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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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益周 |
이칭/별칭 | 중욱(仲郁),백련당(白蓮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장암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탁현진 |
[정의]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문신.
[개설]
문익주(文益周)[1535~1605]는 어릴 때부터 엄숙하고 기이한 품성이 어른과 같았으며, 천성이 독실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 부모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중욱(仲郁), 호는 백련당(白蓮堂)이다.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낸 문서(文敍)의 5세손이고, 할아버지는 문명부(文命敷)이며 아버지는 문팽석이다.
[활동 사항]
문익주는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세 고을에서 수령을 지내며 청렴한 관리로 알려졌다.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올 때 관청의 말을 이용하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숙연히 여겨 비를 세워 문익주의 청백한 성격을 기렸다.
문익주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움막을 시어 시묘를 살며 효행을 다하니 집 뜰 연못의 붉은 연꽃이 흰색으로 변하였는데,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지극한 효심이 연꽃의 색을 바꾸었다.”라고 칭송하며 문익주의 집을 백련당(白蓮堂)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백(李後白)[1520~1578]과 교의가 깊었으며, 조헌(趙憲)[1544~1592], 백광훈(白光勳)[1537~1582], 정철(鄭澈)[1536~1593] 등과도 교의가 깊었다. 임진왜란 때는 김천일(金千鎰)[1537~1593],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임진왜란 직후 영암 향안을 중수하는 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백광훈이 시를 지어 문익주를 칭송하였고, 김종후(金鍾厚)가 문익주의 묘갈명을 지어 붉은 연꽃이 흰 연꽃으로 바뀐 기이함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