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38 |
---|---|
한자 | 安鍾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명환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8월 12일 - 안종태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7일 - 백석면 3·1 만세 시위 주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일본 경찰에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23일 -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7월 14일 - 안종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서울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
활동지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안종태(安鍾台)[1883~1920]는 서울 출신으로, 1919년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살면서 동생인 이장 안종규(安鍾奎)와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7일 밤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기 위해 연곡리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일제로부터 독립해야만 살 수 있다”고 연설하였다. 그리고 28일에 주민 600여 명을 규합하여 안종규·김대현(金大鉉)·이사범(李士範)·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안종태는 양주군 백석면 오산리[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 들판에서 대규모의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백석면사무소까지 시위 대열을 이끌고 진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해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항소하였으나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7월 1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