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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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원휘(金原輝)[1884~1949]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비안면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김원휘는 안평면 괴산동 괴산 교회 조사(助事)로서, 평양 신학교에 등록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마침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렬한 만세 시위를 목격하였다. 그는 시위로 인해 학업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3월 4일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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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1919년 3월 12일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 교회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한 목사 박영화(朴永和)의 장남이다. 박상동(朴尙東)[1894~1948]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8일 대구 계성 학교(啓聖學校) 재학 중 대구 서문 시장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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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세길(朴世吉)[1876~1946]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이 주도한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에 참가하였다. 3월 12일 박영화는 동료들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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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달(朴永達)[1887~1962]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과 함께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영달은 박영화·박영신·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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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신(朴永新)[1891~1942]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동 쌍계 교회의 목사 박영화(朴永和)의 동생으로 쌍계동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위한 구체적 계획에 참여하였다. 박영신은 3월 12일 자신의 집에서 형 박영화를 비롯하여 박영달·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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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화(朴永和)[1859~1923]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 교회의 담임 목사로 있으면서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평양 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서울·평양 등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귀향한 김원휘(金原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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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인욱(朴寅郁)[1896~1934]은 박주욱(朴宙郁)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인욱은 3월 12일 박영화·박영달·박영신·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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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달근(裵達根)[1865~1944]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배달근은 박영화·김원휘·박영신(朴永新)·박영달(朴永達)·배중엽(裵重曄) 등과 함께 3월 13일 쌍계동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킨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3월 12일 박영화·박영신·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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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도근(裵道根)[1866~1923]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부르고 정오 무렵 학생들이 마을로 돌아오자 동민들은 함께 만세 시위에 들어갔다. 박영화·박영신·박영달·배달근·배중엽 등이 만든 200장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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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선두(裵善斗)[1924~생존]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남경(南京) 지구에 배속되어 있던 중, 중경(重慶)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와 광복군(光復軍)에 관한 정보를 듣고, 1944년 3월 권오옥(權五玉)[안동 일직]·구칠성(具七星)[또는 具七龍]·이용득(李龍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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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용도(裵容度)[1895~1971]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영화(朴永和)·김원휘·박영신(朴永新) 등은 3월 13일 쌍계동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킨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배용도를 비롯한 배도근·배용석·이일만·김명출·박세길 등이 합세하였다. 배용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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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중엽(裵重曄)[1882~1934]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과 함께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배중엽은 박영화(朴永和)·김원휘·박영신(朴永新)·박영달(朴永達) 등과 함께 3월 13일 쌍계동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킨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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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의 열녀. 배치용 처 순흥 안씨[?~?]는 태어난 집안이나 출가한 집안 모두 보잘 것이 없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과 자질이 남달랐다. 시집을 와서 시부모와 지아비를 섬기는 데 있어 조금도 소홀함도 없었다. 하는 일 하나 하나가 모두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올발아 일가친척이며 이웃들이 한결 같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매자 남편 대신 자신의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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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쌍계 교회는 김인옥, 이성준이 군위의 봉황 교회에 다니다가 1903년 의성군 비안면 신묘동에 초가를 매입하여 예배당을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 1903년 3월 15일에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박영화가 초대 목사를 지냈다. 1906년 신묘동에서 의성군 비안면 쌍계동 572번지로 교회를 이전하였다. 19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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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 의성 지역에는 현재 1000년 이상 된 전통 사찰이 9개소나 된다. 이는 신라나 고려 시대에 이미 의성에서 불교가 매우 성행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일찍부터 의성에서 불교가 성행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은 의상 대사이다. 그가 의성에 건립했거나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만 6곳으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