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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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태훈 |
[정의]
조선 전기 경기도 양주에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한양. 증조할아버지는 총관 부원수 조양기(趙良棋)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돈(趙暾)이며, 아버지는 개국공신인 한산군(漢山君) 조인옥(趙仁沃)이다. 아들은 조숙생(趙肅生)이며, 조카는 조순생(趙順生)이다.
[활동 사항]
조관(趙貫)[1382~?]은 1431년(세종 13) 판내섬시사(判內贍寺事)로 종마관압사(種馬管押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청주 목사와 집현전 교리를 거쳐 1445년(세종 27) 전주부 윤(全州府尹),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가 되었고 1448년(세종 30)에는 중추원 부사를 지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사은사(謝恩使)로 이견기(李堅基)와 함께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조관의 조카 조순생이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안평대군의 일파로 몰려 아들 조명(趙銘)과 함께 고성(固城)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형당했는데, 1455년(단종 3) 단종이 양위하자 조관은 조순생의 일에 엮여 남해로 귀양을 갔다. 1456년(세조 2) 아들인 부사 조숙생의 청원으로 유배에서 풀려났다. 이때 조관의 나이가 74세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출생 연도는 1382년(우왕 8)인 것으로 보인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따르면, 1465년(세조 11)과 1466년(세조 12) 검판서(檢判書)로 근정전에서 열린 양로연(養老宴)에 참석하였고, 1467년(세조 13) 인정전에서 열린 공신연(功臣宴)에 참석하였다. 1468년(예종 즉위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품계를 받았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양주의 서산(西山)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