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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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出産儀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민들이 아이의 잉태, 출산, 양육 등에 관해 행하던 의례.
[개설]
보령시 주민들은 1970년대까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산부인과 병원이 들어서면서 시어머니와 산파가 아이를 받던 관행은 중단되었고, 이와 관련한 삼신 모시기, 출산 관련 각종 의례들은 사라졌다. 변화 이전까지 행하던 전통 출산의례에는 인간의 생명관, 운명관, 절대적으로만 여겨졌던 운명이라는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민간의 관념과 의례들이 행해졌다.
[관념과 의례]
보령시 주민들은 아이는 삼신이 점지하는 귀한 존재로 간주한다. 혼인한 부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임신을 하지만, 간혹 잉태를 하지 못하거나 원하는 성별의 아이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에는 딸만 낳은 경우 아들을 얻고자 삼신께 정성을 들였다. 각 가정의 가신 중 하나인 삼신은 안방에서 아이를 점지하고, 출산을 돕고, 아이를 양육한다. 집 안에 있어야 할 삼신이 그 집을 떠나면 임신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여겼다. 인간의 노력 여하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때는 삼신을 집 안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아이의 성공과 건강을 위해 부모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명이 짧으면 수양부모를 삼아주고, 칠성이나 부처에 아이를 팔아 아이의 명을 이어주었다. 삼신이 점지해준 아이는 전적으로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성장하였다. 아이 부모는 아이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아이의 피부가 닭살이 될까 하여 닭고기를 먹지 않고, 부정한 기운이 낄까 하여 살생을 금하며, 쥐구멍을 열어 두어 혹시 산도(産道)가 막힐 것에 대비하였다.
아이의 출산은 피를 수반하므로 내륙이나 어촌에서나 임신부를 부정한 존재로 여겼다. 특히 해안과 도서 등의 어로 활동을 하는 지역에서는 임신부와 출산을 부정시하였다. 풍어를 위해 정월 초에 드리는 마을신앙 의례인 당제를 지내는 기간 동안 출산으로 인한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신부를 마을 밖의 해막(解幕)[부정(不淨)을 막기 위해 임산부의 해산에 임하여 따로 세우는 오두막]으로 내쫓았다.
바다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어부들에게는 그만큼 절박한 믿음이 존재했던 것이다. 어촌에서는 태어난 아이의 태를 갯벌에 묻는데, 향후 아이가 크면서 고기잡이나 갯것[갯벌에 나는 해산물] 채취를 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륙에서는 아이 태를 손이 없는 방위에서 태우거나 묻었다.
출산과 관련해 가장 중요시되는 절차는 순산이다. 보령시 주민들은 유산 기운이 있으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줄기가 올라가는 호박순 넝쿨을 삶아 먹는 등의 유감주술(類感呪術)[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모방을 통해서 유사한 결과를 끌어낸다는 주술]을 행하였다. 출산은 죽음에 맞먹는 고통과 위험이 수반되는 순간이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삼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난산을 하면 각종 주술적인 방법으로 순산을 유도하였다.
갓난아이가 있는 집에는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대문 앞에 금줄을 드리워 부정을 막으며, 아이가 백일이 지날 때까지는 액운이 틈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백일날과 돌날에는 수수팥떡을 만들어 온갖 액운을 막아주었다. 아이의 아명을 개똥이, 오쟁이 등으로 지어 건강을 이끌기도 하였다.
출산의례의 관행들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출산의례 속에 깃든 생명관, 운명관 등은 보령시 주민들의 관념과 의식 속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