상 행렬은 명정→만장→혼함→상여→상주 순으로 나간다.
운상하는 과정에서 계원들은 망인의 가족들에게 노자를 주라는 의미에서 망인의 사위 등을 상여에 태운다. 이렇게 걷은 노자는 운상을 마치고 나서 계원들이 수고비를 대신해서 술을 마시거나 상주의 집에 돌려준다. 운상을 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지역에 머물러서 노제를 행하기도 한다. 상엿소리에는 일반적으로 핑경[풍경]과 북이 동원된다.
카. 치장(治裝)
치장은 장지에 시신을 묻는 것을 말한다. 장지는 보통은 상여가 도착하기 전까지 선산에 장지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 과거에는 모든 일이 인력으로 이루어져 많은 수의 사람이 동원되었지만, 현재는 기계를 이용하여 장지를 마련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산일을 하기 전에 산신제 및 개토제를 지내서 봉분을 만들 지역의 토지신과 산신에게 망인의 출입을 알려야 하며, 평토제를 끝내면 운상에 사용하였던 상여와 불필요한 물품들은 그곳에서 불태운다. 상주들은 망인의 혼이 모셔져 있는 혼상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고, 다른 복인들은 봉분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려온다. 상주가 혼상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상여가 갔던 길로 돌아와야 한다. 집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는 상주와 반혼[장례 지낸 뒤에 신주(神主)를 집으로 모셔 오는 것]하는 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타. 우제(虞祭)
치장이 끝나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메를 올리고 곡을 한다. 사흘 동안 초우제, 재우제, 삼오제를 지냄으로써 우제의 절차가 끝나게 된다.
파. 탈상(脫喪)
예전에는 대부분이 삼년상을 지내고 탈상·탈복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통은 3일 탈상을 하고, 짧을 경우에는 출상 당일에 탈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집안에 따라 사구제, 혹은 100일 동안 근신 기간을 두고 탈복을 하기도 한다.
하. 기타
초분(草墳)은 송장을 한동안 풀이나 짚으로 덮어 두는 장례 방법인데, 초빈(草殯), 외빈(外殯), 고름장, 구토, 최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보통 정월에 초상이 나면 땅을 팔 수가 없다고 하여 초분을 행하였다.
[연원 및 변천]
『수서(隋書)』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장례 풍습을 보면 초분을 하는 풍속과 축제식 상장례의 모습이 보인다. 고려 시대에 유교가 도입된 이래 유교식 상례가 표준이 되었고 해남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해남 지역에서 출상 하루 전날 ‘밤달야’라는 상여놀이가 행해진 것을 통해 축제식 상장례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례는 과거에 비해 크게 간소화되었고 편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부분 현대화된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으며 상여 대신 운구차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고 매장을 할 때에도 포크레인의 비중이 매우 높다. 매장 방법도 화장, 수목장, 화초장, 평장 등으로 다양화 되었다.
2018년 12월 현재 해남 지역에는 해남장례식장[해남읍 신안리 4-13], 해남종합병원 장례식장[해남읍 해리 182-1], 해남우리종합병원 장례식장[옥천면 영신리 251], 국제장례식장[해남읍 용정리 983], 현대장례식장[해남읍 용정리 1006-4], 산림조합장례식장[해남읍 고도리 44-1], 제일장례식장[해남읍 신안리 4-13], 우수영장례식장[문내면 난대리 330-1], 땅끝장례식장[현산면 읍호리 417-3] 등 총 9개의 장례식장이 운영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해남 지역에서는 사람이 죽기 며칠 전에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인 혼불이 나간다고 하였는데, 누구네 집에서 나온 혼불이 그 집으로부터 가까운 근방에 떨어지면 사흘 안에 그 집 사람이 죽고 멀리 가서 떨어지면 오래 산다는 속설도 전한다. 혼불은 푸른빛을 띤 둥글고 긴 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집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굴뚝을 막거나 집에 있는 고양이를 찾아 묶어 둔다고 한다. 혹시 굴뚝으로 고양이가 들어갈 경우 시체나 관이 벌떡 서 버린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