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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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熙貞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송명석 |
출생 시기/일시 | 1921년 6월 13일 - 고희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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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농악대에서 태평소를 배움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굿판에서 피리를 배움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양주별산대놀이와 양주소놀이굿 공연에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70년 - 해금 연주를 시작함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11월 17일 - 국가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 |
활동 시기/일시 | 1981년 8월 20일 - 국풍81에서 공연 |
몰년 시기/일시 | 2005년 1월 18일 - 고희정 사망 |
출생지 |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
학교|수학지 | 경기도 동두천시 |
활동지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
묘소 | 고희정 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
성격 | 예술인 |
성별 | 남 |
본관 | 제주 |
대표 경력 | 양주소놀이굿 기능 보유자 |
[정의]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양주소놀이굿 기능 보유자.
[개설]
양주소놀이굿은 탈을 쓴 소, 원마부, 곁마부가 한데 어울려 무당과 마부의 대화, 마부의 타령과 덕담, 마부와 소의 동작, 춤 등으로 이루어진 굿 형식의 놀이로, 양주의 무부(巫夫) 팽수천(彭壽天)[1901~1937]에 의해 양주 지역에 전승되어 왔다.
[활동 사항]
고희정(高熙貞)[1921~2005]은 양주군 이담면 보산리[현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와 줄피리, 버들피리 등을 잘 다루었고, 열세 살 때인 1933년 농악대에 들어가 호적(胡笛)[태평소]을 배웠으며, 1937년에는 굿판에서 피리를 배웠다. 1940년부터 양주별산대놀이와 양주소놀이굿에서 악사 역할을 하였다. 1970년에 해금 연주를 시작하였다. 고희정은 그동안의 뛰어난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1980년 11월 17일 국가 무형 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의 기능 보유자[악사]로 지정되었다.
1981년 8월 20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국풍81’에 초청되어 소리꾼 김인기(金仁起)와 함께 양주소놀이굿을 널리 알렸으며 이후 정기 공연 20여 회, 초청 공연 30여 회, 상설 공연 15여 회 등 수십 차례의 공연을 하였다. 고희정은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만신과 굿을 하는 악사로 참여하여 잽이 노릇을 하였으며, 양주소놀이굿 전승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제주 고씨 묘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