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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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에서 139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 고려 시대의 서산 지역은 부성군(富城郡)을 중심으로 지곡현(地谷縣), 정해현(貞海縣), 여미현(餘美縣), 고구현(高丘縣)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의 드나듬이 심한 서산 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이다. 이 중 여미현은 백제 때 여촌현, 신라 때 여읍현이었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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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고려 시대에 번창한 사찰.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상왕산 기슭의 보원사(普願寺)는 서산 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에 가깝게 위치해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이다. 고려 시대의 절터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재 이 폐사지를 지키고 있는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서산 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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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이른바 ‘4대강 사업’으로 운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연안 해로를 중요한 교통로로서 사용해왔던 만큼 운하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찍이 태안반도에 운하를 개착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건이었다고 할 만하다. 운하 건설은 1134년(인종 2)에 처음 시작되어 1669년(현종 10)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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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성연면(聖淵面)에 위치한 왕정리(旺井里)에 옥동샘이라는 우물이 있었다. 옥동샘에서 용이 승천한 다음부터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기고 번성하였다고 하여 면의 이름을 성스러운 연못이라는 뜻인 ‘성연(聖淵)’이라 지었다. 조선 시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성연면에 성연부곡(聖淵部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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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3리 창개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어송리 창개 산신제는 음력 1월 초에 인일(寅日)[범날, 호랑이날]을 택하여 팔봉산 상봉 밑의 산제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창개마을은 동북쪽으로는 팔봉산을 등지고, 마을 앞으로는 가로림만의 가장 깊숙한 포구에 자리한다. 제관은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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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유방택[류방택, 柳方澤][1320~1402]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천문 지리에 밝았다. 그가 만든 역서(曆書)는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중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름을 받아 천문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제작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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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현물로 거둬들인 조세를 중앙으로 운반하던 제도. 조운은 조전(漕轉)·조만(漕輓)·해조(海漕)라고도 한다. 주로 내륙의 수로(水路)나 해로(海路)를 이용하였다. 내륙의 수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수운(水運) 또는 참운(站運),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해운(海運)이라고 하였다. 서산은 개경으로 이어지는 서해 연안 항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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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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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임시로 설치한 태안군 치소. 태안군은 고려 후기인 1373년(공민왕 22)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화를 모면하기 위해 서산으로 치소(治所)를 이전하게 된다. 현재 서산시의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충청도 태안군(泰安郡) 궁실(宮室)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