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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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서 발굴 조사된 백제 시대 지방 세력의 고분군. 서산 부장리 고분군(瑞山副長里古墳群)은 2004~2005년에 이루어진 임대 아파트 조성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2006년 11월 6일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사적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적 제475호로 지정된 지역은 보존되어 있지만, 나머지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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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벼를 타작하기 위해 지게로 져서 나를 때 부르는 노동요. 「벼 끌떼는 소리」는 건조한 벼의 그루터기를 떼고 낟알을 ‘바심’할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끌’은 그루터기의 충청남도 방언이다. 벼를 베면 논둑에 일렬로 세워 건조시켰고, 말린 벼들은 ‘바심’을 하기 위해 지게로 져 날랐다. ‘바심’은 타작[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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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양대동에 있었던 항구. 경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충남선[현 장항선]의 건설이 시작되어 1922년에 천안~온양 구간, 1931년 8월에 온양~장항 구간 노선이 개통되었다. 그러자 주로 인천을 통하던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의 물류가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 지역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경성과 호남 지방으로 가는 것은 천안이나 대전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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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14~15세기에 왜구는 한반도 전 지역을 위협하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충청남도와 서산 해안 지역에도 침입하여 민생을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서산에 대한 왜구의 침입은 1352년(공민왕 1)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14세기 공민왕 때는 고려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기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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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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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시기에 대해 고고학계에서는 ‘원삼국 시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원삼국 시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실제로 한강 이남의 유적·유물에 한정되었다. 또한 역사 발전 단계상 큰 차이가 있는 고구려와 삼한의 문제, 원삼국 시기를 과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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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충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떨쳐 일어나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목숨을 바친 인물을 일컫는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을 한 서산 출신의 충신으로는 김호열(金好說)[1534~?], 이유검(李惟儉)[1538~1592], 강효윤(姜孝胤), 유지립(柳之立)[1555~?], 문성해(文成海)[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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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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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 청주 한씨의 입향조. 한효순(韓孝純)[1543~1621]은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1590년(선조 23)에 파직되자, 같은 해 8월 지금의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에 은거하였다. 이 일대에 선대에 하사 받은 땅이 있었는데 작은 농사(農舍)를 짓고 정착했다고 하며, 서산 강씨 강효윤(姜孝胤)의 딸을 후취 부인으로 맞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