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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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商礖 |
영어음역 | Yi Sangyeo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출생 시기/일시 | 1774년 - 이상여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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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54년 - 이상여 졸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만원(李晩遠)이다.
[활동 사항]
이상여(李商礖)[1774~1854]는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서 태어났다. 평소에 쌀뜨물로 미음을 끓여 부모가 잡숫게 하고, 가볍고 따뜻한 옷을 지어 드렸다. 어느 날 밤 삼경쯤 별채에 불이 났다. 이에 이상여는 평소 우레 소리를 무서워하는 아버지가 놀랄까 걱정되어 문밖에 무릎을 꿇고 앉아 끝까지 아버지의 곁을 지켰으며, 가족들에게도 큰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3년 간 정성껏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머니가 병환 중에 수박을 찾았으나 구하지 못하자 평생 수박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이상여의 효행이 예조와 형조에까지 알려져 정헌대부 규장각검교직제학 김성근(金聲根)의 근장으로, 이상여의 손자인 이상표가 정포(丁布)의 명을 받았다.