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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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觀魚臺- |
이칭/별칭 | 어대노구(魚臺老嫗)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2년 - 「관어대 눈먼 할머니」 『영덕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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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관어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춘진|사남 |
모티프 유형 | 여성 수난과 보상|여신 좌정담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관어대 눈먼 할머니」는 관어대(觀魚臺) 앞에 살았다고 하는 눈먼 할머니가 꿈에서 만난 죽은 남편 덕분에 눈을 뜨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전설이다. 춘진(春眞) 할머니가 관어대를 수호하는 팔령신(八鈴神) 중 하나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관어대 눈먼 할머니」는 2002년 영덕군에서 발행한 『영덕군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영덕군지』에는 채록 경위가 밝혀져 있지 않다.
[내용]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관어대가 있다. 옛날 관어대 입구에 춘진이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춘진은 일찍이 한양 사람 사남(士男)에게 시집을 갔으나 혼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외롭게 살았다. 살림도 넉넉하지 않은데다 여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이웃의 삯바느질이나 품팔이를 하여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 나갔다.
어느 해 봄날, 춘진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웃집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날 이후로 맹인이 된 춘진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이웃의 도움을 받거나 구걸을 해 가며 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의 고생스러운 세월을 보내다 보니 춘진은 갑자기 이가 빠질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 그녀의 삶은 여러 모로 기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춘진의 꿈에 남편 사남이 나타났다. “여보, 고생이 얼마나 많았소?” 하고 남편 사남이 다정하게 말하였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편을 꿈에서나마 만나게 되니 춘진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춘진이 사남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힘드니 이제 나를 데려가 주시오.” 라고 하였다. 사남이 춘진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면서 미곡(美谷) 쪽을 향하여 훨훨 걸어가는 것이었다. 춘진이 허겁지겁 사남의 뒤를 따라가는데 앞에 시냇물이 나타났다. 남편 사남은 냇물을 건넜으나 앞을 볼 수 없는 춘진은 물을 건너지 못하였다. 춘진이 앞서간 사남에게 앞이 보이지 않아 물을 건너지 못한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사남이 뒤돌아 와서 “앞을 못 보니 저렇게 따라오지 못하는구나.” 하고는 가시 침으로 춘진의 눈을 찔렀다. 춘진의 눈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춘진이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는데, 그때 눈이 번쩍 뜨이면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해면에서는 이 할머니가 팔령신 중 하나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고사를 지내는 집이 있었고, 옆에 탱자나무가 있었다. 수십 년 전만 하여도 그곳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관어대 눈먼 할머니」의 주요 모티프는 '여성 수난과 보상'과 '여신 좌정담'이다. 남편을 일찍 사별한 후 어렵게 살아가는 춘진을 안타깝게 여긴 남편이 꿈에 나타나 춘진의 눈을 뜨게 해 주는데, 이때의 개안(開眼)은 춘진이 오랜 세월 수절하면서 고난의 삶을 산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지닌다. 춘진 할머니가 관어대를 수호하는 팔령신 중 하나라고도 전해지고, 지역민들은 춘진 할머니와 관련된 곳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다. 춘진 할머니는 수난을 온몸으로 겪어냈기에 여신으로 좌정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리데기」나 「당금애기」의 주인공 여성도 수난을 겪은 후 여신으로 좌정하게 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덕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또 다른 설화 「벼락딤」에는 역동(易東) 우탁(禹倬)[1262~1342]이 물리친 팔령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팔령신 중 하나가 할머니이고, 그 할머니가 역동에게 용서를 구하니, 역동이 용서해 주고 관어대입구에 당집을 지어 주면서 바닷바람을 막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팔령신으로 좌정하게 된 춘진 할머니의 후일담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