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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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가지 기호[문자, 숫자, 도형, 도표, 이미지, 음성, 음향, 영상]로 이루어진 방송 프로그램을 유무선 통신을 이용하여 송신하는 일.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방송은 라디오 방송이었다. 서산에 라디오가 들어온 것은 『서산시지』에 따르면 1920년대 후반이었다고 하나 상세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945년 8월 15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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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삼림 조합.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개항기부터 불을 때서 소금을 굽는 자염업(煮鹽業)이 발전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 삼림은 심하게 황폐해졌다. 당시 서산 지역에 삼림조합 활동이 활발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서산군청과 서산군 대지주들은 삼림조합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는데, 그 이유는 서산 지주들의 주요 사업인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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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불 입상.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瑞山余美里石佛立像)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이문안마을 야산 아래에 서 있는 석불 입상으로서,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장마철에 전라산 부근의 용장천(龍獐川)에서 미륵이 발견되었으며, 서산군청에 신고한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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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소작 농민이 지주·소작 관계,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벌인 농민 운동.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한 후 조선의 농업 개발 및 농민 수탈, 농촌 통제를 일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농촌 사회는 자작 농민의 소작인화, 소작료의 고율화, 소작권의 불안정화, 마름의 중간 수탈 현상 등이 심화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농촌 사회 내부에는 소작 쟁의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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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어업 조합. 『충청남도도세일반(忠淸南道道勢一斑)』 민적(民籍) 자료를 참고하면 서산군 바닷가에 인접한 면에 많은 어업 인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라는 별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서산군에는 소규모의 포구를 중심으로 연안 어업이 발달하였다. 1908년 서산군의 어업자는 71호에 238명, 태안군은 117호에 375명,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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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여미리 미륵제, 장승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오후 3시에 전라산 기슭의 산제당과 마을 중앙에 있는 미륵 및 목장승 2기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여미리 동제당은 산제당과 장승으로 이루어진 상당과 하당의 이당 구조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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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 아랫강댕이에서 가정 및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매년 음력 1월 17일 사시(巳時)[오전 9~11시]에 개인의 무탈함과 마을의 평안, 풍요, 무사태평 등을 위하여 지내는 제의이다. 따라서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개인제와 동제(洞祭)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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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충청남도 도령(道令)에 따라 충청남도 서산에서 조직된 단체. 1916년 8월 충청남도 도장관 오하라 신조[小原新三]가 각 군에 훈령으로 미풍양속 보호 및 유지, 지방 개량을 목적으로 옛날부터 내려온 향약례를 모방하여 마을 단위로 진흥회를 조직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26년 10월 24개 면의 진흥회 회장들이 서산군청의 농회장(農會場)에서 모여 서산군연합진흥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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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에 있는 충청지방통계청 산하 서산 지역 사무소. 충청지방통계청 서산사무소는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국가 기본 통계 생산을 위해 설립되었다. 1963년 1월 충청남도청 및 13개 시군에 통계 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초로, 서산 지역은 1975년 8월부터 서산군청에, 1995년 7월부터는 서산시청에 복무를 위탁하였다.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